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비건(vegan)이 또 하나의 소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올해로 4년 차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인 김태영 씨.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 전공하던 그는 대학에서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리포트 과제를 받고 흔치 않은 주제 같아 비건을 선택했고, 그때 감상한 황윤 감독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올해 4년차 비건 김태영 문화팀장(지구시민연합 청년NGO 지지배). 사진 강나리 기자.
올해 4년차 비건 김태영 문화팀장(지구시민연합 청년NGO 지지배). 사진 강나리 기자.

현재 지구시민연합 청년NGO 지지배(지구를 지키는 배움터)에서 문화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1월 하루 한 끼 채식 도전 ‘순한 맛 비거뉴어리 챌린지’를 기획‧추진했다.

소설가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육식을 거부하는 주인공이 겪는 정신적 폭력을 다뤘다.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우리 사회에서 비건을 하는 데 대한 인식은 어떨까? 지난 8일 김태영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비건이 소수자라고 생각하나?

그사이에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존중해주는 분도 늘었지만, 아직 어른세대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염려하는 분이 많습니다. 제 부모님과 할머니도 초기에는 “언제까지 할 거냐?”며 반대를 했고, 지금은 “(고기) 한 입 먹어보면 어때?”라고 농담처럼 권하시죠. 전 웃으며 거절하고요.

웃픈 에피소드가 있죠. 얼마 전 할머니가 제 사주를 보고 오셨는데 역술가가 제게 나무가 많이 들어있어 풀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저를 색다른 방법으로 설득하려 하셨죠. (하하)

그럼 가족은 어떻게 이해시키나?

저를 포함해서 우리 가족 모두 육식을 좋아했는데 그 때문에 가족력으로 당뇨,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을 겪는 분들이 있어요. 비건을 하는 제가 아무래도 가족 중에 가장 오래 살 것 같다고 하면 다들 “그건 그래”라고 동조하시죠.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계기라고 했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

2015년 작인데 공장식 축산업의 현실과 윤리적인 문제, 구제역 살처분에 동원된 분들이 겪는 트라우마, 심각한 환경문제, 전염병, 팬데믹의 위험을 다뤘어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니 더욱 현실로 와 닿았죠. 영화를 본 때가 2020년 3월이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여서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했어요. 저부터 비건을 시작해보자고 결심했죠.

비건을 시작해보니 어땠나?

부분 채식으로 시작했어요. 집에서는 비건을 하고 학교 친구들이나 선배, 교수님과 식사할 때는 융통성 있게 일반식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비건을 실천하기가 힘들었어요. 도시에서는 주변에 비건 아닌 인스턴트 음식이 많고 편리한 시스템이 구비되어있어 공부로 인해 바쁘고 정신없을 때는 쉽게 그런 걸 선택하게 되더군요.

김태영 팀장은 지난 1월 한 달 하루 한 끼 '순한 맛 비거뉴어리 챌린지'를 기획해 진행했다. 참가자들 인증사진. 사진 지구시민연합 지지배 제공.
김태영 팀장은 지난 1월 한 달 하루 한 끼 '순한 맛 비거뉴어리 챌린지'를 기획해 진행했다. 참가자들 인증사진. 사진 지구시민연합 지지배 제공.

휴학을 하고 제주살이 1년을 선택했다고.

공부만 해서 제게 사회 경험치가 부족하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 가치관과 일치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게스트하우스 스텝, 테마파크 캐스트(도우미), 카페 바리스타를 경험하면서 도시락을 싸고 제로웨이스트 샵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세제를 리필하며 친환경 생활을 실현했죠.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도심의 편리함이 덜 하니 실천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비건을 하게 된 건 제주에서 비건 커뮤니티를 알게 되고 교류하면서부터였어요.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과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니까 비건의 가치와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나 자신과 생태계, 지구환경을 위해서도 비건을 꼭 하겠다는 확신이 강해졌어요.

청년NGO 지지배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서울로 돌아와 복학해서 한 학기를 다니다 회사 인턴 생활을 하고 있었죠. 작년 여름에 제가 환경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아는 선배가 “지지배라고 동아리와 같은 성격인데 함께 해보면 어때?”라고 권했어요. 같이 들어왔는데 기대보다 훨씬 좋았어요. 왜냐하면 친환경에 대해 소신은 있지만, 남들이랑 같이할 생각을 못 했거든요.

소극적으로 홀로 비건 실천, 환경 영화 감상, 플로깅 등을 실천했죠. 학교 친구들이나 주변에서는 관심이 없어서 고립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남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어요. 외면당할까 봐서. 그런데 여기서는 충분히 활동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해주니까 생각한 걸 사회 참여 행동으로 바꾸는 데 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어요.

지난 해 담배꽁초로 인한 해양 미세플라스틱 오염 관련 '여기서부터 바다'캠페인에서 영상제작으로 대상을 탔다. 지지배 홍다경 대표(왼쪽)과 김태영 문화팀장. 사진 지구시민연합 지지배 제공.
지난 해 담배꽁초로 인한 해양 미세플라스틱 오염 관련 '여기서부터 바다'캠페인에서 영상제작으로 대상을 탔다. 지지배 홍다경 대표(왼쪽)과 김태영 문화팀장. 사진 지구시민연합 지지배 제공.

지지배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나?

지구시민연합 내의 청년 단체인데 170명 정도의 활동가가 있는 데 꼭 환경문제에 관심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직장인이나 학생, 프리랜서 등 다양한 분들이 서로 교류하고 싶어서도 참여하니까요. 연령을 제한하지도 않죠.

