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 헌
국학원 설립자 · 학교법인 한문화학원 이사장
21세기 지구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기후변화를 비롯하여 우리가 우려하는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엄청난 문제의 크기에 비해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조금만 더 이대로 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있다. 그런 만큼 우리는 근본적이면서도 신속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신속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공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에 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응해왔다. 특히 이번에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은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환경·산업분야 공약으로 ‘기후위기 대응 및 산업구조의 탈탄소 전환’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선진국으로서의 책임에 걸맞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가속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폐쇄하고 경제성장의 대동맥인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산업전환으로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고 건축물·열부분 탈탄소화를 추진한다. 또한, 탈플라스틱 국가 로드맵 수립 및 바이오플라스틱 산업육성 지원, 한반도 생물 다양성 복원, 4대강 재자연화와 수질개선 등을 공약했다. 그러면서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이 앞으로 5년간 이재명 정부가 추진할 환경·산업 정책의 근간이 될 것이다.
이 공약들을 살펴보면 다 중요할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를 해소하고 경제발전을 하는 데 필요한 정책들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는 어느 한 나라만 노력해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류 전체가 손을 잡고 협력해야 한다고 수많은 전문가와 국제기구가 강조해 왔다.
그런데도 협력이 잘 안되는 것은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류의 의식과 상상이 국가라는 틀에 갇혀 그 벽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활동하고 교류하는 범위가 이미 전 지구로 확대되었다. 우리 삶의 무대는 이미 지구 전체가 되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환경 자체를 바꾸고 있는데,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의식과 상상은 각자 국가라는 작은 틀 속에 있다.
기후위기를 해소하고 지구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과 상상을 지구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지금 지구에 필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나라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생각하는 책임있는 지구시민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받아들이고 지구상에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 번영하게 하겠다는 의식을 가진 지구시민 말이다. 이런 지구시민을 우리가 먼저 선택하도록 정부가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들도 하지 않은 일인데 우리나라가 앞장설 필요가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선진국들이 하지 않으니까, 우리나라가 나서서 하자는 것이다. 광복 후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 질서 속에서 그들을 모방하고 추종하며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모방과 추종의 단계를 벗어나 선도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국제표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글로벌 표준 강국이다.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국가표준기본법에 따라 5년 단위의 국가표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가 및 국제 표준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2020년대에 매년 80여 종의 국제표준을 제안하는 글로벌 표준강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를 인류의 의식 변화로 확대하여 우리나라가 앞장서서 ‘우리는 지구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일깨워 주자는 것이다. 인종, 언어, 종교, 국적을 따지기에 앞서 인류는 지구에 태어나 지구시민이다. 다만 그런 인식이 없었을 뿐이다.
이제 우리가 지구시민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차이는 더 이상 갈등 요소가 아니다. 다양한 문화, 인종, 종교, 신념이 공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서로를 살리는 공생을 선택하고,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지구의 미래에 대해 책임을 함께 나눈다.
이런 미래를 상상하며 나는 2001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휴머니티 컨퍼런스에서 6월 15일을 ‘지구시민의 날’로 제안하였다. 2002년부터 민간 차원의 기념이 시작되어 이에 공감한 17개 나라에서 지구시민운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2023년에는 미국 뉴멕시코주 상원이 2월 8일을 공식적으로 Earth Citizens’ Day로 지정함으로써, 이날의 의미가 국제적으로 더욱 부각되었다.
이제 지구시민의 날을 세계 최초로 우리 정부가 정식으로 채택하고 기념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좋은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인류의 의식이 크게 변화한다면, 미래세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