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방정환 세계화를 위한 정책 포럼’이  11월 9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 아시테지코리아]
‘제3차 방정환 세계화를 위한 정책 포럼’이 11월 9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 아시테지코리아]

 장정희 방정환연구소 소장은 11월 9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3차 방정환 세계화를 위한 정책 포럼’에서 “1923년 5월 1일 우리나라에서 발표한 ‘어린이 해방 선언문’은 1924년 국제연맹의 ‘어린이 권리’(Rights)선언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해방’(Liberation)을 먼저 선언했다는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홍익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도종환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한 이날 포럼에서 장정희 방정환연구소 소장은 <한국 어린이날 어린이 해방선언의 역사적 의미 고찰>이라는 제하의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장 소장은 “‘1923년 5월 1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어린이 해방 선언문’(원명 소년운동 선언)이 공표된 날이다. 우리나라의 이 선언문은 1924년 국제연맹에 의해 채택된 ‘어린이 권리 선언’(일명 제네바 선언)보다 1년 앞선 것으로, ‘어린이 권리’(Rights)선언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해방’(Liberation)을 먼저 선언했다는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 선언의 역사적 위상,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는 학술적 조명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장 소장은 “1922년부터 1923년까지, 양 해에 걸친 우리나라 어린이날 운동은 실로 한 세기의 금을 그을 만한 ‘사건’이었다”며 “1922년은 어린이날이 처음 제정 선포하였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는 반면, 1923년은 ‘소년운동협회’ 명의로 ‘어린이 해방 선언’을 최초 공표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날이다”고 높이 평가했다.

“최근 어린이 문화 운동계로부터 통칭하기 시작한 ‘어린이 해방 선언’에 대한 용어의 정통성과 그 사적 계통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장 소장은 왜 우리는 ‘소년운동 선언 100주년’이라 하지 않고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을 공식적 용어로 채택하려고 하는지 주장과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그것은 우선 범박하게나마 첫째, 100년 전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 선언이 지닌 '세계사적' 의미를 보다 명징하게 부각시키기 위함이요, 둘째는 김기전·방정환으로부터 전개된 우리나라의 전통있는 '어린이 해방' 사상을 다시금 되살려내고자 함에 그 이유가 있다. 1924년 일명 '제네바 선언'이 <어린이 권리에 관한 선언>으로 통상 언급되고 있는 것과 같이, 제네바 선언보다 1년 앞선 우리나라의 선언은 '어린이 해방'(Liberation)을 목표로 하였기에, '어린이 권리 선언'과 구별하여 어린이 해방 선언'이라는 용어를 공식 국제화하고자 함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하겠다."

장 소장은 문헌 기록을 검토하여 '어린이 해방 선언'은 결코 근래에 새로 형성된 신조어가 아니라 우리 어린이 문화 운동계 선배들이 기초를 닦아놓은 개념이라고 밝혔다. 이는 ‘어린이 해방’ 운동의 이론이 설정되기 시작한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김기전과 방정환의 글에서 볼 수 있다.

장 소장은 "대표적인 글로 김기전의「장유유서(長幼有序)의 말폐」(개벽 2호, 1920.7.), 「개벽운동과 합치되는 조선의 소년운동」(개벽 35호, 1923.5.), 방정환의 「어린이날」(방정환, 어린이, 1926.5.),「조선소년운동의 역사적 고찰 (방정환, 조선일보, 1929.5.3.~5.14. 6회) 등"을 들었다.

이를 보면 "김기전이 어린이 해방을 외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7월 《개벽》지부터였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1923년 5월 1일, 어린이 해방 선언이 어느 해 느닷없이 돌출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로 ‘어린이 해방’론은 이미 천도교소년회가 조직(1921)되기 이전부터, 어린이날이 제정(1922)되기 이전부터 김기전을 필두로 당대 사회운동의 한 분야로 주창된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장 소장은 "어린이 해방 운동은 시대가 지날수록 퇴색하기는커녕 이 시대에 더욱 새로운 운동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결국, 192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간, 그 시대의 결은 조금씩 달랐지만, 김기전·방정환을 뿌리로 하는 우리나라의 ‘어린이 해방 운동’이란, 곧 지금까지의 무지와 압박, 각종 억압으로부터 어린이를 ‘풀어내어’(구원하여, 해방하여) ‘새 세상의 새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데 그 근본적인 취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 소장은 "오늘날 대한민국 어린이나 어른, 정부 기관은 예외 없이 우리나라 어린이 헌장이라고 하면 1957년 5월 5일 제정 선포된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1988. 5. 5. 개정)밖에 없는 줄 안다. 이보다 ‘34년’이나 앞선, 세계적으로 앞선 ‘어린이 해방 선언’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민족 독립운동에 씨앗을 뿌린 어린이 운동가들의 사상적 결정체인 <어린이 해방 선언>(1923. 5. 1). 이 선언이 한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도교소년회를 비롯하여 당대 조선 소년 단체 40여 곳이 일치로 결정을 보아서 공표한 것이기에, 우리나라 어린이의 역사와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물론, 어린이 청소년 교과서와 어린이날 계기성 활동에 포함시켜 자랑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소장은 1922년 천도교소년회(김기전ㆍ방정환)가 초안을 작성하고 소년운동협회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 공표한 '1923년 최초 어린이 해방 선언문'을 당일 동아일보 게재 내용을 바탕으로 소개했다. 

[자료 장정희 방정환연구소 소장]
[자료 장정희 방정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