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밥
시인 조재도
밥솥 밑바닥에 보리쌀 촘촘히 깔고
어머니는 쌀 한 줌 한가운데 놓았다
달걀노른자 같았다, 부글부글 밥이 끓어
고신네 구수하게 퍼지면
어머닌 눈부신 흰 쌀밥만 옴쏙 따로 퍼내었다
할아버지 밥이었다, 나머진 둥글넙적한 주걱으로
홰홰 설설 저어
한 그릇씩 뚝딱 퍼담았다, 우리들 밥이었다
거뭇거뭇한 꽁보리밥
씹을래야 이빨 사이에서
미끈덩미끈덩 미끄러지던 밥
찬물에 말면 낱낱이 풀어지던 헤식은 밥
풋고추 한 줌에 고추장 듬뿍 꿀맛 같던 밥
산초나무 기름에 애오이 썰어놓고 썩썩 비비면
입안 가득 침부터 고여오던 밥
그 보리밥을
없어서 못 먹던
꺼끌꺼끌한 꽁보리밥을
오늘 다시 먹는다
웰빙이다 뭐다 하는 식당에서
열두 가지 반찬에 이름뿐인 보리밥을
1인분은 팔지도 않는 보리밥을
옛 추억에 배부르게 먹는다
저녁나절 노랗게 지던 해 그리워하며 먹는다.
출처 : 조재도 시집 《어머니 사시던 고향은》(작은숲, 2024)에서.
■조재도 시인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어려서 청양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가 홍익중학교와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1981년 졸업과 함께 대천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이후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에 이어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두 차례 해직되었다. 1994년 복직 후 2012년 조기 퇴직하기까지 충남의 여러 학교에 근무하면서, 15권의 시집과 다수의 책을 펴냈다.
시인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농촌의 생활 문화와 정서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해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고향 시편’ 연재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기계문명의 시대를 산다고 해도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의 삶의 자취가 애틋하게 남아 있다.
조재도 시인은 이 연재가 앞서 살다 간 사람과 뒤따라 오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