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과 부끄러운 자화상을 노래한 시인, 동주
시대의 아픔과 부끄러운 자화상을 노래한 시인, 동주
  • 민성욱 객원기자
  • swmin07@hanmail.net
  • 승인 2022-08-18 14: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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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복의 달을 맞아 민성욱 국학 박사가 독립운동가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를 국학의 시선으로 재조명해봅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외딴 우물가에 가면 한 남자가 홀로 서 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말없이 우물을 들여다본다. 우물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듯 파란 바람이 분다. 그를 온전하게 맞이하는 것은 하늘뿐이었고 현실은 항상 모진 바람이 되어 꿈같이 사라졌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시인의 길임을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가 바로 주권을 상실한 나라의 시인으로 사는 평범한 길이 얼마나 부끄럽고 괴로운 일인지를 온몸으로 보여 준 시인 윤동주다. 

영화 '동주' 포스터 [이미지 (주)루스이소니도스]
영화 '동주' 포스터 [이미지 (주)루스이소니도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는 높은 수준의 도덕의식으로 항상 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 한 시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항상 부끄러운 자화상을 노래했다. 유일하게 부끄럽게 여기지 않은 순간은 바로 죽음의 순간이었다. 그는 죽는 그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갈망하였던 것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력 투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처럼 시인도 독립운동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문학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인 시인 윤동주 vs. 혁명가 기질의 열사 송몽규

윤동주와 송몽규는 사촌지간으로 동갑내기 친구이다. 그런 그들이 태어난 공간도 같았고, 공교롭게도 죽은 공간도 같았다. 두 사람은 1917년 같은 해, 같은 마을, 같은 집에서 태어났다. 같은 학교에 다녔고, 같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5년 29세, 같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조국의 광복을 코앞에 두고 안타깝게 눈을 감았던 두 사람이었다.

어릴 적 친형제처럼 자랐던 두 사람,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 또한 같았다. 하지만 영화 속 몽규와 동주는 정반대의 인물로 등장한다. 군중을 사로잡는 연설을 펼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었지만 중국과 간도를 오가며 몽규는 독립 투쟁을 벌였다. 반면 동주는 시를 쓰고 잡지를 만들며 일제의 총부리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못했고 몽규의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하지도 않았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자백서에 서명을 강요받을 때도 두 사람의 태도는 달랐다. 몽규는 재일조선인 유학생들을 규합, 사상 교육을 했다는 대목에서 내가 제대로 못 시켜서 안타깝고, 내가 이렇게 하지 못한 것이 괴로워서 서명한다고 한다. 반면 동주는 자백서에 서명 강요를 똑같이 받았지만 부끄러워서 서명을 거절한다. 윤동주 시인의 전반적인 정서가 부끄러움에 있었다. 이렇듯 자백서의 서명을 앞두고 영화는 두 사람의 결정을 번갈아 가며 보여 주고 영화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인 몽규의 모습이나 문학을 통해서 시대를 이야기했던 동주의 모습 모두 다 독립투쟁이었으며, 둘 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이 되고자 했음을 말하고 있다.

 

일제에 저항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서로에게 자극이 된 두 친구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의 제목을 ‘동주와 몽규’로 해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이 대비되는 장면이 많다. 하지만 대비됨으로써 동주의 고뇌를 극대화하여 관람객은 그의 고뇌를 100% 느낄 수 있게 한다. 항상 앞서 나가는 친구 몽규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동주, 그것 또한 윤동주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와 산문 그리고 이상과 현실을 논하는 동주와 몽규

동주 : “시도...자기 생각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아”

동주 :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동주 :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거고”

동주 :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몽규 : “그런 힘이 어드렇게 모이는데? 어?”

몽규 : “그저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서래”

몽규 : “문학 속으로 숨는 것밖에 더 되니?”

동주 : “문학을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영화는 위 대사를 통해 동주와 몽규의 문학에 대한 가치관 충돌을 보여 주고 있다. 문학을 통해 저항하면서도 가치관을 고민했던 동주, 그는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몽규 덕분에 저항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짧은 시이지만 그 생명력은 산문보다 더 오래간다. 송몽규는 산문을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지만 장래 희망은 독립군이었다. 이처럼 동주와 몽규,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위에서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똑같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당시 조선의 청년들은 일본의 전쟁에 동원될까 걱정해야 했던 시대였다. 징집을 피하기 위하여 윤동주와 송몽규는 경성에 있던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 학교에 입학하였다. 연희전문학교에서 만난 이여진은 동주가 꼭 만나고 싶어 하던 정지용 선생님과 가까웠다. 그래서 이여진은 윤동주를 정지용 시인에게 소개해 주었다.

정지용 : “차라리 일본으로 가게”

정지용 : “일본에도 좋은 선생이 많아”

윤동주 : “창씨개명을 하면서까지 유학을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윤동주 : “그렇게까지 해서 유학을 간다는 게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요.”

정지용 :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정지용 : “부끄러운 걸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거지”

이렇게 정지용은 진정으로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살면서 부끄러울 줄 아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문학의 힘

그 무렵 일제의 앞잡이가 연희전문학교 교장으로 부임했고, 조선 이름, 조선어 교육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었다. 결국 동주는 창씨개명계를 찢어버렸지만 일본 교토로 떠나게 되고 창씨개명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동주는 어디를 가나 그 총명함이 빛을 발하였고, 그 때문에 릿쿄대학의 다카마쓰 교수의 눈에 들게 된다. 다카마쓰 교수는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건 개개인의 깊은 내면의 변화들이 모이는 힘이다.” 라고 말하면서 동주에게 문학의 힘을 이야기해 주면서 용기를 준다.

