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끝자락 전남 강진 정약용 남도유배길 2코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숲길 소나무가 뿌리를 드러내 핏줄처럼 이어진다.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남도 끝자락 전남 강진 정약용 남도유배길 2코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숲길 소나무가 뿌리를 드러내 핏줄처럼 이어진다.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5일간의 긴 추석 명절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위해 매일 20만 1천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11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발표에 의하면 13일부터 18일까지 120만 4천 명의 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추산했다.

코로나 세계적 팬데믹이후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색다른 풍광과 신나는 체험, 독특한 음식, 여행 유튜버에 대한 로망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자칫하면 휴가 이후 피로에 휩싸일 수 있다.

추석 연휴 기간 가족과 만난 이후 힐링 여행을 생각한다면 그동안 쌓인 긴장을 내려놓고 한 호흡 고르며 나서는 국내 도보여행을 추천한다. 명절이라 명소라도 복작거리지 않고 호젓하게 걷다가 숲길이나 황토 흙길에서 맨발로 걷다 보면 머릿속이 가을하늘마냥 청명하게 비워질 수도 있겠다.

첫 추천 코스는 전남 강진 ‘정약용 남도 유배길’.

한국 인문서 최초 밀리언셀러가 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첫권에서 저자인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걷기에 가장 아름다운 길로 강진‧해남길을 꼽았다.

그중 강진은 수많은 트래킹 애호가들이 오랜 기간 걷고 또 걸어 정약용 남도 유배길이 만들어졌다. 행정기관에서 관광목적으로 지정해 걷다 보면 끊기고 길을 잃는 코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도 끝자락에 탐진강 푸른 물과 월출산 골짜기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빛의 녹차 밭, 강진만 생태공원의 철새도래지, 가우도와 마량미항을 걸으며 바다 풍광까지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강진문화관광 누리집에서 제공하는 강진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4코스와 바다둘레길 2코스 지도. 사진 강진문화관광 누리집 지도 갈무리.
강진문화관광 누리집에서 제공하는 강진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4코스와 바다둘레길 2코스 지도. 사진 강진문화관광 누리집 지도 갈무리.

현재 남도유배길 4개 코스와 바다 둘레길 2개 코스까지 총 6개의 코스가 있는데 직접 걸어본 바 그중 2코스 ‘사색과 명상의 다산오솔길’ 15km(5시간) 코스와 4코스 ‘그리움 짙은 녹색 향기길’ 16km(5시간 30분) 코스가 특히 인상깊다.

‘사색과 명상의 다산오솔길’의 출발지는 다산박물관. 정조의 특별한 신임을 받은 조선의 천재 다산 정약용에 관한 정보와 체험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 1km 숲길을 따라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산길에는 소나무 뿌리가 땅 위로 나와 마치 실핏줄처럼 뻗어 나가 생명력의 강인함을 느끼며 걸을 수 있다. 잠시 맨발로 걸어보자.

정약용이 유배 18년 중 10여 년을 머물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와 같은 저서 600여 권을 집필해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초당은 강진만을 굽어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 잡았다.

다산초당에서 제자들이 유숙하던 서암.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다산초당에서 제자들이 유숙하던 서암.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초당 툇마루에 앉아 숨을 돌리고 다산 선생이 기거하던 동암과 제자들이 유숙하던 서암, 다산이 ‘정석丁石’이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여 즐기던 약수인 약천 등을 천천히 둘러보고 출발하면 된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완만한 800미터 도보 30분간의 오솔길에는 차나무와 동백나무가 향기롭다. 이 길이 기나긴 유배 세월 중 벗이던 혜장선사와 다산을 잇는 통로였다고 한다.

그 길 중간에 나타나는 해월루에 오르면 강진 바다와 강, 숲을 한눈에 모두 감상할 수 있는데 해돋이 명소라 한다. 다시 길을 떠나 천년고찰 백련사에 이르면 만경다설에서 스님들이 직접 덖어 만든 차 한잔을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강진 남도유배길 2코스 중 만나는 천년고찰 백련사. 주요 전각이 바다를 향해 있다.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강진 남도유배길 2코스 중 만나는 천년고찰 백련사. 주요 전각이 바다를 향해 있다.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신라말에 세워진 백련사에서는 불교가 융성하던 고려 시대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다가 다산이 강진에 머물며 중흥기를 맞았다고 한다. 백련사 주변에는 야생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고, 천연기념물 제151호인 7천여 그루의 동백나무군락과 함께 비자나무, 후박나무가 자란다. 3월과 4월에 방문하면 만개했다 떨어진 붉은 동백꽃이 주단을 이룬다.

