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희 지음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미디어창비, 2022)는 저자가 파리 건축가에서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나중에는 디자인 브랜드 론칭하면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날 것’의 나로 살아가게” 되기까지 도전한 삶의 기록이다.

저자 한주희 씨는 2006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말라케 국립건축학교 건축석사 졸업과 동시에 데소 건축사무소에 입사하고 후에 건축 분야의 거장이 설립 회사로 옮겨 건축가로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36세의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스스로 박차고 나왔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 대신 결정 내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결정의 무게를 느끼고 다음번에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직장인으로서 그는 남이 내린 결정을 수용하는 일 외에 결정적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책임감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점점 수동적으로 변했고, 그냥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고 어느새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그렇게 되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주희 지음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앞 표지. [사진 미디어창비]
한주희 지음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앞 표지. [사진 미디어창비]

 저자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한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적어도 모험을 해 봤으니 실패의 쓴맛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니, 이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저자의 변화는 옷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옷을 직접 제작하면서 의상을 소재로 말할 기회가 자주 생긴 것이다. 어디를 가든 옷에 관해 물어보는 사람은 늘 존재했고 저자는 그 질문에 즐겁게 대답할 수 있었다. 어느새 더는 프랑스어로 말하는 상황이 두렵지 않게 되었고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계속 이야깃거리가 쏟아져 일부러 멈춰야 했다. 그제서야 저자는 자신의 프랑스어가 빨리 늘지 않았던 이유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서, 말하는 것에 별 흥미를 못 느껴서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학교와 집, 회사와 집만을 왔다 갔다 했던 단조로운 일상, 한정된 관심사, 취향의 부재. 나는 나를 표현할 만한 게 너무 얇은 사람이었다.”

프랑스에 산 지 9년 정도 되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프랑스어로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저자의 내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정체성을 재정립하면서 취향이 늘어갔고 바닥이었던 자존감도 높아져 무엇을 해도 여유 있게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프랑스어 말하기를 두려워했던 예전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단순히 단어를 모르거나 문법 실수를 할까 봐 대화를 어려워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없던 ‘나’를 드러내는 게 불편했던 것이다.”

이런 변화를 겪은 저자는 프랑스어를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프랑스어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라고 말할 것이다. 언어는 단지 듣고 말하고 쓰는 도구가 아니었다. 프랑스어를 처음 배웠던 때를 시작으로 회피와 혼란으로 가득했던 시기, 그리고 안정적으로 프랑스어를 말하게 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언어는 내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는지 알게 해준 매개체였다.”

프랑스에서 사는 동안 저자는 질문을 많이 던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자신에 대한 간단한 질문조차 던지지 않고 살았던 자신의 삶에 더는 ‘그냥’이나 ‘남들처럼’이라는 모호한 표현은 없다. 이제는 무심코 지켰던 관습이나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유행에 현재의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으려고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런 고민이 쌓일수록 생각이나 관점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에 당황하지 않고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닥쳐도 좀 더 여유를 갖고 대처하게 되었다.

한주희 지음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앞 표지. [사진 미디어창비]
한주희 지음 "재밌어서 만들다 보니" 앞 표지. [사진 미디어창비]

저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다른 사람의 시선이었다. 2016년 6월 저자는 처음으로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외출을 함으로써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니 남이 ‘예스(Yes)’라고 해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 좋다.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눈치보며 예스인 척 노력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래서 저자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사는 건 때로 외롭기도 하지만 그만큼 편안한 일도 없다. ‘날 것’의 나로 사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 가장 나다운 삶을 사는 순간이다.”라고 말한다.

그냥 남들처럼 하다 보면 나만의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다. 저자는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하면 경쟁 구도에 갇히고 만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경쟁은 끝이 없어서 만족하기도 쉽지 않다. 비교를 시작하면 항상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되고, 결국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늘 부족한 느낌이 따라붙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만의 가치는 찾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다른 나만의 가치를 갖고 있다면 어딘가에는 필요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게 과연 무엇일지는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했다. 정체성과 취향, 가치관까지 자신을 나타내는 다양한 요소를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정의 내려갔다. 여전히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만 더는 휘둘리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겼다.

“무언가를 만들 때 정해진 방식을 따르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정의 내리고 좋아하는 방식대로 일단 시도해본다면 좋은 결과는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해간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 볼 필요가 있을까. 나만의 가치관에서 나온 생각은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고 결과물 또한 색다를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관점이 없다면 이질적인 것은 쉽게 낯선 존재로 간주되어 버리니까. 나의 관점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게 아니라고 인정하는 힘은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매순간 느끼는 중이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생활은 저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기간이었다.

“누군가 내게 외국에서의 삶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으로 가득 찼었다고 말할 것이다. 무엇 하나 쉽게 얻을 수 없었고 우연히 갖게 되는 것도 없었다.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되는 것도 없었다.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나 자신부터 이해해야만 했다.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흔들리고 깨져봐야만 했다. 어느 누구도 대신 알려줄 수 없는 인생. 직접 확인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의 답은 스스로 부딪히면서 찾아갈 수밖에.”

저자는 2019년 귀국하여 디자인 브랜드 '디렉(DERECC)'을 론칭해 지갑 등 다양한 물건을 만들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창작자이자 사용자로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 책은 앞만 보며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빈 의자를 내민다. 자리에 앉아 자신을 돌아보라고. 화두는 이렇다.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