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조재도
이미지 조재도

 

한 세대가 간다

                                                                                   
                                                                                      시인 조재도
 

그분은
죽으면 생전 지게질에
어깨부터 썩는다는 농부였다
 

나도 그분을 잘 안다
그분은 내 친구의 아버지였다
 

아랫목 방구들 싸아하니 식으면
마른 장작 가져다 군불을 때고
고욤나무에 접붙여 가을을 열게 하던
그의 사투리 같은 삶이 마침표를 찍었다
 

집도 아닌
아들네도 아닌
낯선 도시 희디흰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최후의 눈꺼풀이 고단한 삶을 덮었다


호박색 조등(弔燈)이 걸리고
나무즙을 빨아대던 매미 같은 자손들의
울음도 이만저만 수그러들고
치러야 할 일로 분주하기만 한 시간



나는 문득 처연해진다
영안실 앞 문상객을 위한 천막 안에서
지게 작대기로 살아온 그분들의 삶


누천년 이어온 흙빛 삶도 이제 그분이 마지막이고
사라져가는 그 뒷모습을
그나마 추억하는 것도
우리가 마지막일 거란 생각에.

 

 

출처 : 조재도 시집 《어머니 사시던 고향은》(작은숲, 2024)에서.

 

■조재도 시인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어려서 청양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가 홍익중학교와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1981년 졸업과 함께 대천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이후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에 이어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두 차례 해직되었다. 1994년 복직 후 2012년 조기 퇴직하기까지 충남의 여러 학교에 근무하면서, 15권의 시집과 다수의 책을 펴냈다. 시인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농촌의 생활 문화와 정서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해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고향 시편’ 연재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기계문명의 시대를 산다고 해도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의 삶의 자취가 애틋하게 남아 있다. 조재도 시인은 이 연재가 앞서 살다 간 사람과 뒤따라 오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