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의 사랑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가를 뒤흔들고 있다. 진모영 영화감독이 제작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그것이다. 외국영화가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선전하고 있다.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가 눈싸움하고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은 나이 듦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게 한다. 대다수 관객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주인공이다. 
 
하지만 죽음이 겨울처럼 다가온다. 그들은 거부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병마 앞에서도 할머니는 좌절하지 않는다. 더욱 보듬고 사랑한다. 다시 봄이 오고 할아버지는 거동이 힘들어진다. 길을 가는데 중간에 쉬면서도 같이 간다. 둘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부모를 떠올린다. 86분 상영 동안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관객이 한 둘이 아닌 이유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적고 여자라고 해서 할머니를 하대하지 않는다. 높임말을 쓴다. 밤중에 화장실에 간 할머니가 무섭다고 하니깐 노래도 불러준다.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모습이다.
 
반면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자녀들은 그러지 못한다. 자녀끼리 싸우는 모습에서 노부부는 말없이 가슴 아파한다. 또 효도를 다 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반백의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꺼이꺼이 운다.
 
지난 9월에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1년 전에는 크게 다치셨다. 병원에서 입원등록을 마치고 혼자서 멍하니 앉아있었던 기억이 있다. 
 
3일 동안 상주인 사촌 동생과 문상을 받았다. 밤을 지새우면서 작은아버지 영정을 보고 있으니 ‘1년이란 시간이 있었구나’라는 후회가 들었다.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지내던 작은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쳤다. 
 
많은 조의에 감사했지만, 그중에 생전 작은 아버지를 찾아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친척 중에도 다섯 손가락이 안 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조의금으로 장례식을 찾는 것보다 생전에 밥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 말을 나무와 석상에 새겼다. 죽음을 대비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라는 화두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할아버지 무덤 앞에서 땅을 치고 울고 있는 할머니. 결국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노부부는 육체를 떠나서도 영원히 사랑하리라는 것을. 왜냐하면 그들은 ‘순간’을 살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지금’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내년에는 미뤘던 가족여행을 실천하고자 한다. 작은아버지를 화장터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음을 먹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보다 우리는 사랑을 나눌 시간이 많이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