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단군릉, 홍익인간
북한의 단군릉, 홍익인간
  • 김광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 k-spirit@nave.com
  • 승인 2018-05-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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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광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한동안 한반도를 짓누르던 음습한 전쟁의 그림자가 걷히고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모든 국학인과 지구시민의 소망은 남과 북이 홍익인간정신으로 화합하고 하나가 되어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이로 말미암아 홍익의 평화가 지구촌으로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에서 홍익인간사상의 현주소는 어떠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이후 북한지역을 점령한 소련은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창설하는 등 북한지역에 사회주의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일련의 노력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사회주의의 모델 소련을 따라 배우자는 흐름이 지배적이었다. 반면 한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는 봉건적인 것으로 혹평하고 탄압하고, 단군 또한 신화적 존재로 폄하되면서 단군조선은 아예 부인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제적으로 소련모델의 정치적 정통성이 흔들리고, 북한 내에서 한국전쟁 패배 책임문제를 놓고 권력투쟁이 심화되면서 김일성은 반대파를 숙청하는 사상적 무기로 이른바 주체사상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주체적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북한은, 비록 노예제 사회로 폄하하는 자세를 취하기는 했지만, 단군조선을 역사적 실체로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김광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김광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다가 북한은 1979년 발간한  『조선전사』 제2권 1장 2절에서, 이른바 단군신화는 단군조선 건국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좀 더 진전된 설명을 하고, ‘인간들에게 커다란 이익을 줌직하므로’ 라고 그 뜻을 풀어서 제시하는 형태로 홍익인간의 이념이 사실상 고조선의 국가건설의 이념이라는 점을 밝혔다. 

그러다가 1985년 고르바쵸프가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북한의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1990년대초 한・소와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북한의 고립과 어려움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북한은 내적 단결을 강조하고, 정치이념 차원에서 조선민족제일주의, 우리식 사회주의, 민족대단결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사회주의이론과 결별하였다. 이러한 정책변화의 흐름 하에서 고조선과 그 문화에 관한 관심 또한 고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북한이 1993년 단군릉 발굴을 발표하고 1994년 10월 11일 단군릉 준공과 발굴보고를 통해 단군이 5,011년 전의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이 보고에 따르면, 두  사람분의 유골 86개와 금동왕관 앞면의 세움장식, 돌림띠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단군릉 발굴보고서에서 북한은 '홍익인간'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이를 '리상적 사회관으로서의 사상'이라 규정하고 "인간들에게 크나큰 리익을 주라."는 인도주의적 정신을 내포하는 통치이념이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대종교가 단군을 실존인물로 받들게 된 이유를 단군의 치화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확신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단군이 백성들에게 크나큰 리익을 주기 위해 인간살이의 360여가지 일을 주관하면서 정치와 교화를 베풀었다."고 명언하였다.

민족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향은 단군릉 발굴을 전후로 주목할만하게 증가하였다. 그 예로 1995년 고조선의 역사와 교육을 대폭 강화한 『조선교육사』, 그리고 강동 일대에 전해져 오던 단군 관련 설들을 집대성한 『단군전설』 등을 연이어 발간하였다. 그 이듬해인 1996년에는 단군의 역사성, 고조선 관련 신화, 전설, 사회상, 그리고 문화유물 등을 만화 형태로 소개한 『조선민족의 원시조 단군』을 출간ㆍ보급하기에 이르렀다. 

단군릉 발굴이후 북한은 홍익인간을 '선인(仙人)'이라 하면서, 비록 단군조선 시기 신흥 노예주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인생관 및 사회관이기는 하지만, 홍익인간의 이념은 고구려에도 전하여진 것으로서, 인격적 수양을 통하여 수양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려는 사람들의 염원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한 바도 있다.
2002년에는 단군릉 발굴 성과를 중심으로 구석기시대부터의 유물을 총정리하면서, 한민족이 외부로부터 이주해 온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되어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킨 민족, 곧 자체적 기원을 갖는 민족임을 천명하는 연구결과물을 출간하였다. 또한, 북한은 매년 평양 소재 단군릉에서 개천절 행사를 거행하는데, 이 행사에 북한의 천도교 단체인 청우당이 남한의 천도교를 초청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정권 수립 초기 소련의 압도적 영향 하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의 북한 이식과 정착이 주된 정책목표이던 시기가 있었으나, 북한 나름의 정치적 필요와 상황에 따라 단군과 고조선 등 민족적 요소를 점차 강조하였다.

 그리고 북한은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홍익인간’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비록 제한적으로나마 홍익인간의 이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하였다. 비록 통치 상의 전술적 목적과 필요에 따른 제한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상 통제가 엄격한 북한에서 단군시대의 통치이념이었던 홍익인간의 이상이 문헌에 언급되고 있는 사실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홍익인간사상은 남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통치이념 하에서 명목상의 교육이념으로만 남아 있다. 한편 북한의 경우에도 홍익인간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통치를 정당화하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남과 북 양측이 홍익인간의 이상을, 비록 명목적이거나 혹은 보조적으로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승계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신석기시대부터 한민족의 선조들이 공동체를 운영하며 교육 및 통치이념으로 채택하였던 홍익인간의 이상을, 21세기 지구촌 시대에 남과 북 양측이 과거의 유물로 폐기하지 않고, 비록 장식 수준의 형태로든 또는 정치적 필요와 타산의 이유에서이든, 정신사적 정통성의 준거로 삼고 있는 것은 경이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설명해 줄 단서를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의 집단무의식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무의식의 작용은 그 무의식을 보유한 행위자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그 행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에 의하면, 무의식을 의식화할 때까지 무의식은 무의식을 지닌 행위자를 질질 끌고 갈 것인데, 보통은 이를 운명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홍익인간사상은 한민족이 시원부터 실천해 온 고유사상으로, 한민족은 홍익인간이라는 집단무의식으로 민족적 과거와 전통에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집단무의식 이론이 한민족의 화합, 통일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우리 민족이 해방이후 한동안 남과 북으로 갈라져 갈등과 대립 속에 살아왔지만, 특정한 계기들이 주어질 경우 홍익적 집단무의식을 발현하고 실현할 잠재가능성, 달리 표현하면 정신적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홍익적 가치로 하나가 될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살려 남과 북이 나와 민족과 인류를 건강, 행복, 평화롭게 할 홍익인간이라는 중심가치를 회복하고, 상생과 화합의 지구촌 건설이라는 지구경영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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