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시장에서 음식을 파는 한 아주머니가 있다. 그녀는 외국인을 만나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장사했다.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온 수재가 아닐까? 웬걸, 그녀의 영어 실력은 중학교 수준이었다.(KBS 스패셜 당신이 영어를 못하는 진짜 이유)

방송이 나온 지는 오래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10년이 넘도록 영어를 공부해도 외국 관광객을 만나면 자신 있게 길을 안내하는 한국인이 드물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 차이는 교육방식이었다. 핀란드는 영어시험이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영어를 배울 뿐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시험점수가 중요하다. 외국의 책이나 영화를 보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지는 않는다. 핀란드 사람들은 토익점수가 없어도 외국인과 장사하는 것이 다른 이유다.
 
핀란드 영어교육 컨설턴트 시르쿠 니카마 박사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핀란드에서는 18살 무렵 고교졸업 뒤 치르는 국가적 성취도평가 외에는 그 어떤 국가적 시험도 없다”라며 “한국은 초등학생을 포함해 해마다 3개 학년이 국가 단위의 시험을 치르느라 학생·교사 모두 압박을 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핀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 PISA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시험이 단연 ‘갑’이다. 시험 앞에서는 교사, 학부모, 학생은 ‘을’일 수밖에 없다. 최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펴낸 '공부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우리들' 보고서가 주목을 받았다. 어린이 연구원 김광현 군 등 5명이 조사를 진행했다. 92.7%가 사교육을 받고 있고 일주일에 평균 42.2 시간을 공부한다. 초등학교 5∼6학년 어린이 110명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아니,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보고서를 읽다가'어린이들이 행복해지는 방안'이 눈길을 끌었다. 첫 번째가 시험 줄이기다. 1년에 5~10개의 시험을 1학기에 한 번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시대회인데, 학교나 부모의 강압에 의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자유학기제’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1학기만이라도 아이들이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방식이다. 특히 제주도가 지난 9월부터 모든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해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하면서 학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진로활동과 직업체험이 신기할 것이다. 
 
이 제도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를 참고한 것이다. 1974년 리처드 버크 당시 아일랜드 교육부 장관이 시험의 압박에서 학생을 해방시키고 폭넓은 학습경험을 유도하겠다며 도입한 제도다. 전환 학년을 거친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성취도, 자립심, 진학률에서 경쟁력을 더 갖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6학기 중에 1학기만 한다는 점이고 학교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다르다.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또한 시험이 없다. 학생들이 각 분야 전문 멘토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꿈을 설계한다.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와 가장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뫼비우스 갤러리에서 ‘2014 벤자민인성영재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학생들이 성적표가 아니라 공들여 만든 그림, 사진, 도자기 등으로 부모와 대화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물론 시험이 없으면 안 된다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시험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험을 위한 시험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정부와 대안학교에서 시험이 없는 ‘교육 프로젝트’에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