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t rouge, 130.5 x 97.5cm, Acrylic on canvas, sanding, 2022 [사진 갤러리 조은]
Reflet rouge, 130.5 x 97.5cm, Acrylic on canvas, sanding, 2022 [사진 갤러리 조은]

프랑스를 기반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장광범 작가가 모네의 '수련'을 연상시키는 대형 물 풍경부터 블루톤의 웅장한 산 시리즈까지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19점의 신작을 공개했다. 갤러리 조은에서 10월 11일 개막한 개인전 〈Delete〉에서다. 

파리 에콜 데 보자르(파리 국립 미술학교)의 유서 깊은 건물에서 떨어져 나간 벽 조각 하나를 발견한다. 오랜 세월 마모되고 깎여지며 과거로부터 쌓여 올려진 벽의 단면은 작가에게 시간의 결이자 형태 그 자체였다. 작가는 캔버스에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다시 깎아 내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형태'를 그만의 독창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Reflet, 162.5 x 130.5cm, Acrylic on canvas, sanding, 2022  [사진 갤러리 조은]
Reflet, 162.5 x 130.5cm, Acrylic on canvas, sanding, 2022 [사진 갤러리 조은]

땅이 퇴적하며 지층을 쌓고, 나무가 해를 지나며 나이테를 이루어 가듯, 작가는 캔버스에 물감을 한층한층 쌓아 올린다. 물감이 충분히 쌓이면, 이제 캔버스 뒷면을 들어 올린 뒤 그라인더를 이용해 물감을 지워내기 시작한다. 이때 지층처럼 쌓인 시간이 원형 유기체 형태로 시각화되어 캔버스를 뒤덮는다. 율동감을 주는 원형들이 때로는 산 능선으로, 때로는 물의 풍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대자연이 한순간도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것처럼, 장광범의 시간 풍경 또한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인다.

Montagne bleue, 116.5 x 89.5cm, Acrylic on canvas, sanding, 2022 [사진 갤러리 조은]
Montagne bleue, 116.5 x 89.5cm, Acrylic on canvas, sanding, 2022 [사진 갤러리 조은]

이에 마엘 벨렉(Mael Bellec) 파리 세르누치 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유동적인 대자연을 표현하는 동양의 수묵 산수화뿐 아니라 클로드 모네의 ’수련(Nymphéas)’을 떠올린다. 실제로 장광범 작가는 주관적 색채를 강조하는 프랑스 근대 미술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 상징주의(Symbolisme)와 나비파(Nabis), 혹 인상파(Impressionnisme)의 병치 혼합적 색채 표현이 그 예이다.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한 색이 사물의 본질이라 여긴 인상파 화가들처럼 장광범의 원형 모티브들은 몽환적이고 미묘한 빛깔로 매 순간 그 모습을 드러낸다. 

Reflet, 162.5 x 130.5cm, Acrylic on canvas, sanding, 2022 [사진 갤러리 조은]
Reflet, 162.5 x 130.5cm, Acrylic on canvas, sanding, 2022 [사진 갤러리 조은]

장광범 작가는 2021년 프랑스 대기업 부이그(Bouygues) 그룹 수장 마틴 부이그(Martin Bouygues) 회장이 그의 작품 100호 한 점을 소장하고, 파리 개인전에서 부인 멜리사 부이그(Melissa Bouygues)가 네 점을 연달아 소장하며 화제가 됐다. 또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프랑수와 슈나이더 재단(Fondation François Schneider) 2022 공모전 최종 후보 30인으로 선정되며 국내외 미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중앙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는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미술 이론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장광범 작가의 개인전 <Delete>는 갤러리조은(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55가길 3)에서 11월 5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