핵심 활동으로는 쓰레기산이나 담배꽁초, 비건처럼 다양한 환경문제에 대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정책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협력해서 SNS 또는 현장에 나가 활동합니다. 무엇보다 나와 지구의 공존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어떤 활동을 했나?

길가 빗물받이에 불법투기된 담배꽁초로 인한 해양 미세플라스틱 오염 문제와 관련해 (사)자연의 벗 연구소가 주최하고 GS칼텍스가 후원한 ‘여기서부터 바다’ 캠페인 서포터즈 영상을 제작해서 대상을 받았고, 홍다경 대표님과 기업에 가서 환경과 비건 강의도 했죠.

특히, 지지배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는 쓰레기산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SNS홍보 활동, 서명 운동을 했어요. 국회 앞에 가서 심각성을 알리는 시위도 했죠. 그건 불법 투기업자들이 기업에 접근해 싸게 산업 쓰레기를 처리해준다고 하고 지역민에게 땅을 임대하고 쓰레기를 방치해 손해를 끼치는 경제와 환경에 관한 중대한 범죄거든요.

전국의 쓰레기 산 문제와 관련해 국회 앞에서 정책제안과 시위를 했다. 사진 지구시민연합 지지배 제공.
전국의 쓰레기 산 문제와 관련해 국회 앞에서 정책제안과 시위를 했다. 사진 지구시민연합 지지배 제공.

그럼 다시 비건으로 돌아와서 우리 사회에서 비건을 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제 생각에는 사회의 인식이 부족한 것도 있는데 근본적인 것은 비건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정말 부족한 것이죠. 자신의 선택으로 비건을 하려고 해도 실천하기 쉽지 않죠. 저는 제품 뒷면 첨가물을 확인하는데 얼마 전까지 없던 동물성 성분이 포함되어서 저도 모르고 먹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비건 가공식품들이 비싼 편인데 이를 찾는 소비자가 많아지면 기업도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가격은 저렴해질 겁니다. 규모의 경제 문제라 판단합니다.

우리 사회에 부풀려진 ‘단백질 신화’, 현재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채소와 과일 가격이 꽤 높다.

비거니즘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인데 우리나라가 식량 자급률이 20%가 채 안 된다고 해됴. 재난이나 전쟁, 기후 위기 등에 매우 취약해 가장 큰 식량위기를 겪을 것이라 예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곡물이나 과일, 채소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하죠.

비건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들 것 같다.

오늘 저는 얼마 전 담가둔 봄동 겉절이에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마침 콩고기가 있어 간단하게 비빔밥으로 먹고 나왔어요. 샐러드도 쉽고 빠르죠. 사실 간편식에도 비건이 있고 그동안 꾸준히 집에서 음식을 해 먹으면서 간편하게 만들고 비용도 절감할 방법도 생겼어요. 요즘 외식 물가가 꽤 높아서 서로 정보를 나누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중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비건식은 어떤 것이 있나.

최근 롯데리아에서도 비건 햄버거가 나왔고, 라면 중에는 팔도 비빔면, 풀무원 정면, 삼육재단 감자라면 등 가공식품 중에도 은근히 비건이 있어요. 비건 커뮤니티나 비건 채널에서는 알려졌는데, 비건은 맛이 없다는 대중의 선입견이 있어서 기업에서 대외적으로 홍보마케팅에 활용하진 않는다고 해요. 맛있는 비건이 많은데 말이죠. 비건을 내세워 환영받는 건 비건 화장품 정도일 겁니다.

"제 목표는 비건을 많이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전체의 육식소비 총량을 줄이는 것"

김태영 씨는 완전한 비건이 아니더라도 각자 나름의 기준으로 비건에 참여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육식 소비 총량을 줄이고 싶다고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김태영 씨는 완전한 비건이 아니더라도 각자 나름의 기준으로 비건에 참여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육식 소비 총량을 줄이고 싶다고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비건을 하면 영양 면에서 불균형해질 것이라는 염려한다.

그런 걱정을 많이 하세요. 특히, 고기를 먹지 않아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현미나 브로콜리, 콩, 두부, 감자 등 채소에도 단백질이 들어있고, 고기 한 종류에서 단백질을 얻는 것보다 여러 식재료에서 얻어야 다양한 아미노산을 섭취할 수 있어 좋다고 해요.

또, 비건들 사이에서는 ‘단백질 신화가 부풀려져 있다’라고 합니다. 생존에 필요한 단백질 양을 넘어서 엄청난 양의 동물성 식품 소비를 권장하죠. 육식으로 얻는 콜레스테롤이나 동물성 호르몬, 과한 육식이 불러오는 체질 산성화 등 여러 부작용에는 눈을 감고 있어요.

추천하고 싶은 비건 요리는?

비건을 하면서 가지요리에 빠졌는데, 가지와 피망, 감자로 만드는 지삼선 요리와 어향가지를 좋아합니다. 버섯 탕수도 맛있고요. 비건으로도 충분히 속세의 맛을 즐길 수 있어요. (하하)

김태영 씨가 비건을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를 묻는다면.

그동안 비건을 하면서 계속 공부하다 보니 100가지 이유가 생겼죠. 누군가 10가지를 반박하더라도 90가지 이유가 있다고 할 거예요. 그중 첫 계기이기도 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이유는 지구환경입니다. 3끼의 비건 식사로 온실가스 약 4.5kg을 절감할 수 있어요.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 체계에 대한 거부이기도 한데 지금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 지구와 인류, 생태계의 미래를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죠.

제 목표는 비건을 많이 만드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로 봤을 때 육식 소비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죠. 매일 한 끼, 일주일에 3일 등 각자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비건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