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열모, 사진 앞 열 오른쪽 흰 두루마기 인물(사진=대종교)
 
정열모(鄭烈模, 1895-1967) 본관은 장기, 호는 백수(白水), 충북 회인출생이다. 그의 생애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의 학자적 생애이다. 그는 경성보통고등학교 입학하였고, 1921년 일본 와세다 대학 고등사범부 국어한문과 입학하였다. 1925년 졸업하고, 중동학교 교원이 되었으며, 1931년 김천보통학교 교무주임을 거쳐, 1932년 교장에 취임하였다. 1943년 교장직을 사임하였고, 1945년 숙명여자전문학교 문과과장, 1946년 국학전문학교 교장, 1947년 홍문대학관 관장, 1949년 홍익대학 학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 홍익대학 학장을 사임하였다가 납북되어 1950년 김일성종합대학언어학 교수, 1958 과학원 언어학 교수, 1964 과학원 후보 원사, 1965 사회과학원 언어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납북되기 전까지 많은 대학교 중고등학교의 관리를 담당하였다. 김천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여 김천의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었고, 해방 후에는 국학대학, 홍익대학의 학장을 맡아 국혼을 부활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북으로 납북된 뒤에는 학자로서 생애를 마치었다. 
 
그러나 그도 해방정국에서는 정치에 참여하였다. 1945년 건준 김천준비위원장,  한국민주당에 참여하였고, 고려청년당 고문, 통일정권촉성회에 참여하였다. 1946년 김천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였지만 낙선하였다. 민족주의자로서 해방정국에서 빛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다음은 한글과의 연관성이다. 그는 주시경의 조선어강습원 1기생으로 참여하였고 1927년 한글 동인이 되고,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위원, 1930년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  1935년 표준어사정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1944년에 석방되었다. 1949년에 한글학회 이사를 역임하였다. 일제시대 한글 수호에 큰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대종교 이력이다. 1922년에 입교하고, 1925년 참교, 1945년 지교, 1946년 상교, 1949년 정교, 1950년 원로원 참의가 된다. 1946년 총본사 총무업무를 맡은 전리가 되고, 교리교육 편찬업무를 맡은 전강이 된다. 대종교의 중요한 직책을 거의 역임하였다.
 
정열모의 단군에 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글이 하나있다.  「우리의 자랑」( 󰡔조선일보󰡕, 1927년 3월 18일)이다. 이 글을 분석해 보자. 그는 단군이야기를 셋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는 하느님의 발원이다. 둘은 사람들의 믿음, 셋은 군주의 통치이다. 먼저 하느님의 발원을 살펴보자. 하느님이 보기에 원시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은 짐승과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는 처음에 임금이 없어 사람은 풀로 몸을 가리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여름에는 나무 위에 살고 겨울이면 굴속에서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아아 그 때 그 사람들의 살림은 짐승의 살림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올시다. 그들은 일정한 거처가 없고 부부의 관계가 없고 물론 부모자식의 구별이 없었을 것이올시다. 해가 뜨면 낮이거니 별이 나면 밤이거니 땀이 나면 여름이오 눈이 오면 겨울로만 알았을 것이올시다. 힘이 있으면 남을 죽이고 힘이 약하면 거저 남의 밥이 될 뿐이었을 것이올시다. 그들에게 무슨 분별이 있고 무슨 의리가 있겠습니까? 그 시대의 그 생활을 우리가 오늘 앉아서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칩니다. 우리는 과연 그 시대에 나지 않고 오늘날 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짐승의 생활을 벗어나게 된 것은 사람을 측은히 여기고 그들을 구제하겠다는 하느님의 발원 때문이라고 한다. 정열모는 하느님을 큰 지혜, 큰 덕, 큰 힘을 가진 존재로 설명한다. 이는 『삼일신고』에서 규정하는 하느님에 대한 설명을 따른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짐승의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고, 지혜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빛과 기쁨, 즐거움, 착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만일 그 뒤에는 큰 지혜가 있고 큰 덕이 있고 큰 힘이 있는 이가 있어 그 무무중중한 불쌍한 우리 누구나 측은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올시다. 누구나 그 사람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여 사람다운 생활을 하게 하고자 하였을 것이올시다. 아아 이 불쌍한 사람들을 나러 살피든 이는 과연 누구이던가! 그들의 참혹한 생활 두루 살피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을 건져서 짐승의 길에서 사람의 길로 인도하려는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우주를 배반하고 만물을 만드신 이도 하느님이시며 사람에게 지혜라는 것을 주어 당신 대신 만물을 거느리게 한 것도 하느님이올시다. 과연 이런 능력이 있는 하느님이 아니시고는 그 불쌍한 그 무지한 사람들을 교화할 수 없을 것이올시다. 하느님께서는 드디어 우리를 건지시려 하셨습니다. 하날님의 아름다운 모양은 하루바삐 이 세상에 나타나야 할 것이올시다. 일월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캄캄한 천지는 하날님의 하강으로 하여 찬란한 빛을 잃어야 할 것이요 기쁨을 모르던 여러 사람의 가름은 알 수 없는 즐거움이 생겨야 할 것이올시다. 아아 이 세상은 밝아지리라. 아아 여러 사람은 착하여지리라.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떠나기 어려운 자리를 떠나셔야 하게 되였다.” 
 
