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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의 단군과 민족주의한글운동과 국학 인물열전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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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8  15:27:27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  nokto@ube.ac.kr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연결하다
개천절을 민족의 축제이자 세계적으로 추모해야
 
   
▲ 이윤재(사진=대종교)
이윤재(1888-1942)는 본관은 광주, 호는 환산(桓山), 한메, 한뫼, 한산이다. 여기서 환산이나 한산은 모두 환(桓)인 환웅 환검에서 온 것으로 큰 산, 밝은 산을 뜻한다. 그의 단군에 대한 애정을 알 수 있다. 
 
1888년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부 이용준과 모 이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1896년 서당훈장으로부터 우리가 자주국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민족주의 정신을 키웠던 것이다. 
 
1908년 김해의 농무회를 조직하였는데 이는 야학을 설립한 것이다. 1909년 김해공립보통학교 졸업, 연일 정씨와 결혼한다. 1913년 마산 창신학교에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다. 이때 제자가 이은상이다. 
 
주시경에게 직접 배우지는 못하고, 김윤경을 통해 주시경의 《국어문법》을 사숙하였다. 1919년 평북 영변의 숭덕학교 교사를 하다가, 3.1운동에 참여하여 평양감옥에서 옥살이 하였다. 1921년 북경대학 사학과에 유학하면서 당시 중국의 상황을 국내의 《동광》등의 잡지에 소개하였고, 신채호와 교유하였다. 
 
1924년 오산학교 교사, 1925년 협성학교 교원을 하였고 수양동우회에 가입하였다. 이는 기독교적인 단체이다. 1928년 《한빛》을 창간하였는데 이는 국학에 대한 전문적인 잡지였다. 계명구락부의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였고, 경신학교 교원,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였다. 
 
1930년 동덕여고 교원, 한글맞춤법통일안 위원이 되었고, 1931년 연희전문 교원, 1932년 《한글》 창간, 1933년 경신학교 교원, 중앙고보 교원, 1934년 배재고보 교원을 하였고, 진단학회 설립에 참여하였다. 
 
진단학회는 실증사학자뿐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자도 같이 참여하였다. 1935년 감리교 신학교 교원,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 1942년 기독신문사 주필을 하였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문받고 옥사하였다. 
 
“음력으로 10월 3일이 조선의 개천절, 조선 사람으로 잊지 못할 날이며 양력으로 11월 17일이 러시아의 혁명기념일 또한 러시아사람으로서 잊지 못할 날이다. 하나는 음력(舊曆)으로 하나는 양력(新曆)으로 물론 그 날수(日數)를 계산하는데야 각각 다르지마는 올해는 이상하게도 그 날짜(日字)가 우연히 서로 맞아(우연상부偶然相符) 동서로 다 함께 한 날을 경축하게 됨을 우리는 더욱 기쁘다고 아니할 수 없도다. 개천이고 혁명이고 그 근본의의는 조금 다를망정 한번 새 삶을 얻자고 하는 의미에 있어서는 다 마찬가지의 뜻일 것이라 한다.”(〈개천일의 추감〉, 《동광》 7) 
 
이윤재는 개천절과 러시아 혁명기념일이 같은 1926년 11월 17일에 일어나(지금은 개천절이 양력으로 10월 3일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음력을 사용하였다) 근본적인 의의에서는 다르지만, 새로운 삶을 얻는 것에서 같다고 하는 것을 강조한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민족주의는 우파이고, 사회주의는 좌파이기 때문에 노선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다. 이윤재는 이 둘의 연결을 모색하는 점에서 새로운 길을 가고자 했다.
 
