▲ 사진=영화 '귀향' 스틸컷

가족은 혈육이라고 합니다. 피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자매들. 이들의 품에서 벗어나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갇힌다면 어떠한 기분일까요? 1백 년 전 나라는 일제에 빼앗겼고 소녀들은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습니다. 차디찬 목조건물, 침대, 세숫대야. 흔들거리는 조명. 그 안에서 차마 입으로 담기 어려운 지옥이 펼쳐집니다. 24일 개봉한 영화 ‘귀향(Spirits' Homecoming, 2015)’입니다.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관객들은 자신의 딸이요, 여동생과 닮은 어린 소녀들의 비극을 지켜봤습니다. 이들은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으로 크라우드 펀딩한 수만 명의 명단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의 투자도 받지 못했고 여러 난항을 거듭한 영화를 살려낸 이들이죠.

 
조정래 감독은 강일출 ‘위안부’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군이 아무런 죄도 없는 소녀들을 불에 태워서 죽인 것입니다. 조 감독은 며칠 후 꿈을 꿨고 그 꿈 내용이 영화의 기본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강 할머니는 지난 2013년 8월에 경기도 나눔의 집에서 처음으로 뵌 적이 있습니다. 서울노원사랑봉사단 마들지회서 러브핸즈 봉사를 취재하러 가는 자리였습니다. 단원들은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치고 인사하고 나오는 데 강 할머니는 마치 가족이 떠나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할머니의 눈물에는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소녀들의 눈물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 사진=영화 '귀향' 스틸컷
 
얼마 지나지 않아 이용녀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을 무료로 지원하기로 협약을 맺은 천화상조 직원과 현장에 갔습니다. 광복절 앞둔 시의와 맞물려 정치인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 장례식장 발인부터 주한일본대사관 앞 노제, 서울시립승화원 화장을 취재했습니다. 유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가족을 떠나 보낸 심정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는 할머니 영혼과의 재회이기도 합니다.
 
‘귀향’에서 경남 거창에 살던 14살 소녀 정민(강하나 분)은 일본군에 이끌려 중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을 만나게 되지요. 이들과 같은 ‘위안부’ 피해자 20만 명에 달합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은 238명이고 46명만이 생존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돌아오지 못한 영혼은 어떻게 하나요? 이들을 안내하는 것은 신단수와 같은 고목 앞에서 초혼하는 무녀들입니다. 이는 현재와 과거, 이승과 저승을 무(巫)가 중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하늘과 땅을 잇는 성직자였죠. 덕분에 영혼들이 돌아올 길이 열립니다.
 
▲ 사진=영화 '귀향' 스틸컷
 
무엇보다 ‘위안부’ 할머니를 연기한 손 숙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가 빛납니다. 역사의 상처를 입은 할머니들의 아픔이 폐부 깊이 와 닿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은 마치 나라를 대신해서 싸우는 의병과 같다고 할까요?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일본 우익층과 외면하는 한국인을 일깨워주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 이전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희생되는 피해자만 있을 뿐이라고. 이를 모른다면 역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곧 삼일절입니다. 97년 전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인파로 거리를 가득 메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25년 동안 매주 수요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역사의 진실을 외치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365일 자리를 지키는 평화의 소녀상도 전국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은 없습니다. 이제 이벤트 애국에서 실천하는 애국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그 시작은 영화가 ‘명량’처럼 흥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