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첫 다큐멘터리영화 〈디어 평양〉을 시작으로 2009년 〈굿바이, 평양〉 2021년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제작 발표하여 국제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양영희 감독의 첫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마음산책, 2023)가 최근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에 앞서 2022년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선보인 산문집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마음산책)로 국내 독자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

양영희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사진 정유철 기자
양영희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사진 정유철 기자

총련 산하의 ‘민족교육의 최고 전당’ 조선대학교를 무대로 하는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는 실제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라는 ‘일본 속 작은 북한’을 무대로 대학생활, 사랑과 좌절, 북한 수학여행,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2018년 일본 출간 당시 베일에 싸인 조선대학교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양영희 감독이 자신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요소를 더해 썼다. 그는 “연극을 사랑하는 대학생 주인공 박미영은 1964년생인 나 자신을 모델로 삼았고, 그녀가 청년을 보낸 1980년대 도쿄의 모습을 그리움에 담아 충실히 재현했다”고 밝혔다.

소설은 현재의 미영이 바에서 여대생들의 졸업 여행 이야기를 듣고 30년 전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짧은 프롤로그, 에필로그 사이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4년간이 그려져 있다. 1983년 주인공 미영은 졸업 후 극단에 들어가리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도쿄의 조선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곧 학교 생활에 숨 막히고 만다. 전원 기숙사 생활, 일본어 금지, 무단 외출 금지, 외출하더라도 통금 시간이 있고, 매일 같이 자기반성과 상호 비판, 패션지나 주간지 금지, 졸업 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해지는 진로까지, 생활과 사상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학교는 일종의 감옥과도 같았다.

미영은 입학 첫날부터 외출하고 문학부 사상 처음으로 신입생이 연극 잡지 <테아트로>를 들고 다녀 교수들을 놀라게 하고 학부에서 유명해진다. 한편으로 옆 학교인 무사시노미술대학의 일본인 남학생 구로키 유와 만나면서 담장 너머의 ‘자유’에 충격을 받는다. 일본이라는 한 공간에 교칙이 제일 느슨한 대학과 제일 엄격한 대학이 이웃에 있다. 그러나 담장 너머에는 ‘자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일조선인을 위협하는 일본 우익들이 조선대학교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렇게 미영은 담장 밖에서는 차별주의자와 대립하고 담장 안에서는 민족주의, 전체주의와 맞서야 하는 혼란을 혼자 떠안고 있었다.

미영은 구로키 유를 사랑하지만 “나는 미영이 자이니치든 조선인이든, 그런 건 신경 안 써”라는 구로키 유의 말에 상처를 입고 그를 떠나고 만다. 배려한다지만 무신경, 무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아 함께할 수 없었다. 1984년 여름, 대학 2학년 때의 일이었다.

양영희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표지. 사진 정유철 기자
양영희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표지. 사진 정유철 기자

그리고 이 작품 안에서 북한으로의 졸업 여행은 비중 있게 다뤄진다. 대학 3학년 1985년 가을 미영은 수학여행으로 평양에 간다. 그곳에서 음악가인 친언니 미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미영은 조바심을 내는데, 평양에서 언니를 만나지 못한다. 언니와 함께 평양 악단 단원이었던 형부의 말실수로 인해 중국 접경 지역인 신의주로 추방당한 것이다. 낙담하던 미영은 친구의 조언에 따라 실상은 감시자인 최 지도원을 매수해 열차를 타고 신의주로 향한다. 신의주를 오가며 미영은 ‘지상 낙원’이라는 ‘조국’의 실상을 처음 접하고 경악한다.

어렵게 만난 언니는 자기비판과 구타로 정신을 놓아버린 남편을 두고도 부모과 조국을 향한 원망보다 어떻게든 평양으로 돌아가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미영에게 “행복해지는 게 네 의무”라며 어디서 살든 국적을 바꾸든, 자유롭게 살면 된다고 당부한다.

학교로 돌아와 졸업을 앞둔 미영은 모교인 오사카조선고급학교의 국어 교원이 되라는 지시를 받는다. 모두가 “주어진 ‘혁명 초소’에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해야 하는 현실에서 미영은 일생일대의 기로에 놓인다. 미영은 말한다.

“저는 조직 위탁을 거부합니다. 오사카조선고교에 가지 않겠습니다. 졸업이 취소된다고해도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졸업식장에서도 충성맹세를 거부한다. 소설은 에필로그에서 회상에서 돌아온 미영이 구로키 유와 재회하는 것으로 끝난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저자는 자신을 투영한 미영이라는 인물의 눈으로 조선대학교라는 조직의 내밀한 단면과 재일조선인이 처한 현실,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실상까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양영희 영화감독은 일본 오사카 이카이노에서 태어난 재일코리안 2세로 도쿄의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조선고급학교에서 국어(조선어)교사로 근무했다. 소설 속 미영은 국어교사를 거부했으나 저자는 교사로 근무했다.

소설에서 미영의 심리묘사가 리얼한 것은 저자가 조선대학교를 졸업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방문 과정, 북한의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한 것도 실제 북한을 여러 번 방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자는 고등학교 때 첫 방북한 것을 시작으로 다섯 번 넘게 방북했고 평양에서 살고 있는 세 오빠 가족을 만났다. 이에 관해 저자가 산문집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에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를 미영과 구로키 유의 사랑을 중심으로 보면 조선대학교를 무대로 이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과 인근 미술대학에 다니는 남학생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미영의 성장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이 사랑이야기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모두 허구라고 밝힌 바 있다.

저자는 온갖 억압과 민족차별, 뿌리 깊은 남성중심주의 속에서 자유를 찾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미영을 통해 민족이나 이념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대기실에서 나와 구로키 유가 기다리는 가게로 향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는 약간의 긴장. 기대도 불안도 없었다. 그때보다는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미영도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조선대학교 시절 청바지는 금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