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563호(2022. 7. 5)(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미스터리 출판 프로파일링’이라는 주제로 한국 미스터리 출판을 점검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최전성기를 맞이했던 한국 미스터리 출판은 이후 침체되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 상황이 호전되는 것처럼 보인다. SF 장르소설이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창작 미스터리 소설의 출간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미스터리 앤솔러지가 출간되고, 영상화 판권 계약이나 해외 판권 수출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다.

이러한 현상을 《계간 미스터리》 한이 편집장은 “한국 미스터리 출판의 흐름”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팬데믹 이후 넷플릭스와 같은 OTT 시장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그 증거로 한이 편집장은 교보문고의 ‘2021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30’ 목록에 미스터리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은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은행나무)가 유일하다는 점을 들었다. 엄청난 판매를 자랑하는 히가시노 게이코의 미스터리 작품 역시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기획회의 563호 표지. [이미지 제공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기획회의 563호 표지. [이미지 제공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그런데도 출판사들이 미스터리 소설 출간에 적극적인 이유는 초판조차 판매하지 못한다 해도 영상화 판권을 계약하면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으리란 계산이 있기 때문으로 한이 편집장은 설명했다. 이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 출판사와 작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이 편집장은 “독자가 원하는 것은 읽을 만한 미스터리,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작품’일 것이다”며 “양심적인 출판사와 작가가 미스터리 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를 극대화한 작품을 위해 함께 노력할 때, 떠나갔던 독자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한국 미스터리 출판은 다시 한 번 진정한 전성기를 맞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출판사와 작가가 현재의 과열된 영상화 시장의 착시 현상에 혹해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 숱한 태작을 양산한다면 1970년대, 1980년대의 황금기를 날려버리고 긴 암흑기를 가져온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라고 한이 편집장은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라이너 영화 칼럼니스트 겸 라이너 스튜디오 대표는 “장르소설을 향한 시대의 요구에, 미스터리는 답할 수 있는가”라는 글에서 “마침내 시대가 미스터리 소설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창작 미스터리가 필요한 시대다”며 “한국의 미스터리 소설은 이러한 요구에 답할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라이너 대표는 “영화계는 애타게 각본이 될만한 이야기를 찾아 헤매고, 웹툰은 이미 무협, 판타지 소설을 웹툰으로 제작하는 전문 업체들의 싸움판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야기를 가공해서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어 유통하는 건 자본의 역할이고 목적이다. 그리고 자본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재료가 될 이야기다. 그리고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예술의 장르가 소설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고 미스터리 소설의 수요가 증가하는 이유를 들었다.

주자덕 일본소설 번역가(출판사 대표 겸 편집자)는 “일본 미스터리의 왕도,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글에서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 꾸준히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기를 이어온 100년의 역사 동안 다양한 작가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역시 독자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2022년 현재도 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처럼 한국 소설들도 필요한 것은 독자의 관심이다”고 말했다. 일본 출판시장처럼 수상을 하고 주목을 받으면 인기 작가로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자덕 번역가는 “글을 통해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미스터리 소설의 본질과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소비를 늘리는 것이 서점과 출판계는 물론이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에 힘을 보내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푹 빠져있는 독자들이 작가로 데뷔하여 활동하고 있다.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을 수상한 《밤의 여행자들》(민음사)같은 작품이 하나씩 롤모델을 만들고 있다”며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이 오랫동안 꾸준히 인기를 이어온 것처럼 한국 미스터리 소설 역시 꾸준히 이어간다면, 또 다른 세계적 작품이 나오는 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혜진 남서울대 교양학부 부교수는 “호기심과 자부심 혹은 숨겨진 욕망의 결정체, 추리소설”에서 한국 추리소설의 꽃, 역사추리소설을 살폈다.

오 교수는 “2000년대 들어 쏟아진 역사추리소설은 변방에 머물렀던 우리 추리소설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올려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의 매력을 발산했다”고 말했다.

역사추리소설이 정조와 세종을 즐겨 호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오 교수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고 인간적인 고뇌까지 더해진 왕들의 시대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모범이 될 지도자상을 각인시킨다”며 “더불어 문화·예술 분야도 찬란하게 흥성했던 이 시절에 대한 자부심도 한몫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영광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하며 앞으로 더 나아갈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보는 민족주의적 열망이 이 역사추리소설 속에 눅진히 깔려 있는 셈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의 팽창된 제국주의가 추리소설을 낳았듯이 결국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추리소설에는 지금 이 시대 대중들의 염원과 희망이 도사리고 있고, 그것이 그 역할의 하나임을 드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오 교수는 역사추리소설이 주는 인문학적 지식들도 구미를 끌어당기는 필수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람의 화원》을 예로 들어 “조선시대의 일상과 궁려, 화원, 세책가, 매설가 등 특수한 직업이나 삶에 대한 묘사와 장치들은 우리 조상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인문학적 지식을 채워주기에 충만하다”면서 “책읽기의 즐거움과 지적 유희를 채워주는 인포테인먼트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고 말했다.

이융희 텍스트릿 팀장은 “웹소설 시장 속 추미스의 자리”에서 ‘추미스’(추리·미스테리·스릴러)의 웹소설화 가능성을 검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