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광복절의 달이다. 사전에 보면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 일본이 연합군에 패하여 항복하게 되어 한반도가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날이 곧 광복절”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나 광복이란 말에는 그 보다 훨씬 더 큰 뜻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원시반본原始返本이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이 말의 참뜻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하고 항복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패전도 안 하고 항복도 안 하고 저절로 종전終戰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패전 없이 종전은 있을 수 없었다. 일본의 만행 없이 세계대전이 없었다. 그래서 연합국이 전쟁을 끝낸 것이다. 그런데 왜 일본과 일본인은 종전이란 거짓말을 믿고 있는 것일까. 일본인에게 양심이 없기 때문이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다.

한편 중국은 8.15를 승전勝戰기념일이라 부르면서 기뻐하고 있다. 중국도 자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승전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자기 나라가 혼자 힘으로 싸움에 이긴 권투선수처럼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한다. 그러나 우리는 패전도 아니요 승전도 아닌 광복이란 말로 해마다 8.15를 맞이하고 기뻐한다. 어정쩡한 기쁨이다. 지금 우리는 8.15를 연합국의 승리로 인하여 광복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895년 이후 1945년까지 반세기에 걸친 항일투쟁에서 이겨 마침내 광복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순히 연합국의 승리 때문에 광복한 것이 아니다. 감나무 밑에 가만히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가 감이 떨어져 받아먹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50년이나 긴 세월을 두고 항일투쟁을 벌인 나라가 아니며 자력으로 승전한 나라도 아니다. 따라서 2차 대전에 대한 중국인의 감정과 우리 한국인의 감격은 다르다. 

보통 일본 역사교과서에는 일본이 1876년의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정치선전이 그대로 실려 있다. 일본 칼잡이 사무라이들이 여장女裝을 하고 얼굴에 분을 칠하고 궁중에 연금되었던 천황에게 군복을 입혀 군사대국의 군왕으로 만들어 한국 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와 인도 등 여러 나라를 침략하다가 마침내 연합국의 역습을 받아 패망한 수치스런 나라다. 

그럼으로 근대화에 실패한 나라이지 성공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 자민당 정권은 명치유신은 물론 1945년 8월 15일의 항복까지도 패전이 아니라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본의 역사 왜곡을 가차 없이 비판하여 왔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침략을 침략이 아니라 주장하고 한국만은 일본의 고유영토이니 그대로 지배하게 해달라고 미국에 간청하다가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물러섰다. 이것이 그들의 패전이었다. 이것을 아는 일본인도 많지 않다.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도장을 찍은 자가 바로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에게 폭탄을 맞아 절름발이가 된 사람이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이 없다. 일본은 1천 년 전부터 왜구와 임진왜란으로 쉴 새 없이 우리를 괴롭혀 온 원수의 나라이다. 일본인들은 그것을 잊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2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한일축구경기가 벌어졌는데 경기는 시시했고 그보다 응원석에서 벌어진 한일전이 더 볼만했다. 한국 측의 응원석에는 붉은 악마(치우 천황)들이 안중근 의사와 이순신 장군의 화상을 내어 걸었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대형 펼침 막을 내어 걸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씩씩한 장관이었다. 그러나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일본의 응원단 석에는 일제침략의 상징인 대형 욱일기旭日旗를 흔들었고 깃발에는 꿈(夢)이란 아리송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꿈>이란 글자를 강조하기 위해 붉은 잉크로 동그라미까지 쳐서 그 꿈이 일제의 한국 재침의 <꿈>이란 사실을 명시하고 있었다. 분명 이것은 FIFA 규정에 어긋나는 일본 응원단의 정치 망동이었으니 마땅히 그 전후 관계를 따져서 일본 측 응원단을 제지하고 중단시켜야 했다.

아무리 FIFA 규정에 어긋난다 해도 이순신과 안중근의 초상을 감히 한국 땅에서 빼앗는다는 것은 지나치다. 엄연히 한국의 영웅들이다. 일본 국영방송 NHK 뉴스에서는 일본응원단이 욱일기를 흔들어대는 광경을 보도하지 않고 한국 응원단의 걸개만 보이면서 사실을 편파 보도하였다. 이야말로 군국주의의 재발이었다. 우리는 그 같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의도적인 멸한蔑韓 보도를 수없이 많이 듣고 보아왔으나 항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달랐다.  일본정부 고위층이 즉각 나서서 유감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고 믿고 있다. 다른 나라와 싸워 지더라도 일본만은 이겨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홍익인간 이화세계 정신이다.

만일 한국인에게 그런 감정이나 정신이 없다면 한국인이 아니다. 아니 한국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한국처럼 일제에 반세기 아니 1천 년 동안이나 압박과 설움을 당한 나라가 어디 있는가 물어보아라. 만일 그런 나라가 있다면 나오라고 하고 싶다. 이러한 한국인의 일제 침략사에 대한 원한을 알면서 왜 욱일기같은 고물을 들고 들어와서 한국인의 감정을 자극하는가. 우리가 일본을 침략한 나라였다면 감이 일본에 가서 우리 태극기를 흔들어대겠는가. 집에서 조용히 TV를 보며 승전을 기원할 것이다.

독일에서는 지금도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 전범자를 찾아 가차 없이 처벌하고 있다. 비인도적이고 정의에 어긋나는 범죄행위에는 시효가 없는 것이다. 나치는 유태인 500만 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일제는 1910년 이전에 이미 한국인 500만 명을 죽였고 그 뒤에 또다시 500만 명을 죽였으니 합이 1,000만 명이다. 

동남아 여러 섬에 가보아도 패전이 되자 수많은 강제연행 한국인을 굴속에 가두어 죽었다. 일본열도의 지하에도 강제연행 강제노동 그리고 강제학살로 죽은 한국인의 원혼이 지금도 들리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일본인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도 말하는 양심이 있는 일본인이 적은 것이다. 그들에게 극비사항이 되어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일본의 젊은 한 역사가 오오하시 겐지(大橋健二)가 서울에 와서 강연하는데 “일본은 명치유신으로 망했다”고 말하면서 패전사실을 인정하였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즉각 그를 만나보고 “당신은 일본의 큰 잘못을 설명하였으니 위대한 일본인이요“라고 칭찬해 주었다.

일본인의 대다수가 일본 자민당 정부의 정치선전에 속아 명치유신 때문에 수천만의 일본인이 죽고 한국인을 죽이고 아시아를 침략하여 그 귀신을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모셨다는 사실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얼마 전 7월 27일에 대대적인 승전절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는데 온 세계인이 보고 비웃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김정은이 대중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로 북한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남북한의 영구 분단과 영구 대립밖에 없지 않는가. 그걸 슬퍼할 일이니 축하하다니 역사 왜곡도 이만저만 아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은 거짓말이다. 북한의 거짓말은 정전을 승전이라 하고 있는 것이니 일본인 못지않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본국민은 왜 한국인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반대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을 위한 반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역사를 일본인들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히로시마廣島 나가사끼長崎 시민들이 슬퍼하는 것을 아무도 함께 슬퍼하지 않는 이유를 일본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광복의 참뜻은 한중일 3국이 모두 시원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본을 되찾자는 것인데 승전이니 종전이니 하는 문제와 다르다.

광복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승패를 넘어서서 있는 것이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