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로 보면 ‘혈의 응결점’
건축학적으로도 뛰어나
원래는 넓은 공터

하회마을은 안동 관광 1번지다. 유네스코가 2010년에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마을은 하회탈(병산탈 2개, 하회탈 11개 국보 제121호)과 징비록(懲毖錄;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의 기록으로 국보 제132호)을 비롯해 유•무형 문화재가 10개가 넘는다. 마을 자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다. 더구나 유명 외국인의 방문으로 화제가 됐다. 1981년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하회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수백 년 전 생활양식이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하회마을에서 73번째 생일을 보냈다. 그해 방문객이 108만 9,586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사람도 건물도 아니었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높이 15m·둘레 5.4m)인 삼신당(三神堂)이다. 수령이 600년이 넘는 것으로 마을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 하회마을 삼신당(사진=안동시 제공)
 
삼신(三神)은 예로부터 아이의 출산과 건강을 관장한다. 아이를 낳고 탯줄을 끊는 것을 ‘삼을 가르다’라고 표현한다. 임재해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는 “(삼신당은)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려고 할 때 빌었던 대상이다. 이러한 사고의 원형은 신단수(神檀樹)이다. 곰이 사람이 되어달라고 빌어서 곰네(웅녀熊女)가 됐다. 다시 신단수에 와서 빌었다. 삼신아기를 잉태하고 싶다고. (이어) 환웅과 결혼해서 단군을 낳았다. 그 모델의 원형”이라고 설명했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하회마을의 중심이고 혈의 응결점이다. 임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일월산의 지맥인 화산(花山, 271m)이 주산(主山)으로 현무(玄武)에 해당한다. 낙동강의 본류인 화천이 좌청룡(左靑龍)이 되고 북쪽 절벽에 이어지는 화산의 가지가 우백호(右白虎)에 해당된다. 화천 건너 서편에 있는 일월산 지맥의 원지산(遠志山)이 마을의 안산격인 주작(朱雀)이다. 하회를 중심으로 모두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중앙엔 혈이 있어야 한다. 태백산의 맥을 이은 일월산의 지맥이 화산까지 이어졌으며, 화산의 줄기가 충효당(忠孝堂) 뒤뜰에 이르렀고 잠시 수그러들었던 지맥이 다시 솟아서 응결한 곳이 삼신당이다.
 
건축학적으로도 수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는 “하회의 공동공간인 삼신당보다 건축학적으로 훌륭한 마을공간을 다른데서 찾기는 어렵다”라며 “삼신당은 통로를 거쳐 목표가 되는 중심공간에 이르면 그 공간의 수직적 요소에 의해 영원과 통하는, 신성한 공간의 보편적인 구성 방식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하회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화회별신굿은 애초에 삼신당에서 공연됐다. 지금 탈춤은 마을 입구쪽 원형극장에서 공연되는데 본래의 공간에서 이탈되었을 뿐 아니라 하회 사람이 주도하는 것도 아니어서 애초에 가졌던 대동적 분위기는 사라졌다”라고 지적했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 전경(사진=안동시 제공)
 
마을에는 삼신당만 있지 않다. 화산 중턱에 상당(上堂)이라는 서낭당이 있고 그 산자락에 중당(中堂)인 국신당(國神堂)이 있다. 하당(下堂)은 삼신당이다.
 
특히 서낭당에 대해 임 교수는 소도(蘇塗)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서 신이 하늘로부터 하강한 신성한 장소라는 점. 서낭당에는 ‘서낭대’라고 하는 긴 장대의 신내림대가 있다는 점, 별신굿을 할 때는 하회탈과 함께 보관하는 당방울을 이 서낭대 끝에 늘 달아두고 신내림을 받는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임 교수는 “과거에 산주는 매월 초하루 보름 때마다 서낭당에 올라가 불을 켜고 기도를 올렸으며 섣달 보름에는 신탁을 받았다. 천군으로서 사제자 노릇을 계속해온 것이다. 산주를 뽑을 때도 서낭신이 계시를 내려 지정해준다. 신이 점지해준 사제자이다. 산주는 서낭당이 있는 화산의 주인이자 고대 소도였던 별읍의 제사장이었던 천군과 다름없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신당의 경관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1895년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서 하회마을 남포홍교 나루터 주변에 풍남면사무소가 설립됐다. 1917년 일제는 삼신당 주변으로 면사무소를 이전해서 건축했다. 1970년대에서야 폐쇄됐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넓은 공터와 같았다고 한다. 이후 1987년 풍남면사무소 자리에 개인별장이 들어서고 과거에 없었던 삼신당 출입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 나무에 정령이 깃들어있다는 수목신앙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이다. 이를 종교학자이자 신화학자인 미르치아 엘리아데(M. Eliade, 1907~1986)는 세계를 떠받치는 우주목이나 세계목으로 표현했다. 그는 “모든 성목(聖木)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여겨지며 종교의식 이전이나 도중에 바치는 제의목이나 기둥은 모두 세계의 중심에 주술적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는 “우주목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 준다. 대지(大地)의 배꼽이며 세계의 기둥으로서 성인(聖人)의 현현(顯現)은 이곳을 통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삼신당의 정기(精氣)를 이어 받은 인재들이 하회마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을까? (계속) 
 
■ 참고문헌
 
김열규, 《한국의 신화》, 일조각 1976년
구본환, 한필원, 〈하회마을 공동체적 의례공간의 건축적 특성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 계획계 22》 대한건축학회 2006년
미르치아 엘리아데, 《이미지와 상징》, 까치 1998년
이학섭, 손용훈, 〈하회마을 경관요소 변화에 관한 연구 : 5개의 경관요소를 중심으로〉
《한국도시설계학회지 12》, 한국도시설계학회 2011년
임재해, 《민속마을 하회여행》, 밀알1994년
한필원,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휴머니스트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