“아아 반만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놀기야 잘도 놀아다. 별별 경험을 많이도 겪었다. 한창 시절에는 우리 한번 으악 소리칠 때 천지가 뒤집듯 덜석덜석하였고 한번 침묵하면 온 누리가 괴교하여 다 죽는 듯하였다. 힘센 놈과 판씨름하여 넘겨 트려도 보았고, 후진들을 어루만지어 이끌어도 보았었다. 욕심 사납게 남의 헤를 빼앗아 내 것 삼아도 보았고, 인심좋게 내 헤를 좋은 것 남주어도 보았었다. 대지위에서 훨훨 띄기도 하였고 펄펄 날기도 하였다. 남하는 것이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남 못하는 것을 나 혼자 하여도 보았다. 그러더니 웬걸 한(漢)이 오고 당(唐)이 오고 거란(契丹)이 오고 몽골(蒙)이가 오고 청(淸)이 오고 무엇이 오고해서 이리 닥치고 저리 닥치고 살림이 아주 들판이 낫다. 그러거든 정신이나 좀 차렸으면? 아하 저마다 자기 잘 낫다는 것, 서로 물고 찢는 것, 빼앗기고도 아까운 줄 모르는 것, 설음받고도 넝실넝실하는 것, 내 것이라면 어찌도 그리 밉고 남의 것이라면 물고 빨고 싶은 것, 이러구러하는 사이에 조상(祖先)의 세업(世業)은 알뜰히도 탕진(蕩盡)하고 말았다. 우리 오늘 와서 성조(聖祖)의 끼치신 뜻을 한 가지도 받들지 못하였다. 그 무거운 맹서를 아주 저버리고 말았다. 이렇듯 우리는 너무도 불효(不孝)요 불순(不順)이다. 우러러는 성조(聖祖)께 막대한 죄요, 굽혀서는 자손에게 무상(無上)의 욕이다. 불초자손은 욕이 조상에게 미친다(辱及祖先)이란 말이 실상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우리 매년 이날을 만날 적마다 미상불 떨리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나니 아아 이날! 우리 추원감모(追遠感慕)의 정이 더욱 깊이 절실하는 한편으로 또한 자성자책(自省自責)을 말지 아니하는 바다.”(〈개천일의 추감〉, 《동광》7) 
 
이윤재는 단군의 정신을 자손들이 이어받지 못하는 것을 반성해야한다고 한다. 단군정신을 높이고 우리의 장점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는 점도 의미가 있다. 
 
“오늘(음력 시월 삼일)은 우리 한배 단군께서 강탄하신 제 사천삼백팔십류회의 개천절입니다. 말하자면 조선인의 생활 및 문화의 생일이라 할 것입니다. 이 날에 우리의 감모가 어떠하며 우리의 환희가 어떠한가. 우리는 이 때 마땅히 보본의 정성과 추원의 생각으로 우리 각자가 반성과 자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개천절이란 것이 조선 인민의 전통적 관념으로 전민족적 신앙중심사상이 굳었든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곳 부여에서 영고라 하고, 예맥에서 무천이라하고, 마한에서 천군이라 하고, 고구려에서 동맹이라 하고, 신라에서 답지라 하고, 고려에서 팔관회라 하는 것이 그 명칭은 대를 따라 다 각기 달랐을지언정 일 년에 일차씩 곧 시월로서 전국 국민이 대회하여 천신에게 제사하는 전례는 같았습니다. 고려 이후로는 우리가 너무 중국사상에 빠져들게 되어 국민신앙의 근본적 정신이 점점 타락하여져서 근세에 이르러는 다만 ‘터주’ ‘선앙당’의 굿 같은 것 이외에는 그것을 찾아 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시월을 ‘상딸’(상월)이라 하며 모든 고사와 시제와 굿같은 것을 많이 이 때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여간 이 시월 상딸하고 조선민족하고는 오랜 인연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것입니다. 대저 사람이 군거생활을 경영하는 대는 여러 가지가 형식으로써 그의 사상과 감정을 집중시켜 공동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자연한 리치일 것이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든지 반드시 국민전체가 공동으로 행하는 기념과 경절이 잇는 것입니다. 그리스 민족의 ‘올림픽’이라든가 또 서양의 ‘크리스마스’와 동양의 ‘석가탄일’이 얼마나 보편화하였습니까. 이 개천절이야말로 오로지 조선민족이 가진 오직 하나의 개천절을 개인으로는 정성으로 원도하여 공동으로는 기쁨으로 경축할 조선 사람의 공통하는 대명절임을 절실히 느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떡과 과실을 식구마다 나누고 노래와 춤을 사람마다 한 가지 하는 가장 의미 있는 놀이로써 진정한 개천절의 본 뜻을 나타내고 순수한 조선민족의 리상을 발휘할 것입니다.”(〈개천절 단군강탄 4386회의 긔념〉, 《동아일보》, 1930.11.23.)
 
