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이 죽자를 데리고 왔다. 문차요비가 미코시 안에서 나와 죽자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나와 죽자는 미코시 안으로 들어갔다. 귀신들이 미코시에 달라붙어 들어 올려,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며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조선신궁으로 가자.”
 
문차요비가 말하였다. 나는 겁이 나기 시작하였다. 
 
“조선신궁은 이미 없어졌고, 그 자리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어요.”
 
내가 소리쳤다.
 
“그래서 가자는 거야.”
“가서 무얼 하려고?”
“목멱산 산신과 만나야지.”
“왜요?”
“목멱산 산신이 무엇인가 말해 줄 것이다.”
 
귀신들은 미코시를 짊어지고 끌고 밀며 남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축제를 하고 싶어. 축제를 하려면 목멱산 산신의 승낙을 받아야 해. 산신이 너를 보면 승낙을 할 거야.”
“축제?”
 
나는 어이가 없었다. 축제하겠다니 당치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목멱산 산신은 이씨왕조에서 지극정성으로 받들어 모시던 산신인데, 일본 귀신에게 산을 쓰라고 승낙을 할 리가 없지.”
“승낙하지 않을 수 없을 게야.”
“무슨 이유로?”
 
나는 소리치듯 말하였다. 
 
“일본이 땅이 침몰하면 살아남은 사람들이 갈 데가 한국 밖에 없는데 그들을 받아들일 때 축제를 하자는 것이니까.”
“한국 국민이 반대할 거요.”
“걱정할 것 없어요. 한국의 대덕고승께서 한국 땅이 2배가 불어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공짜 땅을 한국 사람들만 갖는다는 것은 불공평해.”
 
내가 귀신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알았어요.”  
 
나는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관심을 두지 않기로 하였다.
 
“지금부터 나는 당신의 집 지하실에서 살 거야. 그대를 내가 가마꾼으로 임명해 줄까?”
 
나는 펄쩍 뛰었다. 가마꾼이라니 당치 않는 말이었다.
 
“그대는 오늘부터 나의 가마꾼이다.” 
 
▲ 일제강점기 때 서울 충무로4가 쪽에서 바라본 남산의 조선신궁 가는 길
 
문차요비는 나를 제멋대로 가마꾼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광희 황제의 시종무관으로서 황제가 내리는 비밀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문차요비의 가마꾼을 겸직을 할 수 없었다. 우리들 앞에 대문이 하나 나타났다. 처음 보는 건물인데, 화강암을 두른 건물이었다. 정원수들이 담 너머로 넘겨다보였다. 스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누가 문밖에 나와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초인종을 눌러야 하였다. 초인종을 누른다. 대답이 없다. 조용하기만 하다. 
 
“사람이 없나봐.”
 
죽자가 말했다. 
 
“기다리면 누군가 나올 거야.”
 
문차요비가 말했다. 얼마 후에 문이 열렸다. 여자의 얼굴이 밖을 내다보았다. 여자의 나이는 나 정도일 것 같았다. 보름달 무당처럼 한복을 입고 있었다. 
 
“누구를 찾아오셨습니까?”
 
여자 관리인이 물었다.
 
“산신을 찾아왔어.”
“산신을 찾으려면 산신각으로 가야지요.”
“귀신들이 다리가 아파서 쉬려는 것이야.”
 
여자는 문차요비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관리인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귀신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차요비의 입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피어나오고 있었다. 귀신들이나 토해낼 수 있는 그런 기체였다. 
 
“여기는 귀신 호텔이야. 귀신들이 묵었다 영계로 가는 곳이지.”
 
문차여비가 말했다.
 
“이 집에 우리가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목욕옷을 입은 건장하게 생긴 사내 귀신이 정원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본 듯한 낯이 익은 사내였다. 
 
“저자도 귀신인가요?”
“사이고다카모리(西鄕隆盛)란 자이다. 아직도 정한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이지.”
“자기가 귀신인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소?”
“그러나 사이고와 같은 귀신들이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어.”
 
문차요비가 계속해서 입에서 하얀 연기를 피우며 말하였다.
 
“문차요비, 당신은 어느 편이요?”
 
문차요비가 정한론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물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린 여자들의 편이다.”
 
