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성공단에 압류당했던 남측 중소기업들의 완제품과 고장 난 기계들을 자동차 지붕 위에까지 가득 싣고 돌아오는 광경을 보고 새삼 6.25 남침 때 피난하던 일들을 생각나 눈물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남으로, 남으로 피난 가던 동란 당시의 피난민들. 그 속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이다. 개성공단 회담을 보면서 우리 연배의 사람들은 북한이 지금 막 쳐들어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60년 세월이 어제 오늘의 일같이 느껴져 새삼 불행했던 우리들의 현대사가 눈물겨운 것이다. 역사란 되풀이 된다고 하더니 정말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국회의원 나리들은 60년 전과 같이 정치 싸움을 하는데 여념이 없다. 남북문제와 동서 갈등의 문제는 언제 끝날 것인가.

오늘의 남북관계는 역사가 아니라 바로 현실인 것이다. 개성공단 문을 쾅 닫고 “나가라!“고 소리 지르던 북한이 과연 그들이 우리 동포인가. 모두 의심했다. 그런데도 남의 종북파들은 이제 국회에 자리까지 차지하고 대한민국 정치자금을 받고 북한을 지지하고 남한의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으니 소름이 끼친다.

필자는 6.25 당시 군에 입대하여 개성까지 올라갔다가 중공군이 개입한다 하여 후퇴하였다. 그런 우리에게 북한이 핵 실험을 하고 탄도 미사일을 쏘고 위협한다는 일은 정말 미친 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역사는 과학이라고 배웠으나 과학이기 전에 교훈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지나간 과거는 모두 교훈이 되겠지만 반대 교훈이 되는 것도 있다. 국사 교과서를 보면 신라에 화백제도가 있었다고 하니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일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동서 당쟁은 절대 되풀이해서는 안 될 반대교훈이다. 역사 선생님들은 구질구질한 사실들을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가르칠 일이 아니라 우리가 배워야 할 역사적 사실과 절대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사실들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교육하여야 하는 것이다.

화백을 나랏일을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제도로만 알면 안 된다. 단 한 사람이라도 결정으로 인해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제도가 화백이었다. 그러므로 역사적 교훈 가운데 가장 본받아야 할 것은 화백제도이다. 화백의 화和 자는 벼 화禾자 입 구口자에 붙어있는 벼와 구의 합성어이다. 혼자 먹지 말고 모든 사람이 함께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빈부격차가 심하고 부정부패 사건이 매일처럼 신문에 나는 그런 때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를 정구라 했으나 그보다 더 교훈적인 이름은 태평太平이다. 태평성대란 말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말이다. 백두산 아래에 천평天坪이 있는데 바로 그곳이 환국桓國이었다는 것이다. 

신라를 건국한 진한 사람들은 화백으로 박혁거세를 임금으로 뽑았다. 그들은 하루는 아사달에서 회의를 열어 우리도 임금을 뽑아 떳떳하게 살자고 토의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마天馬가 내려오더니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 사람들이 현장에 가보니 보자기에 싼 옥동자였다. 사람들은 한 사람도 이의 없이 이 아이를 임금으로 삼기로 하였다. 이 결정이 바로 화백회의에서 내린 화백이었다. 이 제도를 원시 민주주의라 하여 우리나라에도 이런 민주주의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삼국사기』가 기억해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들여온 의회민주주의로서 화백제도와는 뿌리를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원리는 다 같다. 서양의 민주제도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여 매사를 결정하는데 다수결이라 해서 반드시 최선의 인물이 대통령으로 뽑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일단 다수결로 결정되면 반대한 사람들도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 이것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아는 일인데 요즘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이 제도를 모른다고 한다.

신문에 보니 지난날 노무현 대통령 때 국무총리를 하여 국사를 담당했던 사람이 야당의 상임고문이라 하면서 대통령을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의 후손이라 폭언하였다 한다. 그러면 이 폭언은 어디서 나온 말인가. 설마 오늘의 대한민국이 화백제도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전임 대통령을 모시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를 지낸 분인데 설마 <당신>이란 말의 뜻을 몰라 대통령을 향해 <당신>이라 불렀는가. 국어사전을 돌아볼 것도 없니 상대와 싸우기 직전 <당신>이라 말을 퍼붓는 것이 한국인의 어법이다. 그러니 그가 말한 당신이란 말은 <당쟁의 말버릇>에서 나온 막말일 것이다.

최근 어느 신문에 보니 마치 단재 신채호가 했던 말을 다시 하는 것 같아 놀랐다.

역사는 그 나라 국민의 혼과 같은 것인데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시민으로 자란다면 혼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고 거기다가 잘못된 역사 인식이 뿌리박히게 되면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신문에 글 쓰는 사람 가운데에도 이렇게 우리 역사를 들어 좋은 충고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반가웠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다. “역사교육은 강화해야 하고 또 바르게 가르쳐야 하지만 국사를 수능과목에 넣기만 하면 깨끗하게 끝나는 일이다.” 왜 이 말이 문제 되는가 하면 아무리 국사과목을 수능과목에 넣어도 국사교육의 내용 또는 국사교과서의 내용이 시정되지 않으면 도리어 국사교육이 큰 해가 되기 때문이다.
 
6.25는 우리가 경험한 역사이다. 그러나 화백과 당쟁은 이름 그대로 역사적 교훈이다. 화백은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일이 있어서는 가결되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만장일치의 제도였다. 오늘의 화백은 지난번 대선으로 다수결로 결정이 났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안 된다는 화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무신과 문신이 싸우다가 몽고의 침략을 받고 나라가 망했다. 이 과오를 다시 되풀이한 것이 조선시대의 당쟁이었다.

당쟁을 일명 붕당이라 하면서 마치 요즘의 정당싸움처럼 예찬하는 학자가 있다. 일제가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여 조선을 독립불가능의 나라로 만든 일이 있었음으로 당쟁을 과장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당쟁을 마치 잘한 일처럼 붕당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역사를 다시 왜곡하려 드는 제2의 역사왜곡이다. 특히 요즘 민주주의 세상이라 하여 이제 막 끝난 대선 결과에 불복하여 정통성 운운하는 자들의 농간은 아마 얼마 뒤 천벌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대통령 일가를 가리켜 귀태-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들- 라 폄하하는 언동은 조선시대 당쟁을 뺨치는 망언이다.

조선시대 당쟁은 임진왜란 발발 직전 적국의 정세를 탐지하기 위해 일본으로 보낸 사신, 황윤길(서인)과 김성일(동인)이 돌아와서 임금에게 각각 다른 적정 보고서를 낸 것이 그 압권이었다. 이 사건은 이래서는 안 되는 반대 교훈으로서 반드시 역사교과서에 올라 있다. 역사적 교훈으로 이보다 더 유명한 사건은 없다. 당쟁을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결정적인 교훈이다.

역사교육은 강화해야 하고 또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다 중요하다. 수능으로 들어가면 깨끗하게 끝나는 일이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