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 이하 ‘영상자료원’)은 7월 28일(금)부터 한국영화박물관(서울 상암동 소재)에서 신규 기획전시 《씬의 설계: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영화 속 세계(이하 ‘씬의 설계’)》를 개최한다.

영화 '아가씨' 히데코의 방 벽지 테스트 이미지.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아가씨' 히데코의 방 벽지 테스트 이미지.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이번 전시는 한국영화 프로덕션 디자인을 대표하는 류성희, 조화성, 한아름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을 소개한다. 영화 한 편의 미술이 아닌 ‘프로덕션 디자인’ 과정 자체를 조망한 전시로는 최초이다. 이번 전시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의 프로덕션 디자인의 역할과 기능은 물론 마치 한편의 작품과도 같은 디자이너의 작업물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영화의 또 다른 미학을 경험하게 한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한 편의 영화를 시각적 의미로 해석하고 영화 전체의 외양, 즉 비주얼(visual)과 룩(look)을 총괄함으로써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세계관을 시각적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영화 미술의 개념은 1897년 조르주 멜리에스가 영화 제작사 스타필름을 설립하고 무대, 연출, 장치, 트릭, 특수촬영 등 시각적이고 조형적인 측면에 큰 비중을 둔 영화를 만들면서 도입되었다. 하지만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명칭은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빅터 플레밍)에서 처음 쓰였다. 미술을 담당한 윌리엄 카메론 멘지스는 영화 전체 장면을 스토리보드화하고 화면 구성, 촬영의 움직임 등 시각적인 모든 요소를 설계, 조율, 관리하여 영화의 완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1940년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명예상을 수상함으로써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현장 세팅 이미지.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헤어질 결심' 현장 세팅 이미지.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씬의 설계’ 첫 번째 섹션의 주인공인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한국인 최초로 칸영화제 기술상인 ‘벌칸상’을 수상했다. 이 섹션에는 벌칸상 수상작인 <아가씨>(2016, 박찬욱)와 <헤어질 결심>의 프로덕션 디자인 과정을 다룬다. 그녀의 독보적인 시그니처인 ‘벽지’가 디자인되는 과정과 도면, 3D 스케치, 현장 세팅 이미지 등을 전시한다. 특히, 외부에는 쉽게 공개되지 않았던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한 사전 조사자료와 세팅 일정표, 로케이션 현장 사진 등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판옥선 용문양 디자인.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한산 용의 출현' 판옥선 용문양 디자인.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1997년 <초록물고기>(이창동)로 영화 미술을 시작한 조화성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1세대 미술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을 다 열거하기도 숨찬 엄청난 이력의 소유자다. ‘씬의 설계’ ‘조화성 프로덕션 디자이너’ 섹션은 그의 최근작 <한산: 용의 출현>(2022, 김한민)의 거북선과 판옥선, 안택선(왜선)의 디자인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신형 구선 측면도.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신형 구선 측면도.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삼부작’ 중 <한산: 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개봉 예정)의 디자인을 맡은 그는 규장각 사료 등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되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배에 사용된 목재의 색감과 두께의 경고함까지 모두 계산하여 디자인했다. 이 섹션은 영화 속 배를 디자인하기 위해 조사한 이미지를 종합한 ‘이미지 맵’은 물론 각 배의 도면과 3D 그래픽 모델링 작업물을 지류뿐만 아니라 3D 영상으로 구현하여 마치 관람객이 거북선과 판옥선, 안택선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 '길복순' 상가식당 콘셉트 디자인.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길복순' 상가식당 콘셉트 디자인.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2022년 <킹메이커>(변성현)로 청룡영화상 미술상을 받고, 넷플릭스 <길복순>(2023, 변성현)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담당한 한아름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영화감독들로부터 현재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는 디자이너 중 하나다. 특히, <길복순>은 통상적인 엔딩 크레디트 표기 순과 달리 이례적으로 연출 다음에 바로 프로덕션 디자인이 표기되어 한국영화 제작 과정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킹메이커>와 <길복순>을 다룬 이번 섹션에서는 프로덕션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라 할 수 있는 ‘콘셉트 디자인’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미지화하는 작업으로 영화 전체의 영감과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콘셉트 디자인’은 영화 전체 룩(look)을 한눈에 감지할 수 있는 이미지이자 그 자체만으로 한편의 회화와 같은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영화 '킹메이커' 목포항 연설 콘셉트 디자인.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킹메이커' 목포항 연설 콘셉트 디자인.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는 1990년대 초반까지 연출부에서 세트와 소품 등 미술 작업을 맡아 진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프로듀서 제작 시스템과 새로운 경험을 축적한 미술감독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영화에서도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그 배경에는 미학적 성취의 중심축을 담당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최근 한국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칸 국제영화제 기술상인 벌칸상과 미국영화미술감독조합 미술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씬의 설계’ 전시는 한국영화박물관에서 11월 18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한국영상자료원 기획전시 '씬의 설계: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영화 속 세계' 포스터.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상자료원 기획전시 '씬의 설계: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영화 속 세계' 포스터.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