하느님이 드디어 우리에게 오신 것이 개천절이고, 그분이 단군 할아버지다.
 
“지금부터 사천삼백팔십년전 상원갑자 시월초사흘 이 날은 우리가 다시 새롭게 살게 된 가장 기쁜 날이올시다. 이날에 우리 단군할아버지께서는 하늘에서 인간에 내려 오셨습니다. 아아 기쁜 이날! 우리는 한 걸음 나아가 그 때 그날의 광경을 말씀하여야 할 것이올시다.”
 
정열모는 단군이 내려와 세상을 교화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동화로 푼다. 
 
“해나 달이 없는 것이 아니건마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늘 캄캄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공연히 두려운 생각에 무쳤었고 방향 없는 살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살길이 생기게 되였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날은 먼저 말한 사천삼백팔십년전 상원갑자 시월초사흘날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은 여전히 깊은 풀밭에서 잠자리를 보고 그윽한 숲속에서 짐승의 자취를 살필 때올시다. 그 때 여러 사람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듣거라!’ 이 소리는 여러 사람 귀에는 벼락소리보다 크고 듬직하게 들렸습니다. 여러 사람은 그만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고 제자리에 (업)엎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상히 마음이 깨끗하여 지는 듯하고 따뜻한 기운에 쌓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사람들은 다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들은 겁내지 말라’ ‘너희들은 편안할지어다’ 이 두 마디 말은 그들에게 얼마나 따뜻한 정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비로소 고개를 들어서 멀리 멀리 늘힌뫼(백두산)쪽을 쳐다보았습니다. 이상도 하다면 이상한 일도 있는 것이올시다. 늘힌뫼 꼭대기에서는 여태껏 날이 날마다 구름 같은 연기가 한량없이 나와서 본디가 모두 캄캄하다 싶었으며 그 뫼 속에서는 늘 우레 소리 같은 소리가 나고는 무서운 불길이 치밀고 하였는데 그 때 그 사람들이 볼 때는 언제 그랬었는가 싶이 고요하고 말끔하여 지고 그 뫼 꼭대기 바로 공중에는 여태껏 보지 못하던 거룩한 사람이 있으셔서 나타나 보였습니다. 여러 사람은 이상도 하다하면서 아까들은 말이 멀리 보이는 공중에 나타난 사람이 한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 두렵고 반갑고 한 생각이 나서 아무 말도 없이 두 손을 보고 거저 고개만 숙였습니다. 그 때 또, ‘너희는 내가 누구인 것을 알라?’ ‘너희는 나를 믿어라’하였습니다. 그래 여러 사람은 거저 무심결에 한 사람이 말하는 것 같이 이구동성으로 ‘예! 당신은 저 파랗게 보이는 가물가물한 데서 오신 제일 힘 있고 거룩한 어른인줄 압니다’ ‘저희는 오직 한 맘 한 뜻으로 당신을 믿고 당신의 가르치심을 받겠나이다’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중에 나타난 이는 ‘오! 착한 사람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너희에게 끝없는 복이 있으리라. 나는 하느님이로다’하면서 무수한 신장들이 옹호한 가운데 점점이 세상 가까이 내려와서 늘흰뫼꼭터나 박달나무 밑에 나려 왔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 단군 한배임이올시다.”
 
백두산에는 화산활동을 하여 불길이 치솟고 흰구름이 피어올랐는데, 단군이 그곳에서 내려오자 사람들이 매우 놀란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단군이 하신 이야기가 놀라지 말라, 편안하라고 하는 말에 사람들이 안심하였고, 가르침을 믿고 따랐다. 불안과 공포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단군의 군주로서의 통치는 다음과 같다. 단군은 신지를 통해 글, 고시를 통해 농사, 팽우를 통해 산천을 다스리게 하였고, 의식주를 정하게 하였고, 문화생활을 영위하게 하였다. 그것이 평화로운 홍익인간의 세계인 것이다.
 
