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대호 작가는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허문다. 언뜻 회화와 구별하기 어려운 그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는 치밀한 작업 방식과 깊은 사유가 깃들어 있다. 그가 보여주는 기억의 조형들은 단순한 사진 편집이 아닌, 직접 제작한 채색 패널을 모델의 앞뒤에 배치하여 공간을 구성하고, 이를 한순간에 포착한 입체적 퍼포먼스의 결과물이다.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기억의 형상이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 구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감상자는 작품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든다.
갤러리벨비에서 4월 10일부터 선보이는 서대호 작가 개인전 《단편적 기억의 잔상》은 2024년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한 작품을 다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자, 이전에 공개된 적 없었던 소형 사이즈 작품들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작품을 다양한 크기로 전시하여 보는 이들이 공간과 더욱 긴밀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사진 매체 특유의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실험적 시도이기도 하다.

찰나를 지난 모든 순간은 기억이 된다. 기억은 조각난 채 겹쳐고 흐려지며 때로는 왜곡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기억의 변형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잔상과 감정을 색과 형태로 은유한다. 작품과 공간이 만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맨다. 이 가운데, 저마다의 잊힌 기억을 떠올리고 그 잔상을 다시 한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의 작업에서 재료를 선택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작품이 단순한 사진이 아닌 회화적인 성격을 지니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광목천처럼 질감이 잘 드러나는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표면의 미세한 텍스처가 빛을 받았을 때 깊이감과 시각적 밀도를 더해주기 때문에, 이러한 재료적 선택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컬러는 기억의 감정을 이끌어 내는 주요 매개체입니다. 작업 과정에서 떠오르는 기억과 감정들이 색으로 투영되었죠. 색은 단순히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내면의 서사를 담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색채를 통해 기억의 편린들이 조형적인 언어로 발현되도록 했습니다.
배경 오브제들의 배열은 조형적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 특히 신중하게 접근했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하나의 통합된 조형물처럼 보이도록 오브제들을 배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죠. 이러한 구성 방식은 단지 형태적 미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브제들 사이를 빛이 통과하면서 생겨나는 그림자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그 그림자는 작품에 공간적 깊이를 더해주었고, 평면적인 회화 작업 안에서 공간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저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테일에 집중하는 이유도 그 맥락에 있습니다. 빛과 색, 공간감이 서로 얽히며 단순한 재현을 넘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작업 방식입니다.”(서대호 작가 '작업노트')
서대호 초대 개인전 《 단편적 기억의 잔상 》은 갤러리 벨비(서울시 강만구 언주로 146길 9 행담빌딩 1층)에서 5월 3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