그는 개천철의 의의가 10월 상달에 조선 민족의 공동화합을 도모하는 자리라고 하면서, 고려 이전에는 전 국민이 함께하는 자리였지만, 고려 이후에는 무속신앙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국민의 경축절로 만들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는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천지만엽이로되 그 근본은 오직 한 덩걸에서 남이요 대해장강이로되 그 시초는 다만 엽이 무성하다하여 능히 그 덩걸을 떠날 수 있으며 해양이 광대하다하여 능히 그 원천을 버릴 수 있을까. 한 한배의 혈계로 일윤 백자천손이 이같이 번영하다하여 어찌 그 한배를 잊을 수 잇을 것이냐. 하등 동물 검수같은 것은 제 아비가 누군지를 모른다. 심지어 그 잊어버리고 만다. 어찌 검수뿐이라오. 아프리카주의 흑인이나 남양군도의 야만족들은 역시 그 선조의 이름을 알지 못하여 자기의 내력조차 모른다. 그럼으로 그들은 문화상 기록도 없고 민족적 의식도 없다. 우리가 오늘날 질삼하여 입으며 농사하여 먹으며 집을 지어 살고 기타일용에 편리한 온갖 기구들은 모도 우리 선조의 땀과 피를 적시어가면 노력하여 발명한신 공로가 아닌가. 또 우리는 이렇게 높은 도덕이 있어 인종으로 우등지위에 이르렀음도 다 우리선철의 고심정력으로 교화를 베풀으심이 아니가. 또 현금 사회에 갖갖이로 있는 모든 문화의 시설이란 것도 다 나의 전대의 유풍여속을 받음이 얼마나 많은고? 우리는 문명한 민족이라 결코 여전의 문명을 돌아보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 겨레의 근본체인 우리 한배를 길이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불강기본〉, 《동광》7)
 
흑인, 야만족, 동물과 달리 우리 민족이 문명국가를 이루게 된 데는 선조, 특히 단군의 노력 때문이다.
 
“이 산하(山河)를 정하심이여 나라의 터전을 굳게 세우심이로다. 이 인민을 택하심이여 겨레의 덩이를 크게 일우어심이로다. 아아! 그이의 경륜이 얼마나 크심인가. 문화론 우리가 세계 육대문명개창자의 하나다. 무강으론 훌륭하게도 궁대인(弓大人)의 이름을 가지었다. 대인(大人) 선인(仙人) 군자(君子) 불사(不死)란 것도 오직 우리에게만 있게 됨을 자랑한다. 이 어찌 그이의 홍익인간의 원도(願禱) 하심에서 된 것이 아닌가. 정교의 거룩함이며 예의의 밝음이며 문물의 빛남이며 제도의 갖춤이며 산업의 열림이며 학술의 나아감이며 무릇 인간 천백가지의 어느 것 하나라도 다 그이의 재세리화하신 크신 힘을 입지 아니함이 없었음이다. 그 은혜 깊도다. 우리는 위하여 노래하자. 그 덕택이 크도다. 우리는 위하여 춤추자”(〈심은후덕〉, 《동광》7)
 
특히 우리가 6대문명국가의 하나가 된 것은 단군의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 본원으로 말하면, 남에게서와 같이 자연물 숭배의 그것도 아니요 추상적의 신을 숭앙하는 그것도 아니니, 과연 대존재요 대실상이며 또 남의 것 아니요 내 것인 것입니다. 태초 홍몽의 세에 단군왕검께서 인간을 홍익하시려고 태백산 영장에 나리사, 나라를 세우고 도를 베풀으시(건방설도)고 신교를 베풀어 만물을 리화하셨으니, 이 곧 천지의 대주재시오, 국가의 건조자시며 일제 생명의 원천이요, 모든 문화의 출발입니다. 전 인류적 전 세계적으로 반드시 이를 추구하여 향모하여야 할 이어든, 그의 직손이요 적파인 조선이로서야 이에 귀의하여 귀성함이 더욱 당연하지 아니하리까. 이는 결코 국수적 정치적 어떤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상으로는 사람치고 반듯이 없지 못할 조선을 봉사하는 보본의 성이 있어야 할 것임과 역사상으로는 진작부터 근저가 깊이 박힌 국민제천회가 흘러온 실재 사실임에야 어찌 하겠습니까”(〈대종교와 조선인〉, 《삼천리》, 1936.4)
 
여기서 이윤재는 단군의 종교성이 실재임을 들어 자연물 숭배나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다분히 호교론적(護敎論的)인 사고이다. 모든 종교에서는 자신이 모시는 신을 최고의 실재라고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단군이 최고의 실재이고 그를 전 인류적 전 세계적으로 추모해야 한다고 하는 이윤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이윤재는 단군을 최고의 존재로 받들며, 단군이 우리에게 베푼 문명을 감사히 여기고, 단군을 기리는 개천절이 민족의 축제 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모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종교에 치우치지 않고 기독교 더 나아가서는 마르크시즘까지도 포용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길인 것이다.
 
 
 
▲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조남호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법학연구단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겸 국학연구원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이황과 이이'(김영사 2014), 역서로는 '강설 황제내경1,2'(청홍 2011), 논문으로는 '주시경과 제자들의 단군에 대한 이해' , '선조의 주역과 참동계연구 그리고 동의보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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