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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의 단군에 대한 열정한글운동과 국학 인물열전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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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0  17:09:55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  nokto@ube.ac.kr

개천절 행사에 적극참여
국립 서울대학교에서 쫓겨난 사연?

   
▲ 한글운동에 앞장 선 이병기(李秉岐, 1891~1968) 선생(사진=대종교 총본사)

 

이병기(1891~1968)의 호는 가람, 본관은 연안이고, 전북 익산 출생이다. 국민 애창곡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로 시작되는 ‘별’의 작사가이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로 끝나는 ‘난초’의 시조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는 한글운동과 학교 재직으로 나눈다. 그는 1912년 주시경의 조선어 강습원 1기로 졸업한다. 1921년 조선어 연구회 간사, 1930년 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 1931년 표준말사정위원.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1년간 복역하였다. 주시경의 제자로 조선어학회의 핵심멤버였던 것이다. 
 
그는 1913년 한성사범학교 졸업하고. 1922년 동광학교, 휘문고보 교원을 하였고, 1945년 광복 후 미군정청 편수관을 거쳐, 1946년 서울대학교 교수를 하다가, 1951년 서울대학교에서 해직되어 전주 명륜대학 교수. 1952년 전북대학교 문리과 대학장. 1958년 중앙대학교 교수. 1957년 예술원 추천회원. 1960년 학술원 공로상. 학술원 회원을 역임하였다.  
 
여기서 그의 생애 중에 중요한 것은 1951년 좌익교수를 도와주었다는 혐의로 서울대학교 교수에서 해직된 일이다. 그는 민족주의정신을 가지고 좌익과 우익을 모두 아우르는 학자였다. 그런데도 그를 해직시킨 것은 서울대학교가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  대종교의 민족주의정신을 가진 교수는 국립 서울대학교에서 재직한 적이 없다. 
 
이병기의 대종교에 대한 열정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쓴 《가람일기》를 보면 단군과 대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임이 보시던 산과 물은 우리도 보며
임이 밟으시던 흙과 물은 우리도 밟으련마는
임의 얼굴과 자취를 못 보니 그를 서러워하노라
임의 짐은 하늘 계시어 곧 잘해 끝이 없어
온 누리 뭇 우리를 내려다보시련마는
하도나 높고 멀어 아니 보이니
그리워 미칠 듯 하노라
날이 지나고 지날수록 임의 생각 더하고 더하는데
임께서 내리신 그 날이 여린 가슴에
더구나 작히나 그리워하랴” (《가람일기》, 1919년 11월25일)
 
여기서 임은 한배임이다. 한배임이 우리를 굽어보고 계시고 그에 대한 그리워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한배임에 대한 깊은 종교적 체험에서 이러한 글이 나오는 것이다.
 
이병기는 1921년 《신단실기》의 교열을 보았고, 개천절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대종교회에 갔었다. 낡은 초가에 마루 한간 방 네 칸이다. 한 방에는 한배님의 영정을 모셨고, 한 방에는 학생 두엇이 붙어 있고, 마루는 비어 있다. 다만 맞은 벽에 노래 두 마디가 씌어 있어 보는 사람을 마음 깊이 느끼게 한다. 또 한 방에는 참다운 강 선생님(강우-필자)께서 홀로 차지하시고 계시다. 들어가 ‘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옆에 있는 하롯불도 뜨거운 힘을 돋구어 그릇에 담긴 약물을 끊여 보글보글하는 소리가 우리 이야기 소리와 어울린다. ”(1921년 1월 17일)
 
대종교 남도본사의 책임자는 강우이다. 강우를 통해 대종교의 ‘참’(眞)을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참이란《삼일신고》에서 말하는 성(性)·명(命)·정(精) 삼진의 진(眞)이다. 
 
