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희 시인 시집 "아버지의 색소폰". 사진 정유철 기자
백정희 시인 시집 "아버지의 색소폰". 사진 정유철 기자

2023년 《월간시인》 특별시인상으로 등단한 백정희 시인이 첫 시집 《아버지의 색소폰》을 인문학사의 ‘인문학 시인선 39’로 펴냈다.

백정희 시인은 1 행복, 2 사랑, 3 길위에서, 4 해마다 4월이면으로 나누어 모두 65편의 시를 싣었다.

표제작 ‘아버지의 색소폰’은 백 시인의 신인상 당선작 중 한 편이다.  칠십 세에 색소폰을 선물받은 아버지가 십수 년간 손에서 놓지 않고 연습하여 마침내 제대로 연주하게 되어 봉사활동까지 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소리를 못 내서 삑삑
소리 내려고 삑삑
시끄럽다는 엄마의 잔소리에
그래도 할 거라고 삑삑

아버지의 색소폰
옹알이 시작하더니
어느새 음어音語로
말을 걸어온다

 

엄마 가신 뒤
한 동안 멈추었던
아버지의 색소폰
바람결 따라 날아온 꽃향기가
엄마 소식 전해 주었는지
금빛 미소 머금고 다시 노래한다”(‘아버지의 색소폰’ 일부)

이렇게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행복을 전하기 위해 색소폰을 챙기시던 아버지도 이제 엄마 곁으로 가셨다. 그 아버지를 시인은 기억한다.

“주일이면 단정히 양복을 입으시고
예배의 자리를 기쁨으로 준비하시던 아버지
누군가의 작은 안부에도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던 그 믿음의 걸음을
저희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유족대표 인사’ 일부)

시인의 사랑은 아버지를 비롯하여 어머니, 딸 등 가족에게서 큰어머니 등 친척으로 초겨울 아침 거리에서 본 노인 등 사람들에게로, 강아지, 소나무 등 동물, 식물로 확산된다. 아마도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의 발로일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국밥집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본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밤을 지새운 이들이 피곤한 논을 비빈다
무심한 듯 바쁜 수저질은
무엇을 위함인지
영혼이 빠져나간 듯 푸석한 육신에
꾸역꾸역 국밥을 밀어 넣는 모습이 안타까워
이름 모를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새벽, 국밥 한 그릇’ 일부)

또한 시인은 너무 더운 여름을 보내며 이상기후가 자연환경의 파괴 때문이라고 하는데 자연만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도, 세상의 온기도 차즘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올해는 더워도 너무 덥다
바람은 멈춘 듯 뜨겁고
해는 한결같이 내려꽂힌다
끝을 알 수 없는 계절의 장난
이젠 삼복더위가 아니라
오복, 칠복더위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상기후가
자연환경의 파괴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찌 자연만 파괴되고 있으랴
우리의 마음도, 세상의 온기도 차츰
파괴되고 있음을 뉴스를 통해 확인한다

더워도 너무 더워 힘겨운 여름을 보내며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가을아 언제 올 거니?” 일부)

허형만 시인(목포대 명예교수)은 백정희 시집 평설 “생명 에너지, 영성적 깨달음”에서 백정희 시인은 “등단 후 2년 만에 출간하는 첫 시집의 시세계는 그만큼 시인으로서의 절심함과 삶에서 체득된 창의적인 생명력의 회복, 그리고 지금은 소천한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라고 했다.

아울러 “그 가족간의 소중함과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의 마음을 백정희 시인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딸을 통해 전하고 있는데 특히 지금은 소천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살아생전의 사랑, 두 분 다 소천하신 후의 그리움이 절절하다”라고 했다.

“백정희 시인의 시에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에 대한 다사로운 생명성이 녹아있다.”(허형만 시인 ‘평설’)

백정희 시인은 "《아버지의 색소폰》은 제목 그대로, 아버지를 향한 제 마음을 담은 시집이다.  제 아버지는 70세 생신 선물로 사드린 색소폰을 열심히 배우고 익히셔서 참 즐겁게 연주하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팠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한 권의 시집으로 묶게 되었다"라며 "《아버지의 색소폰》은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 속에 아버지의 존재가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기록했다. 이 시집은 한 사람의 아버지를 향한 기록이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거울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