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Camouflage 123, 2025, Acrylic on canvas, 193.9 × 130.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김도훈, Camouflage 123, 2025, Acrylic on canvas, 193.9 × 130.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금산갤러리가 5월 9일 개막한 그룹전 《Eleven Degrees》는 11명의 청년작가가 각기 다른 시선과 감각으로 포착한 세상의 모습을 선보인다. 참여작가는 김도훈, 박현욱, 윤필현, 이계진, 이혜진, 전영진, 지혜영, 최명원, 해나킴, 허은오, 허현숙.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차갑게 혹은 따뜻하게, 날카롭게 혹은 부드럽게 각자의 온도에 맞춰 바라보는 사회는 다양한 온도로 빛나며 그려진다. 이는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말한 ‘지각의 현상학’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단순한 시각적 수용이 아니라 몸과 감각을 통해 구성되는 주관적 경험임을 강조했다.

《Eleven Degrees》전에 참여한 작가들 역시 각자의 신체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내면의 온도를 통해 현실을 해석하고, 그 주관적 지각을 시각 언어로 풀어낸다.

윤필현, Dinner Show, 2024, Mixed media on canvas, 130.3 × 162.6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윤필현, Dinner Show, 2024, Mixed media on canvas, 130.3 × 162.6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윤필현 작가는 회화의 서사적 잠재력을 탐구하며, 이미지 너머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의 작품은 일상의 단면과 사회적 현상에서 출발해, 오브제화된 화면 위에 시각적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최근 작업은 모듈 개념을 도입하여 시간성과 공간성이 교차하는 구조로 확장되었다. 낮, 노을, 밤이라는 시간대별 구성은 건축적 요소를 통해 하나의 도시적 풍경으로 재구성되며, 이는 감상자의 개입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합 가능한 열린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해나킴, Have You Ever Seen This Black Cat in E9, 2022, Acrylic on canvas, 102 × 102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해나킴, Have You Ever Seen This Black Cat in E9, 2022, Acrylic on canvas, 102 × 102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다양한 비정형 재료와 실험적 표면 처리 기법을 통해 시각적 리듬과 질감을 형성하며, 지역 신문을 활용한 매체 혼합은 작품에 시간적 흔적성과 장소성을 부여한다. 결과적으로 윤필현의 회화는 주거 공간을 매개로 한 현대성의 탐구이자, 기억과 서사의 시각적 아카이브로 작동한다.

전영진,  Painting on painting 2415, 2024, Acrylic, light molding paste on canvas, 112.1 × 145.5 × 3.0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전영진, Painting on painting 2415, 2024, Acrylic, light molding paste on canvas, 112.1 × 145.5 × 3.0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전영진 작가의 회화는 풍경이라는 고전적 장르를 기반으로, 기하학적 도형과 색면의 배열을 통해 동시대의 시각 구조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자연을 시대 초월적인 소재로 삼되, 그 재현 방식에 있어 디지털 이미지의 구조인 ‘픽셀’을 연상시키는 시각 언어를 도입하며, 전통 회화의 물성과 디지털 환경의 감각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다.

최명원, Shamayim  한마디, 2019, 장지 위 수묵, 130.3 × 130.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최명원, Shamayim 한마디, 2019, 장지 위 수묵, 130.3 × 130.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그의 화면은 멀리서는 구상적 풍경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색면의 조합이 추상적 구조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시지각의 전이는 관람 방식에 따라 감각이 전환되는 경험을 유도하며, 감상의 물리성과 회화의 실존적 질감을 환기한다.

전영진의 작업은 회화를 단순한 재현의 수단이 아닌, 동시대 세계를 구성하는 인식의 틀과 기술 환경을 비판적으로 반영하는 시각적 언어로 제안한다. 회화의 평면 위에서 세계, 감각, 시간, 지각의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그의 작업은 결국 회화라는 고전적 매체가 어떻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이계진, 소금산수 158, 2024, 장지 위 먹과 소금, 91 × 7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이계진, 소금산수 158, 2024, 장지 위 먹과 소금, 91 × 7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해나 킴 작가의 작업은 사적인 기억과 도시 개발이라는 집단적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유년 시절의 거주지가 도시 개발로 철거되며 더 이상 실재하지 않게 된 후 그에게 ‘집’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감각으로 복원되는 심상적 장소로 전환되었다. 주소, 우편번호, 집 번호와 같은 숫자들이 떠오르는 조각난 단서들은, 존재했으나 이제는 부재한 장소를 호출하는 매개체가 된다.

박현욱, 나의 하루들 - PXC550, 2020, 3장의 수묵화를 겹침, 90 × 120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박현욱, 나의 하루들 - PXC550, 2020, 3장의 수묵화를 겹침, 90 × 120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이러한 기억의 파편은 작가의 회화 작업 안에서 시각적 층위로 재배열된다. 화면 위에 구성된 공간은 단순한 건축 구조의 재현이 아니라 빛의 온도, 방 안의 정서적 톤, 오래된 가구의 감촉과 같은 내면의 감각 경험들이 시각적 언어로 번역된 결과물이다. 작가는 회화를 ‘기억의 외피(mnemonic skin)’로 간주하며, 이를 통해 실재의 부재를 다층적으로 복원하고 재현한다. 작가에게 ‘집’은 더는 거주의 기능적 단위가 아니다. 자아의 심리적 저장고, 혹은 몸과 정체성을 보관하는 기억의 컨테이너로 제시된다.

김하나은, Have You Ever Seen This Black Cat in E9, 2022, Acrylic on canvas, 102×102cm . 이미지 금산갤러리
김하나은, Have You Ever Seen This Black Cat in E9, 2022, Acrylic on canvas, 102×102cm . 이미지 금산갤러리

3명의 작가 작품들을 시작으로 《Eleven Degrees》는 11명 작가가 11개 시선으로 그려낸 11개의 세계를 통해 관람객에게 각기 다른 지각의 온도를 마주하게 한다.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이혜진, The Path 220430, 2024, Graphite, ink on paper, 162.2 × 130.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이혜진, The Path 220430, 2024, Graphite, ink on paper, 162.2 × 130.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지혜영,  흐트러짐 속 상쾌함 no.1, 2025, 광목천에 혼합재료, 91 × 117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지혜영, 흐트러짐 속 상쾌함 no.1, 2025, 광목천에 혼합재료, 91 × 117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허은오, the secret workings of nature, 2023, Black ink, 24k gold leaf on Korean paper, 80.3 × 80.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허은오, the secret workings of nature, 2023, Black ink, 24k gold leaf on Korean paper, 80.3 × 80.3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허현숙, 꿈동산 Ⅱ,  2023, 장지에 흑연, 120.2 × 80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허현숙, 꿈동산 Ⅱ, 2023, 장지에 흑연, 120.2 × 80 cm. 이미지 금산갤러리

김도훈, 박현욱, 윤필현, 이계진, 이혜진, 전영진, 지혜영, 최명원, 해나킴, 허은오, 허현숙 11인의 작가가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온도에 맞춰 선보이는 《Eleven Degrees》 그룹전은 금산갤러리(서울시 중구 소공로 46, B103)에서 5월 9일(금)부터 6월 10일(화)까지 열린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