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밭서 텐트로 시작한 성전의 역사
 
억만년 홍익인간의 뜻을 기원하다
 
▲ 동해시 만우동 단군성전 전경(사진=윤한주 기자)
 
강원도 단군성전이라고 하면 태백산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산 정상에 천제단이 있고 입구에 성전을 갖췄다. 등산객만 수십만 명에 달한다. 단군성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 그런데 해오름의 고장, 동해시에도 단군성전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지난달 27일 동해 출신 김기홍 강원도국학기공회장과 현장을 찾았다. 성전은 망상동 만우마을 만우솔밭에 있다. 이 마을은 조선 숙종 때 약천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이 유배 왔다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시조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1655년(효종 7년) 삼척부사 이지온(李之馧)이 파직되어 낙향하여 살 때 이곳 산수를 아끼고 사랑했다. “이렇게 좋은 곳에 어찌 이리 늦게 왔나!(何相遇之晩)”라고 탄식해서 만우(晩遇)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만우마을은 동해고속도로 망상요금소에서 남서쪽으로 2.7㎞에 있다. 만우솔밭은 수백 그루의 금강소나무 군락이 일품이다. 시 지정 마을 휴양지다. 김 회장은 “어릴 적에 소풍 왔던 장소였다”라고 말했다.
 
김선균 단군정신선양회 동해시 지부장(부곡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이하 선양회)이 안내한 단군성전은 솔밭 한 쪽에 자리했다. 외문과 내문 그리고 동재 서재 등을 모두 갖춘 단군성전에 비하면 소박했다. 
 
김 지부장은 무궁화를 심고 신도(神道)를 설치하는 등 관리하는 데 애쓰고 있었다. 시에서 제례비 180만 원을 지원하는 것이 전부다. 그 외 유지관리는 선양회 몫이다. 그럼에도 개천절에 동해시장이 참석한다.
 
“초헌관이 시장인 것은 불변입니다. 시장님께서도 초헌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성전은 개천절에만 문을 열고 있다. 굳게 닫힌 성전의 문이 열리자 제단과 제례복, 제기 등이 보였다. 단군영정은 표준영정이었고 수수한 채색이 눈에 띈다. 낙관(落款)이 없으니 누가 영정을 그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 단군성전 내 단군영정(사진=윤한주 기자)
 
다시 문을 닫고 뒤로 갔다. 물품을 보관하는 컨테이너가 덩그러니 있었다. 김 지부장은 동재나 서재처럼 제례복을 보관하는 건물을 희망했다. 이번엔 기념비로 향했다. 초대 지부장 故 김인배(金仁培) 씨를 비롯한 창립 멤버들이 세운 석탑과 국조단군숭모비, 남북평화비다. 특히 숭모비에는 《천부경》이 새겨져 있다. 
 
비문을 쓴 이용규 씨는 <코리안스피릿>과의 통화에서 “선양회에서 넣으라고 해서 건립비에 천부경이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비문에는 그의 이름이 없다.
 
“비문은 (선양회에서) 공모했다. 5개 중에서 내가 쓴 것으로 하게 됐다. 그런데 이름을 올리지 말라고 했다. 옛날에 비문을 쓰려면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벼슬을 해야 썼다. 무명인사는 이름을 못 올린다. 그 옆 비석에 이름을 올려주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안 올렸더라.”
 
이 씨는 뒤늦게라도 이름이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김 지부장은 난색이다. 숭모비는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목되는 것은 천부경이 개천절 제례 때에 낭독된다는 점이다. 한국선도의 대표적인 경전이자 천지인 정신을 담은 천부경을 대중에게 알리고 있었다. 제례는 유교식으로 진행된다. 축문(祝文)을 살펴봤다.
 
“단군님께 엎드려 비옵나이다. 
하늘이 처음 열릴 때에 천신께서 내려오셔서 천부인 3개를 드리니 이치가 깊습니다. 
신시를 여시고 하늘을 계승하여 끝에 섰으니 처음의 이념은 홍익인간이라. 
(그 뜻을) 여러 서민들에게 입혀 큰 땅덩어리에까지 미쳤나니 도가 있고 덕이 큰 지라 
억만년 가기를 기원하나이다.”
 
선양회는 매년 개천절에 우리나라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의 뜻이 억만년 가기를 기원한다. 
 
▲ 단군성전 오른쪽에 세운 단군숭모비. 뒤에 천부경을 새겼다. 이용규 씨가 쓴 것이다(사진=윤한주 기자)
 
그렇다면 성전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동해시 서낭제(동해문화원)》를 펴낸 이한길 환동해학회 편집위원장(강릉원주대 국문과 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사단법인 단군정신선양회가 1965년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으로 설립됐다. 단군의 건국이념과 개천사상을 알리겠다는 취지다. 만우동 출신 김인배 씨는 동해시 지부를 1985년 2월 15일에 승인을 받았다. 당시 회원들은 그와 같은 만우동 주민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당도 없이 솔밭에 텐트를 쳐놓고 제향했다. 이를 본 모 여성회장이 컨테이너를 협찬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2008년에서다. 당시 시로부터 5천만 원을 지원받아 성전을 건립했다. 
 
 
선양회는 오래전부터 개천절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비용 마련이 어려워서 행사를 중단한 적이 많다. 때문에 시나 관련 단체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해시에는 단군만 모시고 있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웅녀도 있다. 그를 기리는 축제가 10월에 열린다. 김 회장과 동호동으로 향했다.(계속)
 
■ 동해시 단군성전

동해시 만우동 58-8번지, 033-535-2555 (김선균 단군정신선양회 동해시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