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가 먹고 싶었다. 마트를 찾다가 농협에 들렀다. 둘러보니 사과, 배, 감은 있는데 정작 바나나가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저희는 수입산을 취급하지 않습니다’라고 잘라서 말했다. 당연하다 듯한 그의 표정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식품은 국산과 수입산으로 나뉜다. 표기도 의무화하고 있다. 혹여나 수입산을 국산이라고 속여서 팔았다가는 법적인 제재도 받는다.

문득 한국의 문화(Korean Culture)는 어떠한가? 라는 물음이 들었다. 서양음식이 우리의 식탁을 차지한 만큼 문화 또한 거침없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할로윈데이(Halloween Day)’를 들 수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는 ‘불금(불타는 금요일)’과 만난 할로윈으로 구름 인파를 기록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젊은이의 거리는 각양각색의 코스튬(Costume: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붐비었다. 덕분에 유통업계나 외식업계는 ‘반짝 특수’를 누렸다. 매스컴이 비중 있게 보도하니 포탈사이트에선 ‘할로윈데이’가 상위 검색어가 됐다.

반면 1년에 한 번밖에 입지 않는 고가의 할로윈 옷을 사는 부모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7만~8만원에서 많게는 90만원에 달하는 초고가 아동용 의상도 나왔다고 한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부모들의 심리도 한몫했다.

그렇다면 ‘할로윈데이’는 무엇인가? 자료를 찾아보니 매년 10월 31일, 그리스도교 축일인 만성절(萬聖節) 전날 미국 전역에서 다양한 복장을 갖춰 입고 벌이는 축제다.

고대 켈트인의 전통 축제인 삼하인(Samhain 죽음의 신)에서 기원했다. 켈트 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음식을 마련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림으로써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할로윈 분장의 원형이 됐다는 것이다.

귀신을 쫓는다는 뜻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동지(冬至, 12월 22일)와도 비교할 수 있겠다. 이날 팥죽을 쑤어 조상에게 제사 지내고 대문이나 벽에 뿌려 귀신을 쫓아 무사안일(無事安逸)을 빌었다.

하지만 요즘 누가 팥죽을 먹겠는가? 오히려 그 주에는 크리스마스 이브(12월 24일)에 케이크를 사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문화에 관해 ‘신토불이’(身土不二 : 사람의 몸과 땅은 서로 나뉠 수 없다), 즉 우리 것만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양인들이 우리의 춤과 노래(K-pop)를 따라 해도 설날이나 추석을 지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년 할로윈 날에도 아이들은 부모에게 귀신 옷을 사달라고 조를 것이다. 마치 11월 11일 ‘빼빼로데이’가 상업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아무 생각하지 않고 선물을 사는 것처럼.

이제는 남들이 하니깐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자녀와 대화를 나누면 어떨까? 서양에 할로윈데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동지가 있다. 또 크리스마스가 있다면 개천절(開天節)이 있다고 말이다.

훗날 아이들이 커서 외국인을 만났을 때, ‘너희만의 할로윈데이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