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영화에서 저널리즘까지, 독자적인 행보로 새로운 비평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강유정 평론가가 새 비평집 《시네마토피아》(민음사, 2021)를 출간했다.

이는 2014년부터 연재하는 《경향신문》 칼럼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의 글을 한 권에 모은 책으로, 영화 비평집인 동시에 사회 비평집이다.

강유정 평론가는 《시네마토피아》 서두에서 “문학과 영화, 저널리즘 비평은 모두 콘텐츠와 대중 사이에 형성된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무의식을 읽고 필요한 담론을 포착해 보여주는 일”이라고 세 영역의 접점을 분명히 짚는다. 이렇듯 《시네마토피아》는 비평의 관점에 서서, 문학과 영화 그리고 저널리즘이라는 영역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한국 사회의 현재를 다각도로 바라본다. 영화를 경유해 얽히고설킨 현실 정치와 언론의 부조리를 조망하고 세대, 젠더, 경제적 격차처럼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체감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 다음 영화와 인문학을 오가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간성과 공동체 감각을 이야기한다.

강유정 지음, "시네마토피아". [사진=민음사]
강유정 지음, "시네마토피아". [사진=민음사]

 

“문학을 읽는 일과 저널리즘을 읽는 일 그리고 영화를 읽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만들어 낸 이야기이기에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을 글과 언어, 이미지로 전달하는 일이기에. 인문학이란 특정 철학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세상의 서사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틀, 메타 서사를 배우는 일이다. 이 책이 정치·사회적 문제에서 시작해, 사람에 대한 가장 깊은 이야기인 인문학으로 마무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문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고급하고 신뢰할 만한 주석이다.”

《시네마토피아》 1부 ‘사회의 거울’에서는 저널리즘, 현실 정치, 세월호를 다룬다.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사건을 대하는 언론과 정치의 민낯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왜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추적해가는 작품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최승호 감독의 <자백> 등을 다룬 내용에서 우리 언론은 그로부터 얼마나 나아졌을까, 묻게 된다. 검찰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기소했을 때, 또 사법부가 이 세력에 동조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선명히 보여주는 <트라이얼>에서는 우리의 현실이 겹쳐보인다.

이 책의 2부 ‘사람의 자리’에서는 그동안 언론에서 갈등으로만 다뤄질 뿐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현재적이면서도 오래 묵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아이, 청춘 그리고 노년’에서는 아이, 청년, 노년, 여성, 그리고 경제적 격차를 둘러싼 문제를 다룬 영화를 소개한다. 왕따당하는 아이들, 무차별적인 생존학습에 시달리는 아이들, 버림받는 아이들, 실종되는 아이들, 가족내 아동학대, 영화속의 아이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이다.

강유정 지음, "시네마토피아". [사진=민음사]
강유정 지음, "시네마토피아". [사진=민음사]

 “19세기 유럽 문학 속 아동 학대가 고아들에 대한 사회적 육아의 문제를 공론화했다면 우리는 지금 가족 내에서 아동의 자리와 학대 문제를 사회적으로 고민해야만 한다.”

강유정 평론가는 ‘노년’을 다룬 영화는 상상된 노년을 그린다고 비판한다. 현실이라기보다는 상상, 영화 속 노인들은 상상의 공동체 속 인물들이다. 영화 속에서 노년은 투명하고 완만하게 묘사된다. 현실의 노년은 어떤가?

“감춰 두었던 근원적 균열과 두려움, 즉 우리는 언젠가 죽게 되리라는 것, 변형되고 소명되리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시기, 그때가 바로 노년기다. 부정성을 없앤 투명하고 밝은 노년기는 매력적인 상품이다. 하지만 상상적 허구는 달콤한 환상에 불과하다. 부정성과 투명성이 함께하는 노년, 두렵지만 우리는 두 가지 모두를 보아야 한다.”

최근 몇 년간 가장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 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들을 안고 있는 여성에 대한 글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여성을 피해자로 삼아 완성되는 남성의 성장 서사를 비판하고,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추행을 ‘연애’로 그렸던 지난 한국 영화들을 다시 짚으며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 <캡틴 마블>처럼 새로운 여성 영웅의 등장을 반가워하면서도, 여성 서사가 여전히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자기 동일성’의 서사보다 자신의 이름과 힘을 새로이 발견하는 ‘자기 정체성 발견’의 서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짚는다. 우리에게 아직도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시네마토피아》 3부 ‘영화의 태도’에서는 우리 삶의 여러 국면을 보여주는 영화를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이야기한다. 이를 테면 영화 <동주>에서는 부끄러움을 배운다. <사울의 아들>에서는 연민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같은 종으로서 인간의 형편에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그 타인과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아직 인간인가를 확인하고 싶다면 자신 외에 무엇을 연민하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연민함으로써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라라랜드>에서는 인간다운 최소함의 삶을 이야기한다. “포기할 수 없는 것, 말하자면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을 외면당할 때,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참극이 된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하지 않도록 존중되는 삶, 그게 바로 포기가 낭만이 될 수 있는 조건이다. 복지란 그 최소 가치의 울타리가 아닐까? 적어도 꿈은 존엄한 인간이 누려 마땅한 가치이니 말이다.” 복지라고 하면 돈부터 따지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강유정 평론가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볼까.

“좋은 영화란 지독한 세계를 묘사하면서도 그 속에 살아 있는 인간 존재를 위한 가능성에 빛을 거두지 않는 영화다. 좋은 판타지란 이런 것이다. 어두운 세상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그 따뜻한 맹목 말이다.”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올 수 있게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이야기의 힘을 강조한다. “대중 영화가 가족을 추구하거나 파편화된 이미지를 추구하거나 그 외의 어떤 징후들을 보인다 해도 그 속엔 나름의 현실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 현실성은 결국 볼거리가 아닌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발견된 개별성에서 나올 것이다. 뻔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뻔한 문제를 뻔하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기술보다 이야기의 힘을 찾아야 하는 우리 영화도 잊지 말아야 할 문제다.”

리메이크 할리우드 영화를 거론하며 그는 원작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발상이다. 영화관에 걸린 영화들이 어떤 작품의 리메이크, 리부트, 프리퀄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 낸 원작이 더 많을 때, 그 미래가 밝을 것이다. 지금은 다시 발상의 전환과 도약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한국 영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강유정 평론가는 “‘봉준호 너머’ 새로운 봉준호를 기다리며”에 정리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봉준호’가 될 만한 수많은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지키는 일이다”고 강조한다. 봉준호 감독이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흥행에 참패하고도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을 다시 찍을 수 있었던 것은 2000년대 한국 영화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게 가능할까?

그래서 강유정 평론가는 “이젠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한국 영화 산업의 공과를 돌아볼 시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2020년에 쓴 내용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평론가는 영화를 통해 드러난 세상을 《시네마토피아》에서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 세상은 영화를 통해 제 본모습을 드러내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몰랐던 세상을 《시네마토피아》에서 본다는 그게 세상의 본모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