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가 불리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구의 지배종이 될 수 있게 된 이유와 관련해 '할머니의 힘'이란 가설이 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호모 사피엔스가 불리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구의 지배종이 될 수 있게 된 이유와 관련해 '할머니의 힘'이란 가설이 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할머니의 힘’이란 가설이 있다. 호모사피엔스, 지혜의 인간이 원시 생태계 다른 동물에 비해, 심지어 같은 인류 중에서도 공격‧방어 능력 등 신체 조건이 불리했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를 밝힌 것이다.

생식능력과 생산능력은 사라졌지만, 조심스럽고 무모하지 않아 오래 살아남은 할머니는 수렵과 채집에 나간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양육하면서 전 세대로부터 전한 경험과 지혜를 전하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꿈을 꾸게 한 존재였다.

한편, 부모의 자식 사랑은 기대와 조바심, 서툴기까지 한 애증의 관계라면 한 세대를 살아본 조부모 세대의 사랑은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온전한 사랑에 가깝다. 인류학에서 살펴보면 인디언 중에는 한세대를 건너뛴 할아버지와 손자 세대를 멘토와 같은 관계로 묶는 제도도 있었다.

게다가 수많은 외침과 자연재해, 날씨마저 혹한과 혹서의 차가 극명해 생존조건이 까다롭던 한반도에서 반만년을 살아남은 한민족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기근에도 “내 먹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라며 떠도는 고아를 거두거나 집 앞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업둥이’라며 “잘 길러야 집안에 복이 들어온다”고 내치지 않은 어르신의 마음 덕분이 아니었겠나 생각한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재능으로만 현생인류가 생존해 온 게 아니란 뜻이다.

현생인류는 단지 뛰어난 지적 능력과 재능만으로 오늘날까지 생존해 온 것은 아니다. 사진 Pixabay 이미지.
현생인류는 단지 뛰어난 지적 능력과 재능만으로 오늘날까지 생존해 온 것은 아니다. 사진 Pixabay 이미지.

본격적인 AI시대는 다를까? 지금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SNS에 넘치는 정보는 전문적이고 광범위하게 축적되어 AI가 학습하고 있다. 이제 할머니의 힘, 즉 노인을 거치지 않고도 전달되는 정보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빠른 정보력과 재력, 권력 등 물질문명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시 되는 시대에 생산능력자나 소비자가 아닌 노년층에 대해 잉여세대, 사회적 부담, 심지어 차세대의 미래를 갉아먹는 존재로 인식하는 세대 갈라치기와 노인 혐오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문제는 노인세대조차 자신의 가치를 폄하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으며, 2060년 65세 이상 노년층이 인구의 절반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것을 대외적 평가처럼 망국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까?

현재와 같이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세계 최상위를 차지하는 대한민국이라면 희망은 없다. 대한민국 노년의 모습이 불행하고 불안정하면 곧 그 세대가 될 중년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청년도 불안하다. 그 불안을 벗어나려 발버둥 쳐야만 한다. 반면, 나에게 닥칠 미래가 웬만큼 노력한다면 빈곤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살 수 있는 노년 설계가 탄탄하다면 오늘 겪는 힘듦을 좀 더 참을 수 있겠다.

-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대한민국의 전국민 생애주기별 설계 변화해야
- 60세 정년 시스템 1970~80년대 수립, 초고령사회에 적합한 노년설계‧복지설계 요구
 


노인 정책은 나라의 사활을 걸어야 할 한 분야라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노인 관련한 것으로는 △지속가능한 노후 소득 보장 △생애주기별 외로움(고독) 대응 △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통합적 지원체계 △청년‧국민‧어르신 패스 3종 도입으로 국민 교통비 절감 등을 찾을 수 있겠다.

대부분 소득과 생계보장과 관련 있고 생애주기별 외로움(고독) 대응이 정신건강과 관련 있다고 하겠다. 물론 먹고 살 수 있는 생계 안정은 물론 삶에서 기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인 일자리, 요양보호사 파견, 의료 지원, 등 복지 정책이 양적 확대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지원이 꼭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공급되는 질적 개선과 제도적 정비는 시급한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에 전례가 없는 장수 시대와 긴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정년 60세에 맞춰진 1970~80년대 설계에서 반세기 가까이 흘러온 현재 초고령 사회에 맞는 노년 설계가 필요하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 즉, 오래 살지만 병상에서 지내는 기간이 10여 년이나 되는 현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료혜택에만 의존하지 않고 누구든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생활스포츠와 건강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노인의 정신건강, 가치 실현을 위한 전문적 접근 요구

특히, 중요한 것은 노인의 정신건강 측면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 능력도 떨어지고 질병에 쉽게 노출되면서 주변의 가족이나 지인이 하나하나 떠나고, 사회적 교류가 줄며 자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감소하니 우울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다.

뇌과학 측면에서는 삶에 대한 강력한 욕구와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도파민 호르몬 생성이 줄어든다. 도파민 호르몬 부족으로 파킨슨병에 노출되기도 쉬울 뿐 아니라 무엇보다 건강하고자 하는 의욕, 뭔가 변화에 적응하며 창조하고 살아갈 의욕마저 꺾이기 쉽다는 것이다. 이는 뇌 건강에도 크게 악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건강한 것만으로는 노년에 희망이 되지 못한다. 힘겹고 지루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청년, 중년 시절보다 신체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 하더라도 건강하게 의욕을 갖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노년에도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오늘을 살아간다면 매일 아침 눈 뜨며 맞는 생이 축복이고 감사가 될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노년 설계와 국가가 실시하는 생애주기별 복지설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국민 개개인의 노년 설계와 국가가 실시하는 생애주기별 복지설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가장 근본적인 노인복지 정책은 노인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와 삶의 목적을 찾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자 체험교육이다. 아울러 노인 정신건강 관리 시장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단순히 요양보호사 역할이 아니라 치매예방 전문가, 노인 정신건강 관리사 같은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그리고 청년, 중년 세대와 어우러져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찾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과 인프라의 구축에 있다. 이것이 21세기를 4반세기 지나온 대한민국이 새롭게 도입할 노년 설계이자 전국민 생애주기별 설계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년 설계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문적인 정책 추진과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선거철 일시적인 시혜적 공약이나 땜질처럼 그때그때 추가되는 복지 정책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노년 설계와 국가가 실시하는 생애주기별 복지설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결국 모든 세대를 위한 나라이다. 노인의 가치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는 단순히 인도적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의 미래를 보장하는 현명한 투자가 될 것이다.

인생의 전반기 60년이 생존과 성공을 위한 치열한 시기였다면 후반기 60년은 완성을 향한 여정이자 청춘에 못지않은 놀랍고도 희망차고 충만한 황금기가 된다면 청년세대도 두려움 없이 오늘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