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NGO 지지배(지구를 지키는 배움터)가 지난 1월 실시한 '순한 맛 비거뉴어리 챌린지' 참가자들의 비건 식사 인증. 사진 지구시민연합 지지배 제공.
청년NGO 지지배(지구를 지키는 배움터)가 지난 1월 실시한 '순한 맛 비거뉴어리 챌린지' 참가자들의 비건 식사 인증. 사진 지구시민연합 지지배 제공.

지구환경 변화와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동물권을 비롯한 윤리적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인 개념의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 해의 첫 달인 1월에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비건을 실천하는 활동을 비거뉴어리(veganuary)라고 한다. 비건(vegan)과 1월 제뉴어리(January)를 합한 말로, 2014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2022년에만 공식적으로 629,000 명이 참여했고, 지금까지 이 캠페인을 통해 감축한 탄소 배출량은 약 670만 마리 동물의 목숨을 구한 것과 맞먹는다.

"비건 어렵지 않아요. 순한 맛으로 겁먹지 말고 시작하자" 

올해 1월 우리나라에서도 ‘순한 맛 비거뉴어리 챌린지’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순한 맛이라니.

“대부분 비건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첨가물까지 동물성인지 살피는 건 너무나 복잡하다고 여기죠. 사실 식재료 일부만 바꾸면 가능한데도 말이죠. 그래서 편견을 깨고 진입장벽을 낮춰 ‘하루에 1끼만 노력해보면 어떻겠나, 겁먹지 말고 시작해보자’라는 의미로 순한 맛이라고 했어요.”

이번 챌린지를 기획‧진행한 4년차 비건 ‘지지배’ 김태영 팀장의 말이다. 그가 소속한 지지배는 지구시민연합 소속 청년NGO로, 지구를 지키는 배움터라는 뜻이다. 본래 비거뉴어리는 자발적 동참 활동인데 챌린지 형태로 처음 시도된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챌린지 형태의 비거뉴어리 활동을 기획한 지지배 김태영 문화팀장. 사진 강나리 기자.
올해 처음으로 챌린지 형태의 비거뉴어리 활동을 기획한 지지배 김태영 문화팀장. 사진 강나리 기자.

확실한 동기부여를 위해 보증금 3만 원을 미리 내고, 카카오 단톡방에 목표인 28끼의 비건식사를 모두 인증하면 100%를 환급받도록 했다. 도전 기간 중 온라인 세미나,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시청, ‘기후위기와 채식’ 주제 온라인 강연으로 비거니즘의 필요성과 보다 쉽게 비건을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교류했다.

참가자들은 총 341회 비건 식사를 인증했는데 이는 총 485.36kg의 온실가스를 감축한 결과이다. 총 16명 참가자 중 100% 달성자는 3명, 나머지는 인증비율에 따라 평균 80% 정도 금액을 환급받았다. 마지막으로 자축하는 비건 식사 모임을 진행했다.

챌린지 기간 중 참가자들은 소박한 도시락, 인스턴트 비건 식사, 비건 햄버거, 직접 차린 멋진 한 상, 훌륭한 튀김 요리 등을 인증했다. 단톡방을 통해 ‘아! 이렇게 쉽게 비건을 할 수 있구나’, ‘저 요리는 나도 만들어 보겠다’라며 서로 격려했다.

챌린지 참가자들은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하고, 외식 음식 중에서도 비건을 찾아내 인증하기도 했다. 사진 지지배 제공.
챌린지 참가자들은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하고, 외식 음식 중에서도 비건을 찾아내 인증하기도 했다. 사진 지지배 제공.

“참가자 중에는 직장인도 많았는데 야근과 회식 때문에 그날 비건을 하지 못했다고 속상해하는 분도 있었어요. 그러면 서로 ‘괜찮다. 힘내라. 다시 하면 된다’라며 격려가 쏟아졌어요. 서로 어려움도 진솔하게 나누고요.”

한식에서는 채소가 많이 들어간다고 하지만, 멸치육수나 계란, 우유가 들어가고, 고기가 빠지지 않는 외식 메뉴 탓에 수많은 난관을 뚫고 눈물겨운 인증을 한 이들도 있었다. “경기도에서 직장 때문에 고시원에 사는 참가자는 요리는 물론 식재료를 보관하기도 어렵다고 해요. 그래서 편의점에서 비건 과자와 비건 육포로 한 끼 사진을 올리기도 했죠.”

태국 한 달 여행 중 챌린지 참여 동행 친구도 동참,
챌린지 후 직장 동료들과 ‘매월 한 번씩 비빔밥 데이’ 생겨

챌린지 후 참가자들의 자축 비건 식사자리에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왔다. 안식월을 맞아 한 달간 친구와 태국여행을 하던 중 챌리지 소식을 SNS로 확인한 30대 직장인 이유리 씨는 해산물 요리가 발달한 현지에서도 매일 1~2끼씩 비건 식사를 인증했다.

태국에서도 비건 식당이 드물지만 찾아냈다는 유리 씨는 과일로 한 끼를 먹기도 했다. 여행 중반까지 비건에 전혀 관심 없던 동행도 유리 씨와 같은 식사를 해보고는 “이렇게 맛있으면 평생 비건해도 되겠다”라고 호응했단다.

50대 직장인 김완주 씨는 동료들에게 비건 챌린지에 참가한다고 널리 알리고 시작했다. 동료들도 비건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과 자꾸 육식을 권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였다. 그의 도전이 진행되면서 사무실에는 ‘매월 한 번씩 비빔밥 데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시금치나물, 고사리나물, 무생채 등 재료를 각자 한 가지씩 가져오고 요리를 못하는 이는 밥을 싸 와서 함께 먹는다.

'순한 맛 비거뉴어리 챌린지'를 마치고 비건 식사로 자축 파티를 하며 경험을 나누는 참가자들. 사진 챌린지 SNS 갈무리.
'순한 맛 비거뉴어리 챌린지'를 마치고 비건 식사로 자축 파티를 하며 경험을 나누는 참가자들. 사진 챌린지 SNS 갈무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직장인 원종준 씨는 “처음에 비건은 별난 사람들의 문화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비건을 실천하는 주변 분을 보고 참여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음식에 동물성 재료가 섞여 있더군요. 때로 육식을 하고 싶은 충동도 있었지만 익숙해지니 비건으로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많은 걸 깨달았죠. 비건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쉽지만 강력한 방법이란 것도 알게 되었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1명의 완전한 비건이 아니라 10명, 100명의 불완전한 비건이 지구를 살린다”

지지배 활동가 이효림 씨는 “이번에 참여하면서 비거니즘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해먹는지 아이디어도 많이 얻고 연대감을 느껴서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습니다”라고 했고, 이선후 씨는 “요리를 하는 게 귀찮았지만, 덕분에 부지런해졌어요. 금전적으로도 절약이 되었죠. 제가 열심히 하다 보면 주위 사람들도 많이 변화하지 않을까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김태영 팀장은 “앞으로도 비거니즘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비건식당 탐방, 비거니즘 관련 스터디, 영화 상영회를 꾸준히 운영하고 챌린지 프로그램 또한 운영하려고 합니다”

그는 비건들 사이에서 많이 주고받는 말이자 이번 챌린지의 구호를 들려주었다.

“한 명의 완전한 비건(vegan)이 아니라 10명, 100명의 불완전한 비건이 지구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