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 "저만치 혼자서"  [사진 정유철 기자]
김훈 소설 "저만치 혼자서" [사진 정유철 기자]

 “나는 그 고시텔에서 영자와 일 년 동거했다. 그때 나는 9급 지방행정직 시험에 재수하고 있었고, 영자는 9급 지방 보건직 시험에 재수하고 있었다. 나는 작년에 합격해서 경상북도 내륙 산골 마장면 면사무소로 내려왔고, 영자는 또 떨어졌다. 영자가 지금 노량진에서 삼수하고 있는지, 노량진을 떠났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김훈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문학동네, 2022) 가운데 <영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영자>는 공무원인 ‘나’라는 주인공이 노량진 고시텔에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던 시절 동거한 ‘영자’를 회상하며 시험 준비하던 당시와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지방에서 올라와 9급 시험 준비를 하는 이들, 노량진 말로 ‘구준생’들은 절약하기 위해 생판 모르는 남녀라도 동거를 했다. ‘내’가 공부하는 시간에도 ‘영자’는 알바를 했다. 나는 붙고 영자는 또 떨어져서 동거는 끝났다.

면사무소 총무계 서기보로 효도관광을 동행하여 영자의 고향 읍내를 지날 때 ‘나’는 창밖을 보았다. 영자 엄마가 순댓국집을 한다던 차부 옆 건물은 헐렸고 그 자리에 소핑몰이 들어서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영자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지금 거신 전화는 고객의 요청에 의해 당분간 착신이 정지되어 있습니다.”  ‘영자’는 어디에 갔을까?

김훈은 책 뒤편에 ‘군말’을 두어 각 소설을 쓴 배경을 소개했다. <영자>는 노량진 9급 학원 동네의 젊은이들 관찰하면서 쓴 글이라 했다.

“이 세상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나는 이 동네에서 보았다. 삼수 끝에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낮에는 오토바이로 배달 노동하고 밤에는 학원에 다니면서 9급을 준비하는 이도 있는 한편 가수가 되려고 노래를 연습하는 젊은이도 있었다.”

김훈이 본 ‘영자’의 모습이다. 본 모습이 더 있다.

“제도가 사람을 가두고 조롱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에서 보았다.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기 착취로 바꾸어버리는 거대한 힘이 작동되고 있었다.
날이 저물면 구준생 남녀들이 사육신 묘지에 와서 키스했다.”

김훈의 《저만치 혼자서》는 《강산무진》이후 16년만에 나온 두 번째 소설집이다. 앞에 소개한 <영자> 외에 <명태와 고래> <손> <저녁 내기 장기> <48GOP>, <저만치 혼자서> 6편이 실려 있다.

<명태와 고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펴낸 ‘종합보고서를 읽은 후 두려움과 절망감 속에서 썼다고 김훈은 적었다. 남쪽과 북쪽의 폭력에 의해 번갈아 짓밟히고 제 땅에서 추방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쓰려고 했다.

<48GOP>는 십 년쯤 전에 언론사 취재팀과 함께 전방 군부대를 취재 여행하면서 느낀 것들을 소설로 쓴 것이다. <대장 내시경 검사>는 병원이나 빈소에서 들은 이야기의 파편들을 엮을 글이란다. 늙어 혼자인 주인공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 보호자 노릇을 해줄 이를 찾으며 고민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저만치 혼자서>는 2012년 10월 23일 작고한 천주교 사제 양종인 치릴로 신부의 생애를 생각하면 쓴 글이라고 한다. “나는 양 신부가 꿈꾸었던 죽음 저편의 신생에 대해서는 쓰지 못했고 죽음의 문턱 앞에 모여서 서로 기대면서 두려워하고 또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겨우 썼다. 모자라는 글이지만 나는 이 글을 쓸 때 편안했고, 가엾은 존재들 속에 살아 있는 생명의 힘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녁 내기 장기>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의 장기판을 기웃거리면서 보고 듣고 겪은 것들에 이야기를 입힌 글이다. 장기판에서 작가는 무엇을 느꼈을까?

“호수공원 장기판에서 나는 해체되는 삶의 아픔을 느꼈다. 저마다의 고통을 제가끔 갈무리하고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앉아서 장기를 두는 노년을 쓸쓸하다. 삶을 해체하는 작용이 삶 속에 내재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서 보았다.”

<손>은 의무소방대원 오영환 소방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느낌에 의지해 쓴 글이다. 2008년 오영환 소방사는 부산 해운대 수상구조대에 근무할 때 8월 중순 파도에 휩쓸린 여자아이를 구조했다.

《저만치 혼자서》에 실린 7편 모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김훈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이웃을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