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앞두고 바쁜 사람들이 있다. 신년 운세를 점치는 그들이다. 사주, 명리, 관상, 성명학, 타로 등의 명패를 단 가게에선 이때가 성수기인 셈이다. 육십갑자를 음력으로 보는 사람들은 2월이 됐지만 갑오년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을미년이 되는 다음 주 설날까지는 지난해 운(運)이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흥미롭다. 세상을 보는 기준이 전혀 다르니깐. 하지만 운명을 믿느냐? 아니면 자신을 믿느냐?라고 나눠볼 수 있겠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책이 나와 있다. 공감세상에선 기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기자의 이름은 지난해 5월까지 ‘윤관동’이었다. 

옛날에는 가족의 이름을 지을 때, 돌림자로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할아버지는 ‘창’이었고 아버지는 ‘봉’이었다. 이를 항렬자(行列字)라고도 한다. 같은 집안사람들 간의 서열을 알려 주는 표지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고유한 이름은 한 글자에 불과하다. 조상들이 미리 정해둔 항렬에 따라 후대 자손들의 이름을 정했으니, 현대인의 눈으로 본다면 획일적이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겠다. 사주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기자의 옛 이름도 어머니가 마을의 한 노인에게 받았다고 한다. 사주를 보니 ‘기(氣)가 세다’면서 갓 관(冠)을 넣은 것. 갓을 쓴 아이(童)가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이었다. 개명하기 전까지는 평생을 입어야 하는 옷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2013년 5월 지인의 소개로 개명했다. 그렇다면 이름을 바꿨으니 운세가 좋아졌는가? 그런 것은 없었다. 아침에 눈 뜨고 세수하고 밥 먹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한다. 바쁘게 일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이었다. 그 하루가 모여서 1주가 되고 1달이 되고 1년이 되었다. 하지만 인생이 바뀐 계기는 됐다. 그해 전국 ‘멘탈헬스 강연회’를 취재했을 때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은 멘탈헬스 비법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소식하라, 운동하라, 좋아하는 일을 하라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소식(小食)은 쉽게 선택할 수가 없었다. 없는 살이 더 빠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겁부터 났기 때문. 그런데 소식 기획시리즈가 전환점이 됐다. 
 
나구미 요시노리 박사의 책 『1일 1식』과 SBS 스패셜 ‘간헐적 단식’이 화제가 되면서 기획보도에 대한 독자의 관심도 높았다. 밥을 적게 먹으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무예가, 교사, 플로리스트(florist·꽃장식 전문가) 등이 소개됐다.(바로가기 클릭)
 
기자도 실험에 들어갔다. 관련 책만 수십 권을 읽었다. 밥도 현미로 바꾸고 채소와 콩 등 건강식단으로 차렸다. 밥 먹지 않는 시간은 주로 걸었다. 만보기로 숫자를 매일 기록했다. 이후 달라진 점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일을 똑같이 하는데 집중력이 좋아졌다. 지방 출장을 다녀와도 다음날 새벽에 일어났다. 체력이 향상된 것을 느꼈다. 이때부터 병원과 약국과도 멀어졌다.
 
소식의 목적은 체중감량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인터뷰이의 지적이 옳았다. 다이어트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몸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불필요한 살을 빼는 거라고. 무엇보다 생활이 다이어트가 됐다. 이를테면 돈, 인간관계, 에너지 등이 그렇다. 1년 가계부를 정산해보니 외국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돈을 모아서 놀랐다. 그제야 자신이 생겼다. 과거의 이름이 아니라 새 이름으로 살 수 있겠다고. 인생의 주인이 되자고. 멘탈헬스 라이프로 스스로 검증하고 서울동부지방법원을 가게 된 이유다. 개명신청을 하니 3개월 뒤에 새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가 있었다. 절차는 어렵지가 않았다. 이후 은행이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명을 모두 해야 돼서 그렇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개명은 운명이 아니라 결심과 같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러한 뜻을 가진 이름에 걸맞게 살겠다고. 하지만 과거와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면 새 이름은 의미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결의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고 지적한 오마에 겐이치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사람이 바뀌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시간 분배를 바꾼다. 두 번째는 사는 곳을 바꾼다. 세 번째는 사귀는 사람을 바꾼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아니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가장 무의미한 일은 ‘결의를 새로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