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천안에서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평택을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한 중년의 남자 A 씨가 여자와 삿대질하면서 싸우고 있었던 것. 스마트폰에 빠져 있던 승객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A 씨는 멈추지 않았다. 10분이 지났을까? 승무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승객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공장소인데, 조용히 하라”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남자 A씨. 이때 또 다른 남자 B 씨가 ‘아니, 이 사람이 참다보니깐’ 이라며 다가갔다. 멱살을 잡고 뒤로 밀쳤다. 뒤엉켜 싸울 태세다. 그때 ‘승무원’이 나타났다. A 씨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서울역에서 내리기 전 B씨를 만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A 씨가 처음으로 시비를 건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옆에 앉아있던 베트남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베트남 남자도 만났다. 그는 2년 전에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둘의 이야기는 이렇다. 평택역에서 베트남 남자가 열차를 탔다. 그는 창가에 앉아있던 A 씨에게 본인의 자리이니 비켜달라고 했다. A 씨는 “어디까지 가느냐?”라고 되물었다. 한국말이 서툰 그는 “서울”이라고 대답했다. A 씨가 “왜 반말이냐?”라고 말했다. 이어 자리는 바뀌었다. 하지만 베트남 남자에 대한 A 씨의 욕설은 계속됐다. 베트남 남자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그만하세요!”라면서 일어선 것. A 씨는 “넌 왜 끼어드냐”라고 말을 하면서 서로 고성을 주고받게 됐다고 한다. 이를 제지한 것이 남자 B씨다.

그렇다면 열차에서 소란을 피운 A 씨는 경범죄로 처벌을 받았을까? 서울역에서 그 승무원을 찾았다. 승무원은 “A 씨는 술에 취해 있었다”라며 “수원역에서 내리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경찰에 인계한 것도 아니고 훈방조치로 끝낸 것이다. 그는 단 2명으로 많은 승객을 관리하느라 매번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남자 승무원이 늦은 이유는 승객들이 신고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열차 내에 안내전화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해 코레일 언론홍보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열차 승무원에게 직접 신고하는 방법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화로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화로 신고하는 것은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코레일 측은 지난해부터 기초질서지키기 캠페인을 오프라인과 SNS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지하철은 어떠할까? 서울지하철은 승객이 불편을 겪으면 전화나 문자로 신고할 수 있다. 최근에는 보안관이나 경찰 출동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모바일 앱까지 나왔다.

앞으로도 기차에서 소란이 발생하면 승객이 직접 승무원을 찾아야 한다. 그런 ‘솔선수범 승객’이 없으면 대다수 승객은 불편을 겪어야 한다. 심지어 칼부림이 일어나도 어쩔 수가 없다. 승무원이 와야 하니깐.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음주소란을 일으키면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20호에 따라서 범칙금 5만 원을 내야 한다. 그러나 수원에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A 씨는 또 다른 기차를 탈 것이다. 제2의 소란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열차의 안전은 승무원이 아니라 B 씨와 같은 용감한 시민에게 달렸다. 그는 베트남 남자에게 “한국인이 모두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베트남 남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코레일이 벌이는 기초질서지키기 캠페인보다 중요한 것은 열차 내 ‘신고전화’를 부착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