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ㆍ공헌하신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을 다녀왔다. 특히 이번 답사는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에서 하는 '나라사랑 국경일 이야기' 강좌의 현장 체험학습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다. 초ㆍ중ㆍ고등학생 40여 명과 함께한 뜻깊은 답사로,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는지를 깨닫는, 나라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시간이 되었다.
1953년에 6ㆍ25전쟁으로 인한 전사자를 안치하기 위하여 동작동에 국군묘지를 조성하기로 한다. 이듬해인 1954년에 착공하여 1956년 1월 무명용사를 최초로 안장하게 된다. 60년대부터는 애국지사, 경찰관, 향토예비군으로 그 대상을 확대하였다. 이로써 국립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국가발전에 기여하신 분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시는 겨레의 성역이 되었다.
먼저 현충탑 참배를 했다. 현충탑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의ㆍ희생정신을 추앙하는 현충원을 상징하는 탑이다. 십자형으로 된 탑은 동서남북 4방향을 수호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현충탑 앞 제단에서 현충원 안내자의 진행에 따라 분향을 했다.
현충탑 내부에 있는 위패봉안관에 들어서니 중앙에 영현승천상이 있다. 천정에는 천국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이 영현승천상 아래 지하에는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5,778위의 무명용사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봉안관 내부 6개의 모서리에는 호국영령을 수호하는 의미의 천, 지, 해, 산, 목, 화를 나타내는 수호신상을 각각 세웠다. 위패봉안관 벽에는 6.25전쟁이나 월남전쟁 등에서 전사하였으나 유골을 찾지 못한 103,244위의 위패가 새겨져 있다. 200평이 넘는 봉안관 사방에 천정까지 빼곡한 전사자들의 이름을 보니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위패 아래에는 가족들이 두고 간 꽃들 사이로 전사자들의 빛바랜 사진들이 많이 놓여있다. 대부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많고, 명예졸업장, 가족들의 편지 등이 꽂혀있다. 앳된 얼굴에 커다란 철모를 쓴 모습. 이곳 전사자의 평균 연령이 17~19세의 이등병, 일등병으로 전쟁터에 나간 지 한 달 이내에 사망한 전사자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을 듣는 학생들도 처음 듣는 가슴아픈 이야기에 놀라워하며 장난기가 사라지고 몸가짐을 경건하게 하였다.
현충문을 나와 베트남전 전사자 묘역과 경찰관 묘역을 지나 애국지사 묘역을 방문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의병 활동과 독립운동을 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214분을 모신 곳이다. 의병장 신돌석, 독립협회를 창설한 서재필 박사, 서울역에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이회영, 3.1운동을 세계에 알리며 독립운동에 기여한 캐나다인 스코필드 박사의 묘소를 보고 참배했다.
임시정부요인 묘역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직위를 역임한 순국선열 18위를 모셨다. 「한국통사」를 저술해 민족혼을 일깨웠던 박은식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비롯 '국경일 이야기'강좌에서도 나오는 신규식, 이상룡, 김동삼,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등의 묘소에 참배했다.
묘역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17만 개의 묘비를 바라보니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안타깝고 가슴이 아파 눈시울이 붉어진다. 17만 전사자의 가족들은 또 몇명이겠는가? 6.25전쟁으로 남ㆍ북 150만 명이 사망했고 360만 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 중 전쟁으로 인한 직ㆍ간접적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전쟁의 트라우마와 가족해체 등으로 굴곡진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 겨레. 유품 전시관과 사진전시관에서 그 아픈 사연과 현장의 증언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유품전시관에는 전쟁 당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녹슨 생필품들이 많았다.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나와 같은 사람이었음을 느끼게 해주어 더욱 가슴아팠다. 총탄에 의해 구멍이 난 철모, 닳아서 헤어진 신발, 세면도구와 필기구, 누군가의 손목에서 멈춰버린 시계들...
공을 세운 군인들을 소개해 놓은 글과 사진은 더욱 놀랍고 가슴 아렸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를 벌여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이들 대부분의 나이가 20대 초반이 아닌가! 부모님과 처자식에게 보낸 편지 앞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몸 건강히 돌아가겠다고 편지를 쓴 며칠 후 베트남에서 전사한 군인의 편지, 생사확인이 안 되어 소식을 기다리다 가슴이 새까맣게 타 들어간 아내의 편지들이 있었다.
답사에 참여한 학생들 모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국경일 이야기' 강사들도 뜻깊고 감동적인 답사였다는 소감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우리가 이런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답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