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말
시인 조재도
툇마루에 떨어져 빙-빙 돌아가던 감청 빛 풍뎅이가
호박꽃 속 호박벌의 닝-닝 날개 치던 소리가
좁은 골목길 해사하니 피어나던 골담초꽃 향기가
저문 들녘 헤적이던 푸르스름한 연기가
내게 건넨 말을
그 고요한 말을
새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산마루 넘어 구름은 어디로 갈까
왜 고구마순은 자줏빛이고
가시 울 탱자는 노란색일까
의문이 건넨 말을
고요한 말을
글을 배우며 잃어버렸다
책을 읽으며 잃어버렸다
나이가 들어 도시를 떠돌며 어른이 되어 갔다
평생을 그렇게 살게 될 줄 알았다
아내에게 동료에게 내가 익힌 말을 지껄이며
학교에서 사무실에서
그렇게 살다 죽을 줄만 알았다
세상을 오래 멀리 걸으며
이윽고 잃었던 말들을 다시 만난다
산비알 하얗게 핀 눈물 젖은 들국화가
대밭에 모여 수런대는 바람이
내게 건넨 말을
그 고요한 말을.
출처 : 조재도 시집 《어머니 사시던 고향은》(작은숲,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