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이 다가온다. 이날이 되면 태극기를 집에 게양하고, 독립 운동가를 추모한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올해 96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 특히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는 ‘태극기 몹’이 펼쳐진다. 지난 12년 동안 국학원이 선보인 퍼포먼스다. 매스컴 또한 삼일절을 즈음해서 독립운동 관련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하나가 있다. ‘처형’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사항이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일례로 윤봉길 의사를 살펴보자.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커우(虹口) 공원 의거에 성공한다. 곧 일경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그해 5월 25일 상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윤 의사는 일본 오사카로 호송된 뒤 1932년 12월 19일 가나자와(金澤)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십자가 형틀에 매어 총살된다.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한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은 ‘윤봉길 의사 처형 장면 사진 공개’라고 썼다. ‘처형’이란 표현은 일제가 주어일 때 쓸 수가 있다. 우리나라가 주어라면 순국(殉國)이라고 해야 한다. 지금 국내 최대 포탈사이트 네이버(naver.com)에 ‘윤봉길 의사 순국 사진’이라고 검색해보자. 사진을 찾기가 어렵다. 반면 ‘윤봉길 의사 처형 사진’이라고 쓰면 무릎 끓고 형틀에 매인 윤봉길 의사의 사진부터 나온다. 아래로 내려가면 뉴스, 블로그, 웹문서, 카페 등에도 ‘처형’이라는 표현이 담긴 수많은 콘텐츠를 볼 수가 있다. 이러니 국민들은 자기도 모르게 ‘윤봉길 의사는 처형당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번째로 ‘일제강점기’란 표현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살펴보니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식민통치를 당한 35년간(1910∼1945).

어떻게 읽혀지는가? 일제에 한 번도 저항을 해본 적이 없고 그저 당한 기간으로 생각되지 않는가? 그래서 민족 수난의 역사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일제와 전쟁을 벌인 독립운동가와 태극기를 흔들면서 비폭력 저항을 펼친 선조의 역사는 없었다는 말인가? ‘일제강점기’나 ‘식민지기’가 아니라 ‘대일항쟁기’라는 용어로 바꿔야 한다. 이를 처음으로 제기한 복기대 인하대 교수는 “식민지나 강점기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시기에 해당하므로 그때 일어난 일은 한국사가 아니라 일본사가 된다”라고 지적했다.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하던 시기를 대몽항쟁기라고 쓰듯이 ‘대일항쟁기’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정문헌 의원외 58인의 발의로 일본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일제강점기 등 유사 표현을 ‘대일항쟁기’ 등으로 바꾸자는 결의안이 상정돼 155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라는 단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독립 운동가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제와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오로지 조국의 광복과 후손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들의 죽음은 성스러운 것이다. 독립 운동가를 범죄인처럼 처형당했다는 표현을 후손이 쓰면 안 된다. 또한 그들이 살았던 ‘35년’은 강점기가 아니라 대일항쟁기라고 기려야 한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는 우리부터 고쳐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