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는 427일 선사시대 유적을 볼 수 있는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지를 시작으로 옹기박물관, 활박물관, 진달래동산으로 이어지는 부천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지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지이다. 1995년 여름 홍수로 노출된 반달돌칼, 돌창 등을 주민들이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도시화가 이미 진행된 부천에 대규모 선사시대 취락유적지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7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선사시대의 집단취락지로, 한강유역 초기국가단계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적지이다. 21기에 달하는 주거지와 제사(祭祀)시설인 적석환구유구를 비롯해 토기, 반월형돌칼, 마제석검, 방추차, 옥제 장신구 등 유물 수백 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적석환구유구는 선사시대 제의(祭儀)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그밖에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13, 조선시대 건물지 등도 발견되었다.

▲ 사)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는 4월 27일 선사시대 유적을 볼 수 있는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지를 시작으로 옹기박물관, 활박물관, 진달래동산으로 이어지는 부천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200612월 부천시는 선사시대 역사를 조명하고 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강동 선사유적지 주변에 고강선사유적공원(면적 79,965)을 조성했다. 공원은 넓은 실외공연장, 철쭉군락지와 함께 곳곳에 높이 솟은 솟대와 조각들, 선사시대 유물들을 재구성해 놓아 역사교육과 함께 나들이할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터로 꾸며져 있다.

터지기 직전의 철쭉 꽃망울 사이를 지나 숲속에 있는 유적지에 서니 그 옛날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 속에서 생존했던 선조의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답사에 참여한 초등학생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역사용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식 용어를 다시 한글로 바꾸다보니 어느 나라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단어들이었다. 예를 들면, 석부(石斧)는 돌도끼라는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안내판에 어떠한 설명도 없이 '석부'라고만 써놓아 초등학생도, 역사공부 한 회원도 처음엔 알 수가 없었다.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에서 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일본식 역사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고치는 것!

적석환구유구는 고강동 선사유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별도로 자

▲ 선사유적공원.
리 잡은 입지상 특성, 제기형 토기가 출토된 점, 바닥면에 불탄흙[燒土]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제사 유적으로 파악된다. 가운데에 돌을 쌓은 적석시설(積石施設)이 있고 이것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며 도랑[]이 돌아간다. 2000년 조사 당시에는 그 예를 찾기 어려웠던 제사 유구로서 선사시대의 의례는 물론 종교와 사회조직 등 비물질적인 분야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고강동에서는 선사 시대 천제단인 적석환구유구(積石環溝遺構)에서 실시했던 천신제를 현대적인 의미로 재현한 '고리울 선사유적 고유제천의례'를 거행한다. 천신제의 상징인 적석환구유구가 소도의 원형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강동선사유적보존위원회에서 1998년도부터 제사를 지내왔다.

고리울 선사유적 고유제천의례는 천태사상(天太思想)의 천신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선사시대를 살아낸 지역민과 더불어 현대를 살고 있는 주민들의 영세평안(永世平安)을 기원하는 홍익인간이념의 제례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을 설파한 천신(天神) 후손인 단군의 자손들로써 예를 갖추어 받드는 의식으로 여긴다.

의례의 축문은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곳 선인들의 넋을 되살려 우리의 뿌리를 되찾고, 조상님들의 후덕한 음덕에 오늘날 새롭고 찬란한 선사 시대의 숨결을 느낍니다. 그 표상으로 천재지단(天齋之壇)을 모신 자리에서 고강동 선사유적 고유제천의례(祭天儀禮)를 올리고 이곳을 오가는 모든 이에게 도심 한가운데서 살아 숨쉬는 선조님들의 넋을 느끼게 하면서 면면히 이어오는 후손들에게 좋은 학습의 장이 되고 지역주민의 번영과 영세평안(永世平安)을 위한 기원(祈願)을 드리고자 여기 고강동 선사유적 고유제(告由祭)를 삼가 올립니다. 흠향하오소서!"

