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노무현 대통령의 NLL(서해휴전선) 관련 문서 일부가 없어졌다고 하여 야단이 났었으나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하는 식으로 드라마의 막이 내렸다.

이런 싱거운 드라마를 지켜보던 국민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의 말에 의하면 “이번 사건의 본질은 서해휴전선도 아니요 남북문제도 아닌 여야 간의 주도권 다툼이었으며 우리 국회가 이렇게까지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이다.“고 혹평하고 있다.

한 달 동안이나 국회가 국민에게 보여준 휴전선 연극은 결국 여야 간의 책임 떠넘기기로 끝났다는 것이니 이건 구태의연한 정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문서는 조선시대라면 사초史草에 해당하는 보물인데 이것을 누군가가 분실 내지 훼손했다는 것이니 그 책임자는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

임진왜란 때 사초를 버려두고 서울을 빠져나간 것은 선조 임금 자신이었다. 임금 자신이 사초를 보관하지 못하였으니 그 책임을 사관史官에게만 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요번에도 대통령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대통령이 이미 죽었으니 누군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 때 서울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한 임금이 14대 선조였다. 서울을 수복한 뒤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할 것인가를 놓고 토의가 벌어졌다.  차마 임금 앞에서 임금을 책임자라 할 수 없어서 사관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에 보면 임금은 처음부터 서울을 사수死守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피난할 궁리만 하다가 의주까지 가서 여의치 않으면 명나라로 망명할 생각까지 하였다. 

다행히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한 달 후 압록강을 건너와서 조선을 구해주었다. 6.25 때 시민 몰래 서울을 탈출한 이승만 대통령도 잽싸게 한강을 건너 피신하였으나 UN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동경에서 서울에 오실 줄은 몰랐다. 그래서 부랴부랴 영등포로 달려가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이승만에게 한국군 총사령관이 뚱뚱한 채병덕 장군이란 사실을 알고 "저 사람을 해임하시오"라고 권했다. 그 바람에 아직 30대 청년이었던 정일권이 한국군 총사령관이 되었고 한국의 전작권戰作權은 그때 맥아더로 넘어갔다.

생전에 전쟁이라고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선조나 외교밖에 모른다고 했던 이승만이나 모두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니 만일 명나라의 장군 이여송이나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둘 다 적에 잡혀가서 나라가 망하는 것이었다.

조선은 명나라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고 대한민국은 미국을 비롯한 참전 16개국에 감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 번 은혜를 입은 나라에 대해서는 망할 때까지 아니 망한 뒤에도 보본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야 하는데 국정을 책임진 국회의원들이 서로 헐뜯고 싸움만 하고 있으니. 어제 그저께만 하여도 북한이 남침할 태세를 취했는데 벌써 잊어버리고 여야가 싸움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러다가 남침이 실제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걱정하였다.

조선왕조의 병폐는 당쟁이었다. 대한민국도 애초부터 여와 야로 갈리어 싸우는 것이 병폐였다. 동인 서인으로 갈리었는데 동인은 영남, 서인은 경기충청도 사람들이었다. 동인은 난국자亂國者요 서인은 망국자亡國者라는 말이 있었다. 동인은 나라를 어지럽히고 서인은 나라를 망친 놈들이란 말이다. 왜 이 말이 나왔느냐 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선조는 동인 서인이 하도 싸워서 그러면 “당신들이 일본에 가서 적이 쳐들어올 것인가 아닌가를 살펴보고 오시오“라고 했다.

그런데 서인인 황윤길은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왜 그런가 하니 "적이 성마다 힘없는 병사를 보초로 세워 우리의 눈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라고 보고했다. 동인인 김성일은 적장인 풍신수길의 얼굴을 보니 원숭이와 같으니 그런 얼굴 가지고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선조는 "황윤길이 잘 못 보고 보고하였으니 처단하십시오."라고 주장하는 동인의 말을 믿고 그러면 “오늘부터는 모두 놀아라. 성곽을 보수하는 작업도 중단하라. 술도 마시라.”고 명령했다. 그 바람에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왜군이 부산항에 침입하는 것을 몰랐고 20일 만에 서울 숭례문 밖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라 자빠졌다.

이승만 대통령도 사초 같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몰랐고 서울역에서 특별열차를 탔다. 시민들이 북한군이 개성을 점령,  서울 미아리 고개로 넘어오고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을 때 자기만 몰래 기차를 탄 것이다.

선조도 몰래 서울 영천고개를 넘어가려 하다가 시민들에게 들켰다. 한 가지 다른 것은 이승만이 부산에서 서울로 환도한 뒤에도 사초가 없어졌다 하여 놀라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조는 달랐다. 서울로 돌아온 뒤 선조는 “사초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다. 사초를 서울에 두고 간 선조는 압록강 변에 가서 명나라 장군 이여송에게 절을 하였다. 임금이 남의 나라 장군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항복이나 다름없는 치욕이었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 임금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으나 선조도 이여송에게 절한 것이다.

6.25 때 이승만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맥아더가 가까운 일본 동경에 와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머나먼 미국에 있었다면 그렇게 빨리 서울에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각설하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는 김· 노 두 대통령뿐만 아니라 야당의 2대 공로로 자랑하는 치적이다.

정상회담의 대가로 큰 뒷돈을 오갔었다는 이야기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인데 그 말은 전혀 없다.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 돈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였다는 소문도 널리 알려진 일인데 왜 숨기려 하는가.

서해휴전선문제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우리 돈으로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기 위한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으로 북으로 넘어간 자금이 모두 남북정상회담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서해휴전선에 관한 담화록이 사라진 사건도 중요하지만 앞서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말한 대로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그때 넘겨준 뒷돈 이야기 그 책임문제는 더욱 더 커진다.

역사는 일일이 인과관계를 따져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물어 따지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사초 분실의 책임은 몇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는 것으로 끝을 맺을 수 있었으나 노무현 대통령이 가기 전 김정일이 남한에서 간 선발대에게 "돈 가져왔어요. 안 가져왔다면 돌아가시오." 라고 한 바로 그 뒷돈은 영수증이 있었을 것이 아닌가.

조선시대의 일부 사초가 없어진 것은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없어진 국가 기록원의 대통령 문서는 사정이 다르다. 요즘의 여야 간 당쟁을 전쟁이라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한 이번 사고는 전쟁과 무관하고 정쟁과 유관하다.

그러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사가私家로 돌아갈 때 왜 짐이 그렇게도 많은지 모두가 의심하고 있다. 어떤 대통령은 옆집까지 사서 지하 7층의 지하실을 만들어 밤새 짐을 날라 저장했는데 만일 그것이 모두 돈이었다면 얼마 될 것인가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엄청난 거액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판국에 전두환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가 불거져 나왔으니 전·노 두 대통령의 문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 생각할 문제일 것 같다.

이번 국가기록의 분실문제는 여야 간의 당쟁으로 인하여 일어났다. 요즘의 여야 간 당쟁을 지켜보면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과 같이 시끄럽다. 만일 이런 때 남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걱정스럽다.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하에서 국회의원들은 직업화되어 싸움하는 것을 예사로 안다고 비난한다. 자기들은 웃으면서 마치 배우들이 연극을 하듯이 싸워도 그것을 보는 국민들 가슴은 타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호전적인 군부는 남침할 기회가 오는 날을 오늘인가 내일인가 학수고대하고 있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