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도 동경(東京)에 가면 시내 한 복판 약간 언덕진 곳에 일왕이 묵고 있는 궁성과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가 있다. 야스쿠니신사 말고도 전국전몰자 위령소인지 뭔지 하는 군국주의시대의 예배소들이 자리하고 있어 일대는 일제의 고물 전시관이다.

금년에 아베 일본 수상은 야스쿠니신사에 가지 말라는 미국의 충고 때문에 선물(공물)만 보내고 그 대신 야스쿠니신사 바로 옆의 전국 전몰자 위령제에 참석하여 눈 감고 아옹한다고 한다. 이런 연극이 해마다 계속되고 있으니 제삼자의 눈에는 웃기는 일로밖에 볼 수 없다.

최근 신문보도에 따르면 야스쿠니에 모신 문제의 전범자는 극비리에 조성된 순국칠사묘殉國七士廟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니 더욱 웃기는 장난이다. 이 묘를 조성하는 데는 아베 수상의 외할아버지가 깊이 간여하였다는 것이니 대동아침략전쟁을 도발한 일본이 자신의 만행을 어떻게 해서든지 영웅들의 전쟁으로 위작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묘지에 침을 뱉어라>는 책으로 유명한 어떤 정치학자는 지금과 같은 동북아 국제정세라면 한일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왜곡 문제라든지 종군위안부 문제, 야스쿠니신사 문제 등을 가지고 따지고 있는 것은 일본과 전쟁하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물론 세계 평화를 위해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뉴스위크 <한국어판> 8월호에도 이상한 말을 하는 캐나다인 학자가 있다. “이제 한국도 광복하여 빛을 찾았으니 이제는 그 빛으로 미래를 비추시오.“ 외국인이니까 한국을 잘못 알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50년 침략과 식민통치로 시달린 한국이나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과 남경학살사건을 당한 중국이 과거의 원한을 잊지 못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알파가 있다. 그 알파가 무엇이냐 하면 한국의 삼합정신三合精神이다.

적어도 우리 한국은 오늘과 미래의 일을 버려두고 지난날의 역사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래금去來今이라 했다. 거래는 과거와 미래이다. 그리고 금은 오늘이다. 이 셋은 엇물려 있다. 별개의 시간이 아니다. 한국인은 건망증이 심하고 싸움에 약하고 타협에 성급하다고 한다. 어정쩡한 덕담에 잘 속아 넘어가니 신중하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우리도 모르는 화백和白과 삼합정신이 있다. 이 정신을 건드리면 안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실패는 1965년의 한일조약이었다. 그 한 가지 실수가 만사를 그르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박근혜정부의 대미·대중 외교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번 광복절 축사에서 고려 말의 유신 이암李巖의 말을 인용하면서 “나라는 형체일 뿐 그 속에 든 혼 즉 역사가 더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암을 아는 국민이 적다. 아니 없다. 역대 대통령은 하나같이 이 혼백논魂魄論을 알지 못했다.

 “일본은 천황제를 버려야 한다”고 어떤 일본인 학자는 말하지만 일본이 천황을 앞세워 정치한 역사는 1천 년이 넘었다. 그러니 천황제 없이 일본 정치는 살지 못한다. 알고 보니 천황은 백제인의 후손이다. 한중일 삼국이 문화적으로나 혈연적으로 얽혀있는데 이 세 집의 역사는 매우 복잡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다가 패전한 것을 종전終戰, 중국은 승전勝戰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8.15를 광복光復이라 부르고 있다. 

북한은 얼마 전 6.25 정전停戰을 승전이라 하면서 허풍을 떨었으나 그 업보業報가 무거울 것이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지난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그릇된 미래관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삼합정신으로 일관해야 한다.