“상달 초사흘이다. 우리네가 누구든지 느끼고 생각할 한배님 내리신 날이다. 대종교당에 갔다. 모인 이가 400여인. 그 가운데는 윤덕영, 민병석, 이재곤 등 귀족도 있고, 귀족부인도 있고, 또한 모르는 이도 많이 있다. 나는 가만히 한배님께 이 형제 자매들을 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고 빌었다.” (11월 2일) 
 
1921년 11월 2일 남도본사 개천절 행사에 400여명 정도가 모였다. 일제의 탄압이 있던 시대를 염두에 두면 상당한 정도이다. 그 중에 윤덕영(1873-1940)·민병석(1858-1940)·이재곤(1859-1943) 같은 친일파도 참석을 하였다. 이병기는 이들을 배척하지 않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빌고 있다. 
 
“어천절이다. 한배검께서 환으로 돌아가신 날이다. 중앙교당에서 저녁에 기념식이 있기에 한충군을 데리고 가 보았다. 갑자기 나더러 축하사를 하라기에 어쩔 수가 없어 나섰더니 잘 생각이 아니 나므로 말이 막히어 겨푸 말만 하다 말았다.”(1923년 4월 20일) 
 
이병기는 개천절 행사뿐만 아니라 어천절 행사에도 나가서 축사를 하였다. 그가 대중 앞에 나서기 꺼려하는 성격임이 드러난다.
 
“주인하고 낙원동 개천절 경하식에 갔다. 사람이 꽤 많이 모였다. 나는 몇 사람의 말을 너무 거절 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단에 나서 말하였다. 절제 생활에 대하여 말하였다.”(11월 11일)
 
이병기는 대종교의 삼신일체 사상을 굳게 믿었다. 환인·환웅·단군은 다 한배님이다. 
 
“한배님께서 하늘에 계실 적에는 환인이시었고 하늘과 땅 사이에 계실 적에는 환웅이시었고, 이승에 내리셨을 적에는 단군이시었다. 이러하므로 삼신이라 이름이다.”
 
삼신-한배님에 대한 믿음은 오래 되었고, 우리는 삼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한배님 가르치심을 믿음은 진실로 오랜 것으로 생각한다. 한배님께서는 우리의 등걸(뿌리, 선조-필자)에 가장 비롯하고 거룩하시고 높으시고 크시어 다시 우러르고 끝없고 가 없은 등걸이시다. 고루 잘해 먼저부터 우리 등걸들께서 한배님을 가장 높이시고 사랑하시고 믿으며 우리로부터 고루 잘해 그지없는 뒤에도 우리 자손들이 한배님을 가장 높이고 사랑하고 믿을지라. 이를테면 우리 등걸이든지 우리든지 이승에 생겨나올 적에 반드시 삼신께서 만들어 낳으셨다 하니 삼신이 곧 한배님이시라.” 
 
현재는 다른 종교가 들어와 한배님의 가르침이 어지럽게 되었다. 그럴수록 한배님의 뜻을 펼쳐야 한다. 
 
“이렇듯 우리는 사람마다 집마다 한배님을 높이고 믿었다. 실상 이제 새삼스럽게 한배님의 가르치심을 믿는다느니 하잘 것 없는 다른 때와 달라, 온갖 다른 교란 것이 들어와 한배님의 가르치심을 어지럽게 하므로, 다른 때 보다 더욱 얼을 차리고 힘을 다하여 한배님의 가르치심을 널리 펴 널리 알아, 위로는 우리 등걸의 큰 뜻을 받아 잇고 아래로는 우리 자손에게 이 뜻을 전하여 우리는 우리대로 문명을 짓고 문명을 자랑하며 삶아야 함이다. 제 어버이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다른 어버이를 공경하면 또 제 아들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어버이를 공경하며, 또 제 아들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아들을 사랑한다함은 합리한 일이 아니다. 진실로 우리가 한배님을 버리고 누구를 높이며 믿으랴. 한껏 한배님의 가르치심이 이 누리에 가득하여 나아가기를 빌고 비노라.”(1926,11월 21일)
 
이병기는 단군신화와 동명왕신화를 비교하여 단군신화가 오랜 이야기라고 한다.  동명왕신화는 부여 대신에 고구려를 앞세우기 위하여 동명왕의 아버지인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고구려는 천제의 아들인 단군이야기를 이용한 것이다. 이는 단군-부여-고구려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일반적인 견해와 다른 해석이다.
 
