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답사는 경기도 연천에 있는 전곡리선사유적지를 다녀왔다.

이곳은 1978년에 동두천 주한미군인 그렉 보웬(Bowen, G.)이 한탄강변을 거닐다가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곳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보웬 병사의 눈에 예사롭지 않은 돌이 들어왔다. 우연히 발견한 네 점의 석기.

▲ 아슐리안 주먹도끼
이는  한반도 구석기 시대를 30만 년 이상 끌어올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기구석기 유물이 되었다.  발견된 유물이 30만 년 전 '아슐리안 주먹도끼'로 감정되면서 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다음해 전곡리 일대가 사적 제268호로 지정되고, 20여 차례의 발굴조사를 벌여 아슐리안 주먹도끼 50여점을 비롯해 8천여 점의 구석기 유물이 무더기로 찾아냈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어 세계고고학계의 주목을 받는 유적이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세계 구석기문화와 관련해 외국학계에선 구석기 이원론이 팽배했다. 구석기 이원론이란 발달된 형태의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사용한 유럽지역과, 덜 발달한 형태의 '찍개'를 사용한 동아시아 지역으로 나누는 학설이다. 하지만 한탄강유역의 전곡선사유적지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구석기 이원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동아시아 구석기문화의 발달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세계 고고학 역사를 다시 쓰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와 유럽 중심의 뗀석기와 아시아의 찍개석기로 선사문화의 흐름을 나누었던 '모비우스 학설'을 완전히 뒤집는 세계 고고학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래서 전 세계의 모든 고고학 교과서에는 '전곡리'라는 지명이 빠지지 않고 실려 있는 것이다.

▲ 발굴된 주먹도끼.

이렇게 중요한 유물인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모형이 전곡선사유적지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한탄강변의 전곡선사유적지에는 선사박물관과 토층전시관, 주먹도끼와 화살촉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마을 등의 시설이 선사시대 조형물과 함께 넓게 자리 잡고 있다.

토층전시관에는 발굴당시의 시작기준점을 비롯해서 발굴현장을 재현해 놓아 고고학이란 학문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되어있다. 전시관 옆 뜰에는 해마다 큰 규모로 열리는 연천전곡리 구석기 축제의 현장이 남아있고 다른 나라의 역사축제를 소개해 놓은 곳도 볼 수 있다. 세계적인 구석기 유물이 발굴된 만큼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들을 엿볼 수 있었다.

세계 5대 구석기박물관 중의 하나인 전곡선사박물관은 국내 최대 규모의 선사박물관으로 최첨단 현대식시설을 갖춘 박물관이다. 박물관 출입로에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발자국 그림이 있어 웃음을 머금으며 들어서게 된다. 여느 박물관과는 외형부터가 달라 호기심을 자아낸다. 박물관 건축은 세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프랑스의 아눅 르장드르와 니콜라 데마지에흐가 설계했다. 스테인레스 외장으로 선사시대 유적에 온 외계 우주선 같은 느낌을 주는 친환경적인 철학을 가진 초현대식 건축물이다.

▲ 박물관 초입에 있는 발자국.

선사박물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세련된 전시관 디자인에 감탄하고, 쉬운 해설과 첨단기기를 이용한 다양한 해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전시에는 전곡리출토의 아슐리안 형 주먹도끼 이외에 프랑스의 화석인류 복원전문가인 엘리자베스 데이네스가 복원한 세계의 대표적인 화석인류가 다양한 동물박제들과 함께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이며,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시대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자연사교육과 선사생활문화교육을 위한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 사냥하는 모습.

선사유적공원에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선사시대의 생활모습을 표현해 놓은 조각들이 많아 박물관에서 알게 된 지식이 조금 더 생생하게 다가오게 한다. 푸른 잔디 위에서는 야외조각전이 열려 예술적인 조각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넓은 잔디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어린이들과 가족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배우고 즐기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세계 고고학역사에 빛나는 전곡리, 우리의 자랑스런 유산이다.

▲ 바위 운반 모형.

인류의 기록이 남아있는 역사시대와 달리 그 이전의 선사시대에도 삶은 지속되고 있었다.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난 선사시대의 흔적들. 한반도에는 그 먼 옛날 주변지역보다 발달된 석기인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이 땅의 오랜 역사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왔으며, 지금 인류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뜻깊은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