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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화의 선도와 궁술한글운동과 국학인물열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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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1  09:22:28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  k-spirit@naver.com

이중화(李重華, 1881-?)  호는 동운(東芸),  서울 출신,  아버지는 이용주(李容疇),  1899년 민영환이 설립한 흥화학교(興化學校) 영어과에 입학하였고, 1903년 졸업 후 다음해 이 학교 교사를 지냈다. 1910년 배재학당에서 영어교사를 하였고, 이 때 한글교사를 하던 주시경을 만났다. 한글에 관한 관심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에는 독립선언문을 인쇄 배포하다가 감옥살이를 하였다. 1925년까지 배재학당에서 근무하였다. 1933년 경성 여자 미술학교 교장이 되었다. 광복 후에는 조선왕조실록 간행편집위원, 8.15준비 사무장, 세종대왕 동상제작에 자문, 국학대학장, 이충무공영정 심사위원과 국학대학장을 역임하였고, 6·25 때 납북되었다.

 

한글운동으로는 1929년 『조선어사전』(뒷날 한글학회의 큰사전) 편찬집행위원, 1936년 이 사전 전임 집필위원 및 조선어표준말사정위원을 지냈는데, 사전 집필에서 특히 옛 제도어, 음식용어들의 풀이를 맡았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징역2년 집행유예3년을 언도받았다. 광복 에 조선어사전편찬원 겸 간사를 역임하였고, 1949년 재단법인 한글학회 대표이사를 지냈다.

 

그의 특이한 이력으로는 조선체육회 이사를 지낸 것이다. 이는 『조선의 궁술』(1929)을 지은 것과 연관된다. 그는 역사를 스스로 독학하였다. 이러한 점이 그로 하여금 활과 화살에 관한 문헌을 고증하게 하였다. 우리민족이 예부터 활을 잘 쏘는 민족임을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당시 조선궁술연구회에서 그에게 궁술에 관해서 의뢰하여 쓴 것이 『조선의 궁술』(1929)이다. 조선궁술연구회는 대일항쟁기 퇴락한 사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1928년에 황학정에서 모임이 만들어졌다. 이 책을 위해서 전국 14개 지역에서 활쏘기 모임 36명이 발기인이 참여하였다.

 

이중화는 고조선시대부터 단궁이 있었고, 그것이 낙랑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에 낙랑단궁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단궁은 박달나무로 만든다. 숙신은 싸리 화살을 썼다고 한다. 싸리 화살은 작고 짧으나 힘이 강하여 큰 활과 화살로 당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싸리 화살과 돌 화살촉은 모두 백두산에서 취하였는데, 그 때마다 제사를 하였다. 고구려시대는 맥궁을 썼는데 이는 각궁이다. 각궁은 산뽕나무와 애기찌나무에 쇠심을 넣어 만든 것이다. 각궁이 단궁을 대치하였다. 화살은 싸리 화살을 썼다.

 

  백제와 신라에서는 싸리 화살 대신에 대나무 화살을 썼다. 대나무가 지리적 환경으로 흔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궁과 각궁, 싸리 화살과 대나무 화살이 조선의 활과 화살의 네 근원이라고 하여, 근원을 분명히 하였다. 아울러 한중일 삼국의 활쏘기의 장단점을 따지고 활쏘기의 자세와 방법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또한 역대 명궁 105인에 관한 기록과, 활과 화살에 관한 우리말 표기는  돋보이는 업적이다. 고구려의 동명성왕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 백제의 다루왕, 고이왕, 비류왕, 계왕, 동성왕 등도 활을 잘 쏘았다고 하는 기록은 새롭게 다가온다.

 

그에 따르면  활쏘기의 자세에서 두 발은 八(팔)자도 丁(정)자도 아니게 딛되 앞발은 계란을 밟듯이, 뒷발은 살모사를 밟듯이 디뎌야 한다. 다리와 엉덩이와 단전에 힘을 주고, 숨을 단전에 모은다. 가슴은 비고 배가 차오른다(흉허복실·胸虛腹實). 경기를 시작하여 활을 쏠 때 매번 상기되고 호흡이 가빠지게 되면 발사할 때 만족하게 끌어당기지 못하기 쉽다. 기를 밑으로 내리며 호흡이 평안해지도록 마음을 안정시키며 기운을 화평하도록 한 다음에 만족하게 끌어당기도록 주의한다. 이러한 자세는 기(氣) 체험에 기반하고 있다. 단전에 기를 모으고 생각이 없어야 활을 잘 쏘게 되는 것이다.

 

이중화는 단군을 기원전 2333년에 태백산 단목에 내려왔고 국인들이 추대하였기 때문에 단군이라고 하고, 때에 맞추어 천명을 받은 주인이라고 하였다.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나라가 만들어진 시작이라고 한다. 단군이 천여년 뒤에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 『삼국유사』의 고기의 해석을 배격하고, 나라를 다스린지 천여년 지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무진기년」, 『한빛』1)

 

이중화의 한글과 궁술에 관한 관심은 선도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선도는 단군 이래로의 유구한 역사를 이해한 것에 기반하고 있다.  단군 이래의 유구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궁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조남호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법학연구단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겸 국학연구원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이황과 이이'(김영사 2014), 역서로는 '강설 황제내경1,2'(청홍 2011), 논문으로는 '주시경과 제자들의 단군에 대한 이해' , '선조의 주역과 참동계연구 그리고 동의보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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