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이 새해 첫날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윤제균 감독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 시대 고생하신 부모님 세대에 헌정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윤덕수(황정민 분) 일대기로 본다면 눈물만 흘리고 만다. 윤 씨에게도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 영자(김윤진 분)에게 70년 만에 선장이 되고 싶었다고 꿈을 말한다. 그 계기는 어린 시절에 만난 정주영이었다. 둘의 대화를 들어보자.

“나는 외국에서 돈을 빌려와 이 땅에 조선소를 지을 거다.”
“(아저씨) 미친 거 아냐, 어떻게 배를 만들어? 왜, 아예 국산 자동차를 만든다고 하지.”

청년 사업가 정주영의 눈빛은 빛났다. 그는 강원도 통천군 아산마을에서 농사짓는 집안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윤덕수와 달랐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남의 삶이 아니라 도전의 삶을 택했다. 가출한다. 인천에서 막일꾼으로 품을 팔다가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에서 점원으로 취직했다. 소년 정주영은 더 빨리 배달하기 위해 자전거 타기를 밤에 연습하고 회계장부를 정리하고 곡물들을 분류했다. 쌀가게 주인은 아들이 아니라 정주영에게 쌀가게를 넘겨준다. 이후 도전은 계속된다. 조선소를 짓겠다는 정주영의 꿈은 이루어진다. 지금 현대자동차는 전 세계인이 타고 있다. 윤덕수가 상상할 수 없는 꿈의 세계를 우리들은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봐, 해봤어’라는 말이 책 제목으로 출간된 올해가 정주영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다.

현대 정주영 회장을 수련지도 했던 도전가 일지 이승헌을 만나보자. 그는 세계적인 뇌교육자이자 명상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30대 초반은 경기도 안양 충현탑에서 시민에게 건강을 지도하는 강사에 불과했다. 일지는 “당시 내가 꿈이 없었다면, 지금도 공원에서 단전치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가 35살이던 1985년 2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25평 단학선원(현 단월드)을 세웠다. 이후 발전을 거듭해 전 세계인들이 단학과 뇌교육을 배우고 있다. 당시 단월드 근처에 있던 국밥집은 지금도 국밥을 팔고 있다.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만 꿈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미래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의 삶은 도전으로 요약된다. 40대 초반에 혈혈단신 미국 개척 길에 오른다. 50대는 국학원과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를 세운다. 대부분 4050세대가 정년을 앞두고 노후를 걱정하는 것과 전혀 다른 행보다. 그는 지난해 은퇴했지만, 올해 벤자민인성영재학교를 세웠다. 청소년에게 꿈의 1년(Dream year)을 통해 제2의 벤자민 프랭클린, 제2의 정주영을 길러내겠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도전’이란 단어가 2030세대나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수십 년을 어부로 살다가 이대로 죽겠구나라고 뒤늦게 교수에 도전한 사람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늦었다면서 만류했다. 그는 마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로 다니면서 공부했다. 당시 지도교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는 “코피를 흘리면서 공부했다”라는 것이다. 그는 환갑을 앞두고 대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의 친구들은 지금도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있다.

새해 해돋이를 보러 산이나 바다로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해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매일 뜨기 때문이다. 태양을 보러 가는 그 정성으로 365일을 살아가는 것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윤덕수는 장남으로서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없었다. 현대 정주영 회장과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그리고 어느 50대 교수는 도전하는 삶을 택했다. 그들의 인생은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靈感)을 준다. 1월은 다이어트, 영어공부, 승진, 창업 등 수많은 결의를 새기는 달이다. 그러니 도전하자. 그러면 가슴에서 희망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