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가까운 마트에 들려서 사과를 샀습니다. 보통 한두 개가 아니라 랩으로 포장돼 있거나 봉지에 담겨 있죠. 직접 만져볼 수 없지만, 일단 싸니깐 계산대로 갑니다. 다음날 랩을 벗기고 사과를 씻었는데 상태가 안 좋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썩었네요. 뭐, 괜찮겠지 하면서 사과를 먹는 바보는 없을 것입니다. 마트에 가서 다른 사과로 바꿨습니다.

이를 조직으로 확대해보면 어떨까요? 과일 상자처럼 큰 조직에 한 두 개의 썩은 과일이 있더라도 그대로 품겠다는 곳이 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지난 2014년 광복절 즈음에 방한해서 신드롬을 일으킨 프란체스코 교황이 이끄는 가톨릭입니다. 바닥에 완전히 엎드려 가장 낮은 자로 오로지 그리스도에게 봉사하겠다는 사제서품식. 거기에 참석한 신부 중에서 훗날 아동을 성추행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 사진=영화 '스포트라이트' 스틸컷
 
올해의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는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폭로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가톨릭을 만천하에 알립니다. 실화를 배경으로 제작됐습니다. 2001년 보스턴 글로브에 신임 편집장으로 취임한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는 ‘스포트라이트’팀에 30년에 걸쳐 수십 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지역교구 신부에 대해 심층 취재를 지시합니다. 보스턴 지역에서만 무려 90명의 사제가 아동을 성추행했습니다. 덕분에 ‘스포트라이팀’은 2003년 미국 최고의 언론인상인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은 거기까지입니다. 가톨릭은 여전히 건재하니깐 요. 그들의 논리는 과일 몇 개가 썩었다고 다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는 대사에서 극명하게 나옵니다. 피해자가 “신체적 학대를 넘어 영적인 학대에요. 성직자에게 당하면 믿음까지 뺏기는 거에요”라고 말하지만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과 이를 은폐하는 가톨릭의 대결은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검사도 돈과 권력 앞에 굴복하는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아동의 상처는 커서도 치유 받지 못합니다. 그나마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역할을 자처한 변호사 미첼(스탠리 투치)이 ‘스포트라이팀’에 큰 힘이 됩니다. 미첼은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라고 말합니다. 내 아이만 괜찮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부모들의 뇌를 깨우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신부처럼 종교인들의 범죄는 예술인과 의사, 교수보다 많았습니다. 경찰청의 ‘전문직 군별 강력범죄 발생현황’(2010~2014년)을 보면 종교인이 저지른 5대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 강제추행·절도·폭력) 건수는 매년 1200~1300여 건에 달했습니다. 폭력이 1,097건이 가장 많았고 절도(155건)와 강간·강제추행(82건) 순이었습니다. 이 또한 예전과 달리 피해자의 신고율이 높아서 나온 결과입니다. 그 전에는 얼마나 많은 신도가 ‘영적인 학대’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지난해 10월 불교사회연구소가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일반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가 절반 이상이 종교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것과도 같습니다. 
 
만일 썩은 과일이 아니라 우리 몸의 한 부위라고 생각해보십시오. 발이 썩어가고 있다면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종교라는 울타리에서 아동 성추행범을 품고 있다면 거기가 교도소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물론 영화는 가톨릭만 칼을 겨누지 않습니다. 언론인 또한 취재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방조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를 통해 종교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썩은 사과’는 없는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가톨릭 독자가 상당함에도 취재를 허락한 보스턴 글로브 사장이 빛나는 이유입니다. 오래전에 탈세사건으로 검찰에 소환된 언론사 사장을 향해서 기자들이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친 모습과 대비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