 

소극적인 저항 vs. 적극적인 저항

동주가 교련 수업을 거부하자 일본군 교관은 일본 사상에 물들지 않아 그렇다고 한다. 이에 동주가 군사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고 하자 일본군 교관은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강제로 머리를 깎아 버린다. 이렇듯 당시 일본에 사는 조선인은 대동아공영권의 정신을 깨우치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다.

동주는 다카마쓰 교수를 통해 알게 된 쿠미의 도움을 받아 교토의 도시샤 대학으로 향했다. 편입했지만 사실상 도피였다. 한편 송몽규는 조선인 유학생을 모아 일본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외치고 있었다.

 

별 헤는 밤

형무소에서 정체 모를 주사를 맞고 심신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시선을 창밖으로 향하고 있고 그때 등장하는 시가 <별 헤는 밤> 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

별보다 가까이에 있지만 별처럼 헬 수 없는 엄마, 절절한 그리움이 배어 나오는 시이다. 감옥 안에 남아있는 동주와 달리 창문 밖으로 나가는 카메라, 밤하늘을 가득 채운 뒤 아래로 내려가는 화면 구성이 이채롭다. 그리고 나타나는 창틀 속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들이 묘사된다.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영화에서 일본 경찰에 발각된 후 몽규가 동주를 찾아온 장면이 있다. 몽규는 함께 떠나자는 말을 하지만 동주가 완곡히 거절할 때 나오는 시가 <자화상> 이다.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 갑니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3년 윤동주와 송몽규는 나란히 후쿠오카에 형무소에 투옥이 된다. 독립운동 이라는 거대한 죄목을 달고 있는 동주와 몽규는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었으며 정체 모를 주사와 고문에 시달리던 동주는 그로부터 얼마 못 가 사망하게 되었다. 형무소에서 정체 모를 주사를 매일 맞았다고 전해지는데 일본이 혈액 대체제를 만들고자 생체실험을 했다는 설이 있다.

영화 '동주' 한 장면  [사진 딜라이트]
영화 '동주' 한 장면 [사진 딜라이트]

향년 29세, 청춘의 죽음, 시인 윤동주는 29세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며 6개월 뒤 일본은 패망하고 조선은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쿠미는 동주의 시집 제목을 어떻게 읽는 지 물어 본다. 동주는 말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그 시절의 참회록 같은 영화 <동주>, 화려하지 않는 단정한 느낌의 흑백 영화로 제작된 이준익 감독, 강하늘 주연의 영화 <동주>

우리가 기억하는 학사모를 쓴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떠오르는 시인 윤동주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나의 자화상이고 우리 모두의 자화상은 아닐까.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시를 쓰는 동주의 모습을 통해 흑백논리가 아닌 흑백의 조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시대가 그대로 박제되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흑백으로 표현함으로써 암울한 시기를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흑백의 단순함이 주는 간결미,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인물 영화이다. 화면을 흑백으로 처리함으로써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고,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가 빛날 수 있었다.

 

대일항쟁의 뼈아픈 역사와 숭고한 우정

영화 밖의 내용으로 윤동주와 정병욱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 인연으로 윤동주의 시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절 윤동주의 절친한 후배가 바로 정병욱이다. 윤동주가 필사해서 만든 총 3권의 시집, 1권은 스승인 이양하 교수에게, 또 다른 1권은 정병욱에게 맡기게 된다. 정병욱은 징집될 것을 염려해 윤동주의 시집을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께 맡겼고 광복 이후 정병욱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자마자 시집부터 찾았다. 결국 그와 그의 어머니 덕택에 시인 윤동주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정병욱과 그의 어머니가 지켜낸 것이 시집만은 아니었다. 뜻은 있었으나 행동할 수 없었던 대다수 한국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지켜낸 것이며,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겪는 동시대인들을 대변하면서 결코 부끄럽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강렬하게 전해주는 시대정신이자 한국혼을 지켜낸 것이다. 시집의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인데, 원래 시집 제목으로 생각했던 것은 ‘병원’이었다고 한다. 당시 아픔과 고통이 많았던 시대인 만큼 치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남 광양에 있는 정병욱 교수의 생가는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문화재 제341호에 올라 대일항쟁기의 뼈아픈 역사와 두 사람의 숭고한 우정을 기리고 있다.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詩, <서시>

윤동주의 <서시>에서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라는 구절이 있다. 우주 삼라만상의 현상을 다 아우르다 보면 눈에 보이는 생명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그 형태만 변할 뿐 사라지지 않는 것, 이것은 한민족의 삼대 경전인 <천부경>에도 나온다. 하늘에 부합되는 삶,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었고, 별을 노래하며, 모든 생명이 갖고 있는 변함없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로 인해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은 법칙 이전의 법칙으로 자유롭고도 거침없는 우리 한민족의 삶이었고, 그들의 삶의 발자취가 역사 속에 온전하게 남아있었다. 이렇게 심오한 윤동주의 <서시>는 이 땅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동주의 죽음과 함께 흐르는 <서시>, 시집에서는 첫 번째 나오는 서문과 같은 시이지만 영화에서는 그의 죽음과 함께 마지막을 장식한다. 즉 그의 시집에서는 도입부와 같은 시이지만 영화와 인생에서는 맺음말과 같은 시이다. <동주>, 빛나는 미완의 청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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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2022-08-18 16:57:52
윤동주 시인의 심정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우리 언어를 지켜내심으로써 우리나라의 독립을 만들어 내셨음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