“우리의 가장 오랜 신화는 단군과 동명왕의 것이다. 《삼국유사》, 《제왕운기》, 《이상국집》, 《세종실록지리지》 등을 보면 단군신화는 동명왕신화보다 더 오랜 것이 그 사리로도 그러려니와 그 사연으로도 그렇지 않을 수 없다. 혹은 동명왕이야기가 벌써 후한의 왕충 《논형》 그  제이권 〈길험 편〉에 실렸다 하여 이를 더 오랜 것이라 할 수도 있으니 사실 단군이야기가 한때 침체하게 된 건 동명왕 때문이다. 
 
고구려는 한 신흥국으로서 단군 후세의 정토이던 부여국을 배반하여 부여국에서 전하던 단군이야기까지도 넌즈시 말살하고 그 아버지 해모수를 엉뚱하게 천제자라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천제자라야 그 때 민중이 존숭하여 제왕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던 것은 역시 그전부터 민중이 믿어오던 단군이야기 그것을 이용하였음이 아닌가. 
 
삼국 때 당나라와의 교접이 심하여 한 국방으로나 문화를 높임으로나 불가불 그런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점점 사대사상이 깊어져 고려 건국에는 그 왕 씨가 당의 숙종의 자손이라 하여 그 창안을 이루게 하는 예와 같은 것은 기타 모든 건국설화에도 많이 보는 것이다. 동명왕 때에도 그 후손처럼 천제자라는 것보다도 어느 혈통이란 것이 필요하였다면 부여의 금와를 개구녁받이로 내쫒고 자기가 단군 혈족의 정통이라 하였을 것이다. 과연 그 때는 이런 것보다도 천제자라는 것이 더러 이로웠기 까닭이었다.”
 
단군-부여계통이 고구려보다 더욱 오래된 이야기이다. 단군이야기는 소박하고 상상력이 있고 조리가 있으며 웅녀의 믿음은 우리 민족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리하여 부여계통으로서 단군개조며 조선 건국설을 우리 국비 또는 고기로 근근이 전해 온 것이다. 그런데 단군비기는 가장 오랜 만큼 고박古朴 간소簡素하다. 그러면서도 그 풍부한 상우想優이며 명백한 조리며 웅녀가 신信을 잘 지켰다는 아름다운 정조가 우리 고대 민족성을 잘 표현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병기는 동명왕신화도 찬란한 영웅서사시를 표현한 점에서 단군신화와 함께 우리의 민족성을 잘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명왕신화는 이보다 더 번화하고 찬란하고 굉장한 한 영웅서사시이었다. 이 또한 옛날 웅비 활약하던 우리 민족성을 잘 나타낸 걸작이었다. 이 두 신화문학으로서의 최고 소중한 것이며 또한 대표적인 것이다.”
 
중국의 삼황신화가 오로지 세속적인 문화 측면에서 접근한데 비해, 우리의 두 신화는 신화성과 세속적인 문화성 두 가지를 겸비하여 사실성을 증명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역사로 해석하기 보다는 신화문학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중국에서 유교적 사상으로 이제 삼황에 대한 설화를 써(썩) 문화가 열린 때의 일처럼 만들어 놓았으나 우리 이 두 신화를 그 신화성을 잃지 않으면서 세간 일과 타협시킨 것은 역사시대 이전의 사실 그대로임을 인증하겠으며 조선 민족성의 공정 진실함을 잘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이런 것을 역사시대의 신화로 그 가부를 운운하느니 보다 신화문학으로 엄연히 해석 감상함이 그 진실과 흥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신화문학으로서 본 단군〉,《민중일보》 1947년 11월 15일)
 
이상에서 본 이병기는 단군을 믿고 우리 민족을 사랑한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는 일제항쟁기 국내에서 일본의 억압 하에서도 대종교 남도본사를 지켜낸 사람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사람을 국립 서울대학교에서 쫒아냈다고 하는 것은 민족주의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조남호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법학연구단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겸 국학연구원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이황과 이이'(김영사 2014), 역서로는 '강설 황제내경1,2'(청홍 2011), 논문으로는 '주시경과 제자들의 단군에 대한 이해' , '선조의 주역과 참동계연구 그리고 동의보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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