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 이하 ‘영상자료원’)이 발간한 e-Book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영화 현장에서 활동한 영화제작자와 감독 14인의 인터뷰집이다.

책의 인터뷰 내용은 2021년에 기증받은 다큐멘터리 영상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에서 발췌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상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2008년에 기획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총 17명의 현장 영화인으로부터 총 21시간 15분 분량의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 동영상 자료 모두 보존하고 있다.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 표지.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 표지.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에서 인터뷰한 17인 중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에서는 14인의 영화제작자와 감독들의 이야기를 요약⋅정리했다. 황기성⋅이춘연⋅유인택⋅차승재⋅심재명⋅김승범 등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영화제작자들,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실미도>의 강우석,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꾼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한국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접속>의 장윤현, 국내외 독립⋅예술영화를 배급⋅상영해 온 조성규와 손주연,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시리즈로 주목받으며 이후 상업영화로까지 영역을 넓혀간 변영주, 우수한 저예산 영화들을 제작한 오기민⋅김조광수 감독에 이르기까지, 인터뷰 참여자들의 생애를 따라가며 그들이 경험하고 이야기하는 한국영화의 역사적 순간들을 통해,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한국영화산업의 다양한 측면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한국영화산업에서 ‘화양연화’, ‘르네상스’로 불리는 2000년대 초반. 2003년 한 해에만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2003), <장화, 홍련>(김지운, 2003), <올드보이>(박찬욱, 2003), 한국 최초의 천만영화 <실미도>(강우석, 2003)에 이르기까지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고 사랑하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영화계는 다시 ‘위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어디에서 왔고, 또 위기는 왜 찾아왔는가? 그에 대한 답을 현장에서 직접 한국영화산업을 경험하고 이끌었던 영화제작자와 감독들로부터 들었다.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 표지.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 표지.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의 1부 ‘영화제작 시스템과 자본의 변화’에서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활동했던 영화제작자와 투자자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2부 1990년대 최고의 흥행작을 만든 감독들에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들을 탄생시킨 감독들의 인터뷰를 엮었다. 따라서 2부에서는 이들의 개인적인 작품 활동과 이후 제작자와 투자자로서 관객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쏟은 노력을 담았다. 3부는 ‘한국영화와 다양성’을 주제로 인터뷰를 구성하였다. 한국영화에서 ‘다양성’의 문제는 멀티플렉스가 극장의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된 화두이나, 현재까지도 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에 3부의 인터뷰들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수연 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은 “여기까지의 한국영화산업의 흐름을 종합해 봤을 때, 우리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르네상스 또는 화양연화라고 말하는 한국영화의 빛나는 순간에도 그 이면에는 빛의 그늘 속에서 힘겹게 버텨 나가고 있는 산업의 일면이 존재했으며, 이 그늘이 커지면 ‘위기’를 말하고, 강렬한 빛 속에 잠시 어둠이 삼켜지면 그 시기를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식으로 한국영화산업은 늘 빛과 어둠을 함께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 머리말).

영화제작자 차승재는 1980년대부터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의 출현과 함께 한국영화산업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자본은 산업의 성격과 시스템을 바꿔갔다. 여기에 유인택⋅신철⋅심재명⋅이은과 같은 새로운 인력이 한국영화계에 들어와 변화하는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하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한국영화를 만들었다. 이 책에는 이들이 ‘기획실모임’을 형성하고 각자의 제작사를 차려 영화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히 담겨있다.

또 영화제작업이 표준산업분류상 서비스업에서 제조업으로 분류되며 벤처 자본의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일신창업투자에 있던 김승범은 투자자들을 설득해 한국영화 최초로 <은행나무 침대>(강제규, 1995)에 벤처 자본을 투입했다. <은행나무 침대>의 성공으로 한국영화에 벤처 자본이 물밀듯 유입되었고, 이 흐름을 타고 제작자와 감독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영화 속에 아낌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이 시기 한국영화산업 내에서는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도 이어졌다. 오기민의 마술피리, 김조광수의 청년필름와 같은 제작사에서는 대중의 호평을 받는 예술영화⋅저예산 독립영화들을 제작했다. 그리고 조성규⋅손주연은 스폰지하우스와 아트하우스 모모를 통해 이러한 영화들이 대중과 만날 수 있도록 상영 공간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이들이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오늘날 한국영화산업이 아직도 풀지 못한 과제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를 읽고 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 인터뷰들을 다 읽고 나면 다시금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2019년 <기생충>(봉준호, 2019)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고, 2020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황동혁, 2019)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유행을 낳고, 2022년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이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에 한국영화와 콘텐츠의 위상이 드높아진 지금. 이와 동시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많은 극장의 운영이 힘들어지고, 새로운 한국영화의 제작이 급격히 감소한 지금. 지금은 과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인가? 아니면 한국영화의 위기인가?”(이수연 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 머리말).

《한국영화, 열정을 말하다》는 e-Book으로 발간하여, 현재 KMDb 구술컬렉션 페이지와 각 온라인 서점(교보문고⋅알라딘⋅리디북스⋅예스24 등)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