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화랑도는 인접 국가들과 국운을 건 군사적 대치, 불교 등 외래종교와 사상의 유입 등에 따른 사회 안정과 통합이라는 당시 신라의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도록 기존의 촌락 또는 부족 단위별 청소년 조직을 국가 차원에서 창의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15~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수련 조직인 신라의 화랑도가 지향한 이념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것이 세속오계(世俗五戒)이다.

김광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김광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광법사가 수(隋) 나라에서 돌아오자 귀산(貴山)과 추항(箒項) 두 명의 화랑이 원광을 찾는다. 그들이 원광에게 "평생의 경계가 될 한 마디 말씀을 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였다. 이에 원광이 “불교에는 보살계 10계가 있으나 너희에게 맞지 않고, 지금 세속에는 5계가 있다. 첫째는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는 일이요(事君以忠), 둘째, 효로 부모를 섬기는 일이요(事親以孝), 셋째는 신의로 벗을 사귀는 일이요(交友有信), 넷째는 싸움에 임하여 물러서지 않는 일이요(臨戰無退), 다섯째는 생물을 가려서 죽이는 일이니(殺生有擇), 너희들은 이 일을 실행하는 데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답해 주었다.

화랑 세속오계의 골자는 최치원이 ‘난랑비서’에서 충과 효, 그리고 자비 등을 골고루 함유한 우리 고유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언급한 내용과 사실상 일치한다. 이러한 점에서 화랑도가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져 내려 온 풍류도(국학)와 맥을 같이 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민족 고유의 중심철학인 풍류도가 유불선 삼교를 넉넉히 포용해 낼 수 있었듯이, 풍류도의 창진적 발현인 화랑도 또한 당시 신라 사회에 들어온 불교 등 외래종교와 여타 사상을 창의적으로 수용하여 융합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정 가능하다.

화랑도의 세속오계가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사실은 ‘태백일사’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태백일사’는 홍익인간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단군조선의 사람들이 늘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덕목으로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의 오상(五常)을 언급하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네 번째에서 용(勇)을 지칭하는 점이다. 이는 유교는 물론 불교에도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덕목이다. 예로서 유교의 오상은 인・의・예・지・신으로, 용(勇)은 결여되어 있다.

단군조선 시대에서부터 우리 민족은 "모름지기 '문약하지 말고 강맹분발(强猛奮發)하라. 그것이 홍익의 실(實)을 거두는 것이다" 라고 용(勇)이라는 덕목의 함양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전통이 단군조선의 후계 국가인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신라에 이어졌다. 이들 후계 국가에서 문무를 골고루 연마하였다는 사실은 중국의 사서 ‘구당서(舊唐書)’ 등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단군조선의 후계국가 가운데 하나로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는 신라의 화랑 세속오계도 네 번째 덕목으로 임전무퇴(臨戰無退)를 포함하였는바. 이는 단군시대에 숭상되던 오상의 네 번째 항목인 용(勇)과 동일한 것이다. 한편 화랑도의 세속오계는 다섯 번째 덕목으로 살생유택(殺生有擇)을 포함하였는바, 이는 당시 빈번했던 전쟁에서 불가피 살생을 하게 되더라도 꼭 필요한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단군조선 시대 오상의 다섯 번째 항목인 인(仁)과 사실상 같다. 즉 단군조선 시대의 오상, 그리고 신라의 화랑도 세속오계는 〔충・효・신・용(임전무퇴)・인(살생유택)〕이라는 동일성을 유지한다.

신라 화랑은 도의를 상호 연마하며, 가악(歌樂)으로 감성을 개발하고,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자연과의 조화와 교감을 즐기는 등 3년에 걸친 심신 수행을 통하여 세속오계의 덕을 함양하였다.

요컨대, 조화의 질서, 혹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 자신의 목숨도 초개와 같이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용(勇) 혹은 임전무퇴의 기상과 기백은 단군조선 이래 우리 민족의 삶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덕목이었다. 이러한 기풍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사 전반을 통하여 구국을 위한 각종 의병활동 및 의거, 국난 타개를 위한 국채보상운동과 금모으기, 국가적 위기에 청년의 자원입대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어 왔다. 이와 견줄 만한 사례를 다른 민족의 경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상과 화랑도의 정신적 토대인 홍익인간사상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우주의 근본원리를 공유한다. 이 중에서 사람은 우주의 근본원리를 온전히 소유한 존재라는 점에서 조화의 주체로서의 지위, 곧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조화로운 발전과 관련하여 특별하고 막중한 도덕적 책임을 지닌다. 책임 있는 조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 사람은 먼저 수행을 통해 우주의 근본 원리를 온전히 보유한 존재로서의 본모습을 찾아야 한다. 이때 수행은 심신 양 측면에 걸쳐 이뤄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충・효・신・용・인의 다섯 가지 덕목들을 내면화하게 된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고 다섯 가지 덕목을 내면화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조화로운 발전에 큰 관심을 갖고, 필요한 경우, 곧 위기가 도래하면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헌신함은 물론, 더 나아가 이 세상을 공동체적 차원에서 인식하면서 모든 생명이 존중되는 평화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와 같은 홍익인간의 이상을 무의식 속에 내재하고 있는 한민족이, 그리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이 달성할 다음 단계의 과제는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실현해 내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안보적 사건은 국제정치 지형의 대대적 변혁으로 이어지곤 하였으며, 현재 전개되는 상황 또한 그러한 가능성을 안고 있다. 수차례에 걸친 동아시아 격변의 시대에 한민족이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위치와 소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 동아시아의 번영과 평화가 꽃피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홍익인간의 이상과 임전무퇴의 결기로 우리가 직면한 엄중한 안보 현실을 기필코 타개하고 평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