“여러 사람은 물러나서 그 앞에 가 엎드려서 그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기뻐하고 그 가르치시는 일을 듣고는 그 대(로) 행하였습니다. 신지라는 이로 글을 맡아 가르치게 하시고 고시라고 하는 이로 농사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시고 팽우라고 하는 이로 산천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래 비로소 여러 사람은 집 지울 줄 알고 의복 입을 줄을 알고 머리 딸 줄을 알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줄을 알았으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알며 어른과 아이의 분별을 알고 사람은 서로 사랑할 줄 알며 내 것 남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하여 한배임께서는 인간에 대한 일을 삼백예순여섯가지를 가지고 다스려셔 사람들은 모두 태평한 세월에 즐겁게 지내었습니다.” 
 
시월상달에 시골에서 가을에 떡을 하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이 단군이 내려온 것을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 여러 사람들은 한배임의 나려오신 때를 기림하기 위하여 시월을 상달이라 하여 떡을 하고 하늘께 제사하였으니 그 유풍이 오늘까지 내려와서 시골서 가을에 떡을 하여 먹는 것이 모두 그 까닭이올시다.” 
 
단군의 재위 기간은 217년이고, 구월산에서 하늘로 갔다고 한다. 단군이 1,000년을 살았다고 하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잘못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배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백십칠년 동안을 계시다가 모든 사람이 사람다운 살림하는 것을 보시고, ‘아아 나는 이미 너희들에게 가르칠 바를 다하였노라 너희는 너희끼리 이 땅을 다스리라’하시고 삼월십오일에 문화 구월산에서 하늘로 가셨습니다. 그 때에 여러 사람의 애달픈 생각이 어떠하였겠는가마는 하느님의 하시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뒤에 한배임 자손이 대대로 우리 땅을 다스리셨으니 혹 단군이 천년을 살으셨다 하는 것은 잘못 아는 말이올시다.” 
 
그런 단군의 자손은 천손민족이라고 하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어찌되었던 우리는 직접으로 하느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하느님의 피를 받든 사람들이니 옛적부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하늘백성이라 하고 이것이 모두 까닭 없는 소리가 아니니 우리는 이 우리의 자랑거리를 아주 버리지 말고 생각하여서 과연 하느님의 자손인 무슨 표적을 늘 이 세상에 끼쳐야 할 것이올시다.”  
정열모는 문자를 발명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 함께 5대 문명국의 하나라고 주장함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였다. 
 
“아 세상이 넓다하지마는 오천년 전에 문자를 발명한 다섯 손가락이상을 꼽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떠냐 즉 태백산(백두산)을 중심으로 하고 조선반도와 만주평야에 열린 찬란한 문명이 그 하나요, 양양히 흐르는 황하수량 안에 일어난 한족의 문명이 그 둘이요, 도도한 항하수 멀고 먼 근원 그윽한 숲속에서 생긴 인도 문명이 그 셋이요, 메소포타미야 기름진 땅에서 싹이 난 문명이 그 넷이요, 나일강 두 언덕 푹신한 땅에서 생긴 이집트(애급)문명이 그 다섯이올시다. 이외에 아메리카 홍인종도 고대문명을 가졌다 합니다.” 
 
이상에서 정열모는 첫째 환웅 환인 단군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단군 하느님으로 부른다. 이는 󰡔단조사고󰡕의 관점을 따른 것이다. 둘째는 역사적으로 단군시대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나아갔다고 한다. 이는 주시경의 사고를 계승한 것이다. 셋째는 삼국유사의 곰과 호랑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동물의 변신보다는 사람들의 문제로 풀고 있는 것이다. 
 
정열모는 평생을 한글에 헌신하였고 단군을 존숭하였다. 한글로만 그를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느님의 발원과 사람들의 믿음, 그것이 구현되는 문명화된 홍익인간 세상이 정열모가 생각하는 우리의 자랑인 것이다. 이것은 천손민족이고 단군의 자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조남호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법학연구단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교수 겸 국학연구원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이황과 이이'(김영사 2014), 역서로는 '강설 황제내경1,2'(청홍 2011), 논문으로는 '주시경과 제자들의 단군에 대한 이해' , '선조의 주역과 참동계연구 그리고 동의보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