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2016).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아마존 물류센터를 촬영한 이 작품은 선반에 빼곡히 들어찬 상품들을 모두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과 압도적인 크기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소된 시지각의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각각의 선반을 따로 찍은 후 디지털로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렇게 드러난 이미지는 소비 지상주의의 핵심과 세계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자본주의의 폐해를 드러낸다. [사진 김경아 기자]
아마존(2016).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아마존 물류센터를 촬영한 이 작품은 선반에 빼곡히 들어찬 상품들을 모두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과 압도적인 크기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와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소된 시지각의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각각의 선반을 따로 찍은 후 디지털로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렇게 드러난 이미지는 소비 지상주의의 핵심과 세계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자본주의의 폐해를 드러낸다. [사진 김경아 기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지난 3월부터 개최한 현대미술 기획전 《안드레아스 거스키》이 오는 8월 14일 종료된다. 독일 태생의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는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여온 현대사진의 거장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첫번째 사진전이다. 방학을 맞은 자녀와 함께 현대미술을 감상할 기회이다. 

전시를 보면 우선 작품의 압도적인 크기에 놀라게 된다. 현대 문명의 특징인 거대함을 그에 걸맞는 사진 크기로 구현하여 우리가 얼마나 거대한 세계에 사는지 알려주는 듯하다. 엉첨나게 큰 건물 속에 개미같은 인간이라니!

이번 전시에 1980년대 중반의 초기작부터 코로나 시대에 제작된 2021년 신작까지, 40여 점이 출품되어 거스키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파리, 몽파르나스>, <99센트>와 같은 대표작을 비롯하여 신작 <스트레이프>, <얼음 위를 걷는 사람> 두 점이 전 세계에 최초로 공개됐다. 여섯 개의 전시실은 ‘조작된 이미지’, ‘미술사 참조’, ‘숭고한 열망’이라는 큰 주제들로 구성되어, 다양한 사진적 실험과 주제를 변주해 온 거스키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보여준다.

독일 태생의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는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여온 현대사진의 거장이다. [사진 김경아 기자]
독일 태생의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는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여온 현대사진의 거장이다. [사진 김경아 기자]

 먼저 '조작된 이미지'에 주목해보자. 여기서 조작된 이미지는 사진으로 구현한 작품에 인위적인 노력을 더하여 작가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의미이다. 거스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이미지의 조작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거스키는 1992년부터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스캔하여 편집하는 디지털 포스트프로덕션 과정을 도입하였다. 여러 개의 이미지를 이어 붙이거나 평면적 구성을 만들고, 대상을 강조하기 위해 색상을 조정하는 등 다양한 이미지 조작을 통해 그 특징을 극대화함으로써 기념비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의 이미지 편집이 용이해짐에 따라 현대사진은 재현의 기능을 넘어 무한한 예술적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현대미술로서 사진을 다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식 공장, 증권거래소, 고층 건물 등을 촬영한 거스키의 사진에서 만들고, 대상을 강조하기 위해 색상을 조정하는 등, 무한히 반복되는 건축적 구조는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다양한 이미지 조작을 통해 그 특징을 극대화함으로써 막대한 권력을 상징하며, 이를 마주한 관객은 작지만 뚜렷하게 보이는 인간의 모습에서 숭고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이와 같은 거대한 자연과 건축, 공간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문명을 예술로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내며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 1980년대 중반의 초기작부터 코로나 시대에 제작된 2021년 신작까지, 40여 점이 출품되어 거스키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망할 수 있다.  [사진 김경아 기자]
이번 전시에 1980년대 중반의 초기작부터 코로나 시대에 제작된 2021년 신작까지, 40여 점이 출품되어 거스키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망할 수 있다. [사진 김경아 기자]

 거스키의 대표작이자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파리, 몽파르나스>(1993), <99센트>(1999, 리마스터 2009), <라인강 III>(2018) 등을 포함한 작품 대부분은 컴퓨터를 이용한 이미지 조작을 통해 완성되었다.

거스키 작품의 특징 가운데 미술사를 써내려 온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언급을 빼놓을 수 없다. 1955년에 태어난 작가는 전후의 폭발적인 현대미술 운동들을 목도하며 성장했다. 그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잭슨 폴록이나 바넷 뉴먼의 추상미술 등 당대의 다양한 경향들을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사진을 현대미술에 본격적으로 진입시켰다.

작가는 <크루즈>(2020)에서 리히터의 컬러차트와 솔르윗의 조각적 특성을, <무제 , III>(1993, 1996)에서는 폴록의 '올 오버' 회화와 유사한 구성을 선보인다. 한편 <회상>(2015)에서는 뉴먼의 회화를, <정치학II>(2020)에서는 에드 루샤의 작품을 직접적으로 참조한다.

평양VI (2017(200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2007년 작가가 직접 평양에 방문하여 촬영한 '평양' 연작은 북한에서 규모가 가장 큰 행사인 아리랑 축제에서 진행된 매스게임의 장면을 보여준다. [사진 김경아 기자]
평양VI (2017(200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2007년 작가가 직접 평양에 방문하여 촬영한 '평양' 연작은 북한에서 규모가 가장 큰 행사인 아리랑 축제에서 진행된 매스게임의 장면을 보여준다. [사진 김경아 기자]

 또한  2007년 작가가 직접 평양에 방문하여 촬영한 '평양' 연작은 북한에서 규모가 가장 큰 행사인 아리랑 축제에서 진행된 매스게임의 장면을 보여준다. 작가는 선전구호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상징은 최대한 배제하고, 십 만명이 넘는 공연자가 이루어내는 시각적 장관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북한의 집단성과 특수성에 집중한다. 

이처럼 거스키는 사진과 미술의 경계 허물기를 통해 기존에 정형화된 사진의 틀을 벗어나 우리 삶의 실체를 드러내는 예술로서의 사진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거스키는 사진과 미술의 경계 허물기를 통해 기존에 정형화된 사진의 틀을 벗어나 우리 삶의 실체를 드러내는 예술로서의 사진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사진 김경아 기자]
거스키는 사진과 미술의 경계 허물기를 통해 기존에 정형화된 사진의 틀을 벗어나 우리 삶의 실체를 드러내는 예술로서의 사진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사진 김경아 기자]

작가의 예술세계 전반을 재조명하는 이번 대규모 회고전은 그의 작품세계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다. 이번 전시가 현대미술에서 사진 장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한국 예술계에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8월 14일까지 미술관 1~7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