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보킴(김보경)ㆍ정재나 2인전 《숨결: 풍경놀이》가 3월 23일 (목)부터 라흰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공간의 한 귀퉁이에서 풍경을 즐겼던 우리 전통의 조형 전략에서 출발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는 창을 활용하여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이나 변화무쌍한 집의 구조를 활용하여 자연의 다층적인 구도를 포용하는 ‘풍경놀이’를 즐겼다.
차경은 경치를 빌려오는 것이다. 즉 한옥은 실내에서도 자연과 접하려고 바깥의 경치를 집안으로 들어왔다. 한옥의 창이 그림의 액자를 풍경을 담아냈다. 방 안에 앉아 마당을 보고 담을 보고 담 너머 산이 보이는 구도이다. 이처럼 우리 건축은 자연과 일체되어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며 자연과의 경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라흰갤러리 조은영 큐레이터는 “이러한 현상에 착안한 이번 전시는 조형 언어와 '관조'의 정신을 토대로 주변의 경치를 보듬고 포용하는 두 작가의 작업을 마치 한옥의 프레임처럼 다층적인 공간의 구조 안에서 바라봄으로써,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의 진수를 체험하고자 기획하였다”고 말했다.
특히 “보킴과 정재나 작가는 풍경을 분별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그것의 리듬에 작업을 편입하는데, 이는 주체와 대상을 동등하게 세우려는 한국적 정신이 조형적으로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보킴 작가의 작업은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가변성과 잠재성이 실현되는 풍경의 변화들을 그의 감정에 담아 기록한다. 이러한 내용은 특히 한지와 모래가 주축을 이루는 재료로부터 부각된다. 한옥의 창에서 착상을 얻어 그는 얇은 순지를 이용해 프레임 너머의 풍경과 빛, 그것의 기억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감정을 회화로 구현한다. 작가는 한지를 겹겹이 오려 붙이고 물감을 얹은 후에 경계선 위로 발린 가루풀을 따라 모래를 뿌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려 붙인 한지에 주름이나 얼룩이 생기는 것과 함께, 모래 역시 순리를 따르듯이 뜯겨 나가기 때문이다.
보킴 작가는 이처럼 자연 현상이 만드는 변화와 생성에 저항하지 않으려는 심리를 드러냄으로써, 풍경이 일으키는 끊임없는 차이와 생성에 깨어 있기를 자신과 관객에게 촉구한다.

목공예에 바탕을 둔 정재나 작가는 한옥의 '차용' 개념을 활용하여 과거의 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이를 재해석하거나 이국적인 디자인으로부터 한국의 정신을 측량한다. 특히 그는 범례를 답습하지 않으면서도 세월에 잠식되어가는 전통을 관객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가까이 느끼게 한다. 미술품 수출입 상자와 가구 등의 형태를 보존하여 여기에 전통 단청을 접목한 작업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전통건축의 색채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단청’이다. 작가의 작업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기저기 긁히고 해체된 미술품 상자의 이력에 작가가 한국적인 고풍의 혼과 장소적 특징을 불어넣음으로써 완성된다. 그러면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온 상자가 우리 전통에 잠재되어 있던 형식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돌연 일상의 가운데에 들어서면서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다.

작가는 또 다른 평면 작업에서 나무의 생장 기록인 나뭇결을 탁본 기법을 이용하여 마치 울창한 풍경처럼 표현한다. 정재나 작가는 이러한 출품작을 통해 바깥의 풍경 작용을 실내의 지척에서 상기함으로써 공간의 내부가 실외의 눈부신 경관으로 절로 배어들기를 바란다. 이처럼 작업을 매개로 바깥의 풍경이 내부에 거하고 관객이 자연과 융화되는 것이다.

조은영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이렇듯 풍경에 순응하고 자연과 모나지 않게 하나 되는 이 풍경 작용에 관객을 스며들게 함으로써 정경의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감각적으로 선사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보킴 · 정재나 작가 2인전 《숨결 : 풍경놀이》은 4월 29일까지 라흰갤러리(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50길 38-7)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