얼마 전에 필자는 두만강 중류의 삼합三合이란 곳을 구경했다. 허가 없이 북한으로 들어가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강 건너에서 망원경으로 내려다보았을 뿐이다. 두만강이 백두산에서 동북쪽으로 흘러가다가 얼마 못 가서 세 갈래 물줄기가 하나로 모이는 곳이 삼합이다. 삼합은 죽은 김정일이 태어난 곳이라고 하나 거짓말이고 김정일이 태어난 실제 장소는 러시아 연해주의 하바롭스크였다. 중국 저편에서 삼합을 내려다보니 죽은 도시와 같았다. 공장 굴뚝이 모두 셋이었는데 일제 때 세웠다는 이 굴뚝에는 연기가 나는 것 같지 않았다.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삼합이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天地人)이 합당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셋이 서로 어긋나면 역사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1에 1을 더하면 2가 되고 2에 1을 더하면 3이 되지만 3에 3을 합하기 시작하면 무한으로 통한다. 한국인이라면 3합의 뜻을 꼭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삼합은 세계 최초의 경전 천부경天符經에 나오기 때문이다. 천부경에 보면 삼합의 현묘한 도가 적혀 있는데 노자가 동방에 와서 3합을 배워 도덕경을 지었다는 때는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서울 남산골 선비가 있다. 옛날에는 서울 북촌에 부자들이 살고 남촌에는 정권을 빼앗긴 가난한 선비들이 살았다. 요즘의 강남강북과 같은 형세였다. 그러나 시골에서 서울 구경 온 사람들은 반드시 남산에 99간 대궐집이 있다는 소문으로 듣고 찾았다. 그러나 가서 보면 초가3간이 있어 가난한 선비가 비도 안 오는데 나무개를 신고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실망하고 돌아갔으나 거기에는 엄청나게 큰 교훈이 들어있었다.

초가3간에는 안방이 있고 건너 방이 있고 그사이에 마루가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안방에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계시고 건너 방에 내가 살았다. 모두 1촌 2촌간의 가까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 초가 3간이었던 것이다. 1촌의 촌이란 손가락 한 치의 거리란 뜻이었다.

이처럼 아무리 초가지붕 밑이라도 그 아래에는 함께 먹고 자는 식구가 살았고 손님이 오시면 정성껏 대접하였다. 잘살고 못사는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8촌까지가 일가를 이루어 한 식구나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다. 이같은 초가3간의 생활철학은 한·중·일 삼국으로 뻗어나가 한 문화를 이루었다. 『25시』를 쓴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는 “전통문화를 지키며 사는 나라를 보려면 한국에 가보시오“라고 말했다.

초가3간은 새마을 운동으로 자취를 감추었으나 그 정신은 지금도 한국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인데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삼합 정신이다. 

삼합의 하나인 일본은 지난날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 여러 나라에 큰 피해를 입혔다. 사과하기에는 그 죄가 너무나 컸다. 그러나 일본은 사과하는 대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일본천황이 왜 자기가 천황인지 모르고 살고 있다. 일본의 근대사는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라는 대중소설가가에 의해 수행되었다. 우리 강단사학자들은 그것도 모르고 우리 역사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왜 일본이 한국 침략은 옳았으나 중국침략만 잘못했다고 가르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다. 일본 천황이 전쟁에 지고 발표한 대국민  종전조서가 남아 있다.

“짐朕이 당초에 영국과 미국 두 나라에 선전宣戰한 것은 동아시아의 안정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지 타국의 주권을 배척하여 영토를 침략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짐의 육해군장병과 1억 국민이 최선을 다해 잘 싸워주었으나 전세가 호전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적(영미)은 새로 만든 잔혹한 폭탄(원자탄)을 사용하여 살상을 자행하였으므로 이대로 싸우다가는 우리 일본민족이 멸망할 것 같아서 연합국이 요구하는 공동선언(무조건 항복)에 응하기로 하였다. 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아시아의 해방에 협력하여 준 맹방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한다.”  

일본의 침략전쟁에 협력한 나라는 이 지구 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기에 연합국은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을 도둑놈이라 매도하였다. 우리는 최근 아베 정권이 일본을 또다시 군사대국화하려고 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것은 한국이 초가3간에서 지켜온 삼합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