숲으로 쌓여있는 선사유적지를 걷는데 봄바람에 벚꽃 잎이 눈처럼 흩날리고 새소리가 들려 말 그대로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이 바람과 자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회원들 모두가 나무아래 자리를 잡고 명상에 잠겼다. 처음 명상을 해 보는 회원들도 사무국장의 안내에 따라 호흡을 하며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을 가졌다.

▲ 부천 유적답사에 나선 우리역사바로알리기시민연대 회원들이 명상을 하고 있다.

우리의 뿌리를 되찾고, 찬란한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의 번영과 우리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고 발걸음을 옹기박물관으로 돌렸다.

부천옹기박물관은 1866년 천주교 신자들이 병인박해를 피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던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여월동 점말에 있다. 마을 주민들은 가마 두 개를 설치하여 질그릇을 구워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때 설치된 가마터가 아파트 단지를 지으면서 문화재 지표조사 때 발굴되었다. 옹기를 만들 때 높은 온도에서 구우면서 그릇 표면에 작은 숨구멍이 생기는데, 그 구멍으로 공기가 드나든다. 이러한 통기성 덕분에 곡식이나 장류가 신선하게 보존된다. 옹기는 이러한 통기성 외에도 저장성, 발효성, 경제성, 활용성 등 장점이 많다. 다양한 옹기의 모습과 제작과정을 볼 수 있고 체험프로그램도 많아 관람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오는 옹기박물관에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삶을 엿볼 수 있었다.

▲ 옹기박물관

 부천 활 박물관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에 있다.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부천 궁도 문화를 조명하는 활 박물관으로 200412월에 개관했다. 전시실, 매직 비전, 체험 공간, () 백인 김장환 선생 기증 전시실, 영상 및 세미실 등으로 구성된 박물관은 34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 소장품은 세계 최초의 로켓형 화기로 꼽히는 <신기전기화차(神機箭器火車)>로 대신기전, 산화신기전, 중신기전 등이다.

 ▲ 옹기

몇 년 전 영화 최종병기 활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활박물관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신기전을 직접 보고 옆에 있는 국궁장을 볼 수 있어 유익한 장소였다. 외국에 비해 탄성이 뛰어난 활과 우수한 철제기술을 보여주는 화살촉,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비밀병기로 이용되었던 '편전'까지 볼 수 있어 우수한 군사력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세계 최초 2단 로켓 대신기전의 모습을 보고 우수한 과학기술을 보유했던 조상에 자랑스러움을 느겼다. 계속 이어가지 못했던 사대주의의 잔재에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며 부국강병의 꿈을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었다.

▲ 옹기박물관에 전시된 옹기.

박물관 뒤에 있는 국궁장에서는 우리 조상들의 전통무예인 국궁의 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국궁은 중국의 사기 史記진서 晋書등에도 나오듯이 우리 나라의 숙신(肅愼읍루(挹婁말갈(靺鞨(부여·고구려 때부터 우수한 활과 화살이 있었고, 그 우수함이 중국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또 신라에서는 화살이 1,000보가 나가는 노()를 만들어 쓰는 것을 보고 당나라 왕이 이를 가르쳐주기를 간청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 민족은 궁시를 제작하고 다루는데 우수한 기량을 가져 주위의 여러 민족이 우러러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시대의 발달과 더불어 활쏘기는 대중화된 무예射藝로 발전하였으며 양반의 자제가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과목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를 통해 심신단련 및 장부(丈夫)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왔다. 현재에는 올림픽 등 각종 양궁대회에서 우승하며 명실공히 세계양궁 강국으로서 조상의 얼을 이어가고 있음이 자랑스럽다.

▲ 부천활박물관에 전시한 신기전.

국궁장에서 바라보니 마침 뒷산에 진달래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원미산은 부천의 주산으로서 중앙도서관 뒤편 3만여3만 여 그루의 진달래꽃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는데 매년 4월에 원미산 진달래축제가 열린다. 진달래축제에서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는 말을 체험하며 나라사랑의 정신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소중한 답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