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 어워드 수상 작가 연여름의 첫 번째 단편 소설집 《리시안셔스》(황금가지, 2022)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수상작 ‘리시안셔스’, 수상 후보작인 ‘시금치 소테’를 포함하여, ‘가빙 라이트’, ‘좀비 보호 구역’ , ‘비아 패스파인더’ 등 서정적이면서도 발랄한 매력이 돋보이는 총 9편의 단편 소설을 수록하였다.

한국 SF 어워드 수상 작가 연여름의 첫 번째 단편 소설집 "리시안셔스" 표지. [사진=황금가지 제공]
한국 SF 어워드 수상 작가 연여름의 첫 번째 단편 소설집 "리시안셔스" 표지. [사진=황금가지 제공]

수록작들은 21세기, 변두리에 서 있는 다양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표제작 ‘리시안셔스’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던 ‘진’이 같은 사람인 ‘규희’에 의해 반려로서 입양되는 이야기다. 대오염이 일어난 이후, 황폐해진 지구에서 사람은 몸을 인공 신체로 교체할 수 있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미등록’으로 나뉜다. 미등록들은 짧은 삶 동안 내내 병을 앓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삶에 지친 ‘진’은 스스로의 생명을 종료하기로 결심하다가, ‘규희’라는 인간으로부터 구원받는다. 반려인으로 선택된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삶, ‘진’에게 미등록 시절 알던 지인인 ‘A11’이 등장하면서 이 평화는 깨진다.

작가는 인간과 반려동물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를 사람이 사람을 기르는 세계에 빗대어 동물권의 문제를 다룬다. 해당 작품은 480여 개에 이르는 후보 중 단연 세 손가락 안에 꼽히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으며 구한나리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SF만이 가능한 현실 비판의 예시 같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시금치 소테’는 자살 생존자 미하 이야기다. 병원에서 갓 퇴원한 미하에게 보호사 정인이 배정된다. 아이를 잃고 수차례 자해와 자살 시도를 반복하던 미하는 부정적 기억의 연결고리를 끊는 '옵션'이라는 치료를 권유받는다. 그즈음 자살생존자로 분류된 미하에게 보호사 정인이 찾아온다. 예순 남짓의 정인 역시 과거에 자식을 잃고 자살 시도를 했던 경험이 있고, '옵션'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에 미하는 조금씩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어낸다. 2019 SF 어워드 수상 후보작이다.

‘비아 패스파인더’는 장애인과 이민자의 인권 문제를, ‘면도’는 존엄사와 입양 문제를 다룬다. ‘오프 더 레코드’는 성 소수자 문제 등을 다루며 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연여름 작가는 성별 중립 대명사를 사용하고, ‘장애’ 대신 ‘장해’, ‘부모’ 대신 ‘보호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등 소설 속의 어휘에서도 소외된 약자들을 배제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SNS에서의 특수한 인간관계를 다룬 생활감 넘치는 작품들이 수록된 것도 특징이다. ‘표백’에서는 SNS에서 ‘저격’을 듣고 그 보복으로 사이버불링에 가담한 인물이 등장한다.

‘가빙 라이트’는 웹소설 작가와 그 팬의 ‘오프라인 만남’ 이야기를 통해 SNS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나아가서 ‘좀비 보호 구역’에서는 인터넷 언론의 인터뷰에 응해 사이버불링을 당한 주인공을, 오히려 팬 커뮤니티에서 만난 ‘오타쿠’ 지인이 응원을 하는 다각적인 모습을 묘사하며 21세기의 인간관계의 감수성을 포착한다.

작가 연여름은 ‘리시안셔스’로 2021 SF어워드 중단편 우수상, ‘복도에서 기다릴 테니까’로 제8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