문차요비가 기묘한 웃음을 웃었다. 칼로 베이는 느낌을 주는 웃음이었다.
 
“다케코! 이 사람과 여기에서 살 수 있도록 방을 하나 빌려줄까?”
 
문차요비가 죽자에게 물었다.
 
“죽자는 한국 사람인데 왜 월권越權을 하는 거요?”
“죽자의 어머니는 일본여자야. 나는 사랑에 굶주린 여자들의 편이야.”
 
문차요비는 이번에도 사랑타령이었다. 귀신과 논쟁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죽자의 입에서도 하얀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너를 사랑했어.”
 
죽자가 말했다.
 
“장기 숙박을 해도 괜찮아. 다케코, 내가 윤허한다. 귀신음식을 먹고 싶으면 호텔에서 식사해도 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는 부르지 않을 거다.” 
 
문차요비의 신분을 파악한 관리인 여자는 문차요비가 귀신호텔에 가지고 있는 지분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 호텔은 사랑의 치유가 필요한 귀신들이 요양하러 오기도 하는 곳이다. 문차요비는 나와 죽자가 장기 투숙을 할 수 있도록 숙박권을 끊어 주었다. 나는 싫다고 거절할 수 없었다. 문차요비와 죽자가 나를 꼼짝 못 하게 얽어매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차요비가 내어준 객실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었다. 현관 안쪽이 양식 거실이고, 양식거실이 끝나는 곳에서 미닫이를 열고 들어가면 한식 객실이 있다. 열어놓은 창문에서 커튼의 끈이 바람에 나부꼈다. 용用자무늬로 만든 유리창이었다. 창문에 빠대를 발라 유리를 고정시켰는데, 빠대가 오래 되어 논바닥이 터지듯 갈라졌다. 우리는 옆방으로 갔다. 정갈스럽고 푸근하게 느껴지는 방이었다. 다과상에 각종 한과韓菓가 여러 접시에 놓여 있었다.
 
“다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과를 들으시면서 이야기 나누세요.”
 
여자 관리인이 말했다.
 
다과상을 물린 후에 우리는 일어섰다. 2층에 방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에 3개가 서재로 꾸며져 있었다. 아마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서재로 쓸 수 있는 방은 30평 가까이 되어 보였다. 북쪽에 책상이 놓여 있다. 책장은 없었다. 
 
“방이 마음에 들어요?”
 
문차요비가 물었다.
 
“듭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나 흉가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해지더니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러자 역사의 뒷골목의 어수선한 장면이 이중삼중의 노출로 나타나서 나를 비틀거리게 하였다. 
 
“어지러우세요?”
 
여자 관리인이 나를 잡아 주었다. 
 
“이 방은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영상의 방입니다. 과거로 가고 싶으면 이 방에 오시면 됩니다.”
 
지극히 첨단의 방이었다. 잠시 후에 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돌아보니, 문차요비와 죽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괜찮으세요?”
 
여자 관리인이 물었다.
 
“네. 나와 함께 온 분들은 어디로 갔나요?”
“그분들요? 그들이 왔던 데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죽자를 그냥 돌려보낸 것이 아쉬웠다. 
 
“언제 다시 오겠지요?”
“기다리면 올 겁니다.”
 
나는 여인을 따라 식당으로 갔다. 술상이 차려 있었다. 나는 술 3잔을 마셨다. 다음 날 나는 입주하였다. 방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더니 노산 선생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 인형이 하나 들려 있었다. 안중근 의사를 닮은 인형이었다. 몸이 비틀려 있고 표정이 어둡고 고통을 호소하는 듯해서 기분을 우울하게 하는 인형이었다. 내가 보아온 늠름한 안중근 의사 인형과는 전혀 다른 인형이었다.
 
“자네가 인형을 버리고 갔기에 내가 가지고 왔네. 인형을 주물러 안중근 의사의 고통을 풀어드리도록 하게. 자주 주물러주면 몸이 풀리고 표정이 풀릴 거야. 그냥 놓아두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니 자주 주물러 드리게.”
 
나는 인형을 받아 주물렀다. 그러자 고통이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놓아두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책을 읽어가며 인형을 주무르기로 하였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