또한, 백련사는 대웅전 등 중심 전각이 바다를 향하고 있어 노을 무렵 앞마당에서 바라보면 더할 나위 없다.

강진만 생태공원. 철새도래지로 가을철 저녁나절 철새들의 비행을 관찰할 수 있다.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강진만 생태공원. 철새도래지로 가을철 저녁나절 철새들의 비행을 관찰할 수 있다.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백련사를 떠나 강진만을 끼고 이어지는 철새도래지. 드넓은 바다와 갯벌이 펼쳐지며 저녁 나절이면 떼를 지어 하늘을 수놓으며 이동하는 철새들의 비행을 볼 수 있다. 다시 길을 나서 남포마을과 목리마을을 지나 다산 선생이 4년간 머물던 사의재(四宜齋)가 나온다.

다산 정약용이 4년간 머물던 사의재. 왼편에는 유배 온 정약용이 즐겨 먹었다는 아욱국을 맛볼 수 있는 주막이 있다.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다산 정약용이 4년간 머물던 사의재. 왼편에는 유배 온 정약용이 즐겨 먹었다는 아욱국을 맛볼 수 있는 주막이 있다.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사의재에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유배 온 다산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실의에 빠져 먹지도 않고 방 안에만 있던 그를 "허투루 살지 말라"며 끌어내었던 주모의 동상이 있고 다산이 맛있게 먹던 아욱국을 파는 주막도 있다.

마지막 코스의 끝은 강진 시내에 자리한 영랑생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영랑 김윤식(1903-1950)의 생가이다. 남도 사투리가 가득한 ‘오메, 단풍 들것네’와 같이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린 시인이다. 생가의 뒤편 툇마루에 앉으면 뒷산에 촘촘한 대나무끼리 부딪는 소리가 영롱하여 음악처럼 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위無爲로 이름지은 소박한 무위사,
계곡을 흘러내린 물이 구름이 되어 오르는 백운동 원림을 만나다

4코스 ‘그리움 짙은 녹색향기길’은 강진 성전면 대월 달맞이 마을을 출발해 월송을 지나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무위사(無爲寺)에 이른다. 무위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 힐링 도보여행에서 적격이 아닐까 한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처럼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고 말한 천년고찰 무위사.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처럼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고 말한 천년고찰 무위사. 사진 남도유배길 누리집 갈무리.

이른 아침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무위사를 가서 전각에서 밖을 내다보고 눈을 감으면 산새 소리,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와 정적만이 머문다. 세상의 어지러운 일을 잠시 잊고 마음을 다스려 보자.

굳이 무언가 보고자 한다면 무위사 극락보전 내부에서 국보 313호 아미타여래삼존벽화, 보물 1314호 백의관음도를 만날 수 있고 성보박물관에서 29점의 벽화를 볼 수 있다.

무위사를 나서면 안운마을 백운동 원림으로 갈 수 있다. 천혜의 자연에 깃든 백운동 원림은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 3대 정통정원 별서정원으로 유명하다.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가 조영하여 은거한 이후 13대를 이어온 별서원림이다.

전남 강진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4코스 백운동원림.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조선 선비의 은거문화를 보여주는 호남 3대 별서정원이다. 사진 강진문화관광 누리집 갈무리.
전남 강진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4코스 백운동원림.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조선 선비의 은거문화를 보여주는 호남 3대 별서정원이다. 사진 강진문화관광 누리집 갈무리.

백운동(白雲洞)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다산 정약용이 초의선사를 비롯한 제자들과 월출산을 등반하고 백운동에 하룻밤 유숙한 후 그 빼어난 풍광에 반해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백운동 12경 중 직접 8수를 짓고, 초의선사가 3수, 제자 윤동이 1수를 지어 총 14수의 시로 백운첩을 완성했다고 한다.

백운동 원림에 이어 월출산 밑으로 길은 온통 초록빛 녹차밭이다. 강진은 천년 차문화가 이어진 곳으로 쇄락하던 차문화는 다산 정약용이 삼증삼쇄 구증구포 제다법을 완성하면서 다시 살아났고 한다.

길을 나서면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지만, 백제지역이라 백제 양식으로 세워진 월남사지 3층 석탑을 지난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폐사지에 세워진 석탑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쁨을 전한 유물이다. 코스는 달빛 한옥마을, 상월마을, 누릿재를 지나 주작산 천황사에서 끝난다.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을 걷기 위해서 강진문화관광 누리집에서 ‘여행/체험’을 누르고 ‘길여행’ 중 남도유배길을 선택하면 지도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