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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원하던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기고] 우리역사바로알기 토요현장체험 '효창공원과 김구기념관'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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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6  16:59:40
윤성아 (사)우리역사바로알기 강사  |  k-spirit@naver.com

국가보훈처 후원 '현충 시설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는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9월 23일 시민들과 서울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을 찾았다. 이날의 현장학습지 효창공원은 휴식을 위해 찾아가는 공원이 아니다. 효창공원에 직접 가서 그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의미를 알기 힘들다. 역시 현장의 중요성은 가서 보고 느끼고 알아가는 것이다.

 

   
▲ (사)우리역사바로알기 토요현장체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백범김구기념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제공>

 

창열문을 통해 들어간 공원은 여느 공원과 다른 바 없어 보이지만 여기저기 조성된 묘역을 돌아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효창공원은 5세에 세상을 떠난 조선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 의빈 성씨의 묘역 효창원이었다. 일제는 묘역을 강제로 서삼릉으로 옮기고 묘역을 공원으로 바꾸어놓았으며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하였다. 해방 후 백범 김구가 조성한 독립운동가 묘역 또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적도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무사히 남아있다.

   
▲ 효창공원 김구 선생 묘 참배.(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지난 23일 진행한 현장학습에 참가한 시민들이 효창공원 내 김구 선생 묘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임시정부 요인 세 분의 묘역이 조성된 임정묘역은 공원 입구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나라 독립의 초석을 다진 임시정부의 비중을 생각하면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석오 이동녕, 청산리 봉오동 전투를 이끌며 임정의 군무위원으로 또 대한광복군 창설에 큰 역할을 한 청사 조성환, 국무위원으로 오랫동안  임시정부에 몸담았던 동암 차리석. 그들의 인생을 짧은 시간이나마 돌아보면서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경건하게 참배를 해본다. 

   
▲ 백범김구기념관 김구 선생 동상 앞에 선 학생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지난 23일 진행한 현장학습에 참가한 학생들이 백범김구기념관 내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공원 다른 쪽에는 삼의사의 묘가 있다. 도쿄에서 일본 천황 처단을 위해 폭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일왕 생일) 행사에서 폭탄투척을 하여 적국의 요인을 처단했던 윤봉길 의사, 그리고 상해 육삼정의거를 계획했지만, 밀정 때문에 탄로나 체포된, 많은 이들에게 아직은 생소한 백정기 의사 세 분 의사의 묘역이다. 그리고 그 옆에 조금 다른 묘가 하나 더 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묘가 그것이다. 하지만 안 의사의 유해를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묘는 가묘(허묘)이다. 하루빨리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 그의 유언을 지켜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 효창공원내 의열사를 둘러보고 있는 참가자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지난 23일 진행한 현장학습에 참가한 시민들이 효창공원 내 의열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임정묘역과 삼의사묘역 조성을 주도한 백범 김구의 묘역 또한 효창공원에 있다. 상하이에서 둘째 아들을 낳고 사고로 먼저 세상을 뜬 아내 최준례 여사와 1999년 합장하였다. 독립운동의 아버지라 여겨지는 김구 선생의 일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동지들의 업적을 잘 알 수 있는 백범김구기념관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우선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큰 동상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말없이 바라보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인사를 드렸다. 왠지 모를 울컥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찌 그분들의 뜨거운 심정에 비할 것인가.

 

백범 김구는 긴 세월 동안 여러 방면에서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과거시험에서 알게 된 사회부패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 평등을 중요시하는 동학교도가 되었으며, 치하포 의거 후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 생활을 한 적도 있었고, 신민회활동을 하며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계몽운동을 하며 환등회도 열었고 농감생활을 하며 교육에 힘쓰기도 하였다.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고자 했던 초기의 경무국장 김구는 이후에 주석이 되어 임시정부를 이끌고 나갔고, 중국 관내 여러 지역으로 임시정부가 옮겨 다닐 때도 임시정부를 떠나지 않고 지켰으며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 윤봉길의 의거를 지휘하였다.

   
▲ 안중근 무궁화.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지난 23일 진행한 현장학습에 참가한 시민들이 효창공원 내 안중근 무궁화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해방 후에도 자주독립을 위한 임시정부 법통운동과 신탁통치반대운동을 추진하였으며 한반도에 하나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남북협상에도 참여하였다.

 

1949년 자택 경교장에서 총격당하여 사망하였을 때 온 국민의 슬픔과 충격은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우리 민족의 근간이 사라지는 아픔을 느꼈을 그 당시의 우리국민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을 정도이다.

 

김구의 일생과 주위를 둘러싼 많은 이들의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기록한 백범일지는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아직도 활발히 출판되고 있다. 유족들은 판권을 개방하여 모든 출판사가 자유로이 출판할 수 있게 하여 누구나 읽고 저마다 이 나라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는 인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효창공원에서 만난 인물들이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현재 우리나라는 그들이 원했던 나라가 되어 있는가? 그들이 원했던 진정 행복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우리가 현재 해야 할 것은 무엇일지 한 번 더 생각해볼 소중한 기회